1980년 봄에 대학원 생활 2학기 째를 맞았다. 민주화의 봄 때 공부는 팽개치고 시위대 꽁무니를 뒤쫓아다니기 바빴다. 서울에서 나온 유인물을 챙겨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을 보냈던 춘천으로 가지고 가서 후배들에게 나눠 주고 읽어주기도 했다.

▲ 독일 슈피겔지 1면에 실린 5.18의 참상. 5.18의 상징같은 사진이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가 영정을 들고 있다.

한 일이라고는 고작 그 정도인데 5.17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뒤, 서울에 있는 다른 선배와 함께 춘천에서 요주의 인물 대상에 올라 있으니 꼼작말고 숨어 있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며칠을 잔뜩 겁먹은 채 입주 과외를 하던 집 골방에서 움크리고 지냈다. 요행히 별일은 없었다.

5월 광주에서 수많은 청춘들이 신군부의 군화발에 짓밟히고 총칼에 죽어갔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전해들을 때마다 내 몸이 난도질당하는 느낌이었다. 진실을 알려주는 자료를 접할 때마다 깨닫는 기쁨보다 알게 된 사실이 더 고통스러웠다.

1919년 3.1운동은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그해 3.4월을 어떻게 경험했고, 경험한 사건을 어떻게 인식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 민족해방운동의 방향과 주체가 바뀌고 나뉘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 4월혁명도 1960년대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디딤돌이었고 기댈 기둥이었다.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은 내게 그런 사건이었다. 역사의 격랑은 그 속에 깊숙이 들어갔던 사람들 뿐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 있던 사람들까지도 파고 속으로 끌어 들여 인생을 뒤흔들고 예정과는 다른 길을 걷게 만든다.

해가 바뀌어 1981년이 되었어도 몸과 맘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광주에서 싸웠던 사람들, 죽어간 사람들 빼고는 모두 침묵으로 학살을 방관한 방조자였고, 전두환을 중심으로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동조한 간접 공범자라는 자괴감과 부채감에 휩싸여 지냈다. 술에 취하면 서울이라는 허황한 거리에서 초라한 나를 자학하면서 <보고 싶은 얼굴>을 불렀다.

▲ 김태훈 열사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거리마다 물결이 거리마다 발길이
휩쓸고 지나간 허황한 거리에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1980년대 내내 내가 낮 시간을 주로 보낸 곳은 서울대학교 도서관 규장각이었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는 옛 도서를 소개하는 해제 작업을 하였고, 1984년부터 1989년까지는 조교생활을 하였다.

1981년 광주민중항쟁 1주년 기간인 5월 27일 서울대 경제학과 4학년 김태훈 학생의 죽음을 가까이서 목격했다. 학생들이 침묵시위를 벌이던 그날도 규장각에서 고도서 해제작업을 하고 있었다. 시위가 예정되었다는 정보가 있었는지 그날 따라 경찰 '짭새'들이 학교에 그득했다. 학생들 건물 안으로 쫓겨 들어가야했다. 국사학과 대학원생들 몇몇이 학교 직원 행세를 하면서 도서관 아래 의자에 앉아 간헐적으로 벌어지는 시위를 지켜보았다.

오후 3시 무렵 도서관 꼭대기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바로 몇 십 미터 저쪽에서 ‘퍽’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무슨 물체가 떨어졌다. 도서관 4층에서 김태훈 학생이 “전두환 물러가라” “전두환 물러가라” “전두환 물러가라” 외치고 몸을 던진 것이다. 정신없이 몇 걸음 달렸으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힘이 빠져 현관 기둥을 끌어안고 잠시 멍하니 서있었다. 그 사이 학생들이 몰려들어 울부짖었다. 그 위로 짭새들이 사과탄을 집어 던졌다. 아직 목숨이 붙어있을 지도 모르는 늘어진 몸체 위에 최루탄 가스 분말이 하얗게 뒤덮였다. 학생들은 쫓겨났고 김태훈의 육신은 빼앗겼다. 치밀어오르는 분노로 심장이 마비되고 온 몸이 뻣뻣해질 지경이었다.

그 날 저녁 술집에서 몸부림치며 술을 얼마나 퍼 마시고 술병과 술잔을 집어 던지면서 난리를 폈다. 술에서 깨어나 이런 놈의 세상에서 공부는 해 무엇에 쓰랴 싶어 직접 운동을 하겠다고 선배들을 찾아갔다. 운동하던 선배들이나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이 “세상을 바꾸려면 공부하는 사람도 필요하니 분통이 터지겠지만 꾹 참고 공부해. 나중에 공부 가지고도 할 일이 많을 거야”하고 달랬다.

