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오는 말 - 이념과 신념

어떤 이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 4.3 당시 학살에 참여한 서북청년단이나 학살을 지휘, 명령한 가해자들이 무슨 기독교적 생각을 가지고 학살에 가담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냥 개인으로 가담한 것이 아니냐? 기독교내 교파와 기관이 회의를 거쳐 4.3사건에 개입하거나 학살에 가담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러한 주장은 일정부분 타당성을 가진다. 그런데 지난 3월 1일에 있었던 이른바 기독교인들의 3·1절 ‘구국기도회’를 생각해 보면 그 질문은 다소 수정될 수 있다고 본다. 집회가 있기 전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개헌은 북한이 원하는 연방제 통일로 가는 길이다.’, ‘정부가 군과 경찰을 동원해 볼셰비키 혁명을 하려 한다.’라는 가짜 뉴스가 유통되고 있었다.

▲ 제주4.3 당시 학살된 시민들 ⓒGetty Image

그런데 이런 내용이 이번 3.1절 구국기도회에 그대로 등장하였다. 어떤 선교사는 ‘만약 문재인이 간첩이라면, 그리고 우리 교회들이 이대로 회개하지 않고 있다면’이라고 하였고, 어떤 이는 ‘현재 청와대는 주사파가 56%에 이르게 되었다. 지방자치단체에 단체행동권을 주겠다고 했다. 나라는 붕괴되고 볼셰비키 혁명과 같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라고 하였다. 참가자들은 이런 기도와 주장에 대해 아멘으로 응답하였다.(각주 56)

이곳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독교 각 교파의 공식적인 회의절차를 거쳐서 참여한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날 태극기 집회를 주도한 것은 구국기도회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이었다는 것, 이것이 한국사회에 상당한 파급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이 거짓말들을 양산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집회를 주도한 동인은 어디에 있을까 물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교파라는 조직적 결의보다 기독교인들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신념 문화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념을 신앙화하는 신념의 문화 말이다.

이 신념은 1948년 제주4.3과 2018년 3.1절 구국기도회를 관통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핵심적 문화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1945년 해방 이후 기독교의 신념문화는 권력과 잘 결합되어 훨씬 강력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제주4.3사건 당시 학살에 가담하거나 이를 지휘, 명령한 기독교인들이 각 교파의 공식적인 회의나 협의가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기독교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신념이 이들로 하여금 학살가담을 적극화 하였다고 본다.

당시 이 신념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락교회 출신 서북청년회 회원들이 제주4.3을 진압했다고 주장하는 한경직 목사의 1946년 설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설교를 통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런 선택은 “공산주의야 말로 일대 괴물”이고 “이 사상이야말로 묵시록에 있는 붉은 용”이다. 이 “용을 멸할 자 누구냐?”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각주 58) 설교를 들은 영락교회 청년들은 