1984년 가까스로 석사 논문을 썼다. 규장각 조교가 되어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정규직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두 번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노동자 민중교육에 참가하기 시작하였다.

▲ 1981년 5월 27일 서울대 도서관에서 투신한 경제학과 4학년 김태훈 추모비

1986년 광주민중항쟁 6주년 5월을 맞아 서울대 도서관 앞 '아크로폴리스'에서 문익환 목사 초청강연이 있던 5월20일, 내가 일하던 규장각에서 바로 건너다보이는 학생회관 4층 옥상 난간에서 불타는 검은 물체가 순식간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서울대 농대 원예학과 이동수 학생이 “파쇼의 선봉 전두환을 처단하라” “폭력경찰 물러가라” “미제국주의 물러가라” 어용교수 물러가라“고 외치며 불덩어리가 되어 분신한 것이다.

이동수의 죽음을 목격하고 난 뒤 1986년 여름 도저히 차분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1984년부터 벼르고 벼르던 끝에 지리산으로 갔다. 화엄사에서 천왕봉까지 처음으로 종주를 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누가 보일 듯 말 듯한 산 하나를 가르키며 무등산이라고 했다. ‘무등산’이라는 말만 듣고도 눈물이 핑돌았다. 지리산에서 내려가자마자 광주로 가서 무등산에 오르고 망월동으로 갔다. 한여름 땡볕 아래서 시민군의 무덤에 술을 따랐다. 잔도 없이 소주를 병채로 마시며 내가 아는 5월의 노래들을 몽땅 불러내어 술과 눈물로 범벅해서 불렀다.

1980년대 집회나 시위를 준비하면서 주로 부르던 노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투쟁의 거리나 시위현장에거 투쟁의지를 격정적으로 표출하며 부르던 노래는 <5월의 노래>2 였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차분하게 1980년 5월을 되새겨 볼 때는 <오월의 노래>1을 불렀다.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묘비 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지리산 종주와 망월동 참배를 마치고 영령들께 다시 인사를 올리고 <전진하는 5월>을 부르면서 ‘결코 안주하지 않으리라, 편안하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였다.

저기 오네 젊은 넋들 들판 가로 질러 .....
물러서지 않으리 
사슬 끊고 전진하는 오월 오늘은 물러서지 않으리

이시대의 문제와 모순과 과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려고 하면서 부정의 대상에서 주어지는 이익은 그대로 누린 채 기득권 체제에 편입한다면 결코 아무것도 부정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1986년 5월 20일,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이동수 학생 분신 투신.

1987년 12월 광주학살의 주역 전두환이 백담사에 유배되었고, 1995년 전두환 노태우가 감옥에 갔다. 그 뒤에는 강의할 때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보고 싶은 얼굴'을 부를 수 있었다. 개인의 감정도 사회 역사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전두환 노태우의 구속은 결과로는 풀어주려고 구속한 정치적 협잡이었지만, 내 살아생전에 그들이 감옥에 가는 것을 보고 죽을 수 있을까 회의했으나 그만큼 간절한 갈구였다. 그들이 저절로, 제 발로 감옥에 간 것이 아니었다. 1980년 20살이었던 학생들이 35살이 될 때까지, 25살이었던 청년들이 40살이 될 때까지 수많은 젊은이들이 청춘을 바쳐 민주화된 세상을 만들려고 싸웠던 결과였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피로 쓴 역사였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변절하고 맛이 갔다고 해서, 운동을 팔아 권력의 단맛을 향유했다고 해서,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써온 민주주의 역사를 뒷짐 지고 바라보다가 무임승차한 자들이 비아냥 거려도 될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

1980년대 먼저 간 우리 시대 동년배들의 죽음은 내 청춘의 가슴을 온통 검푸르게 멍들였다. 1980년 5월 광주와 ‘꽃잎처럼’ 스러져간 수많은 젊은 넋들의 사연들, 그리고 가까이서 본 김태훈, 이동수의 죽음은 역사와 현실에 대해 한눈 팔지 말고 더욱 긴장하라는 아픈 채찍이 되어 나를 때렸다.

박준성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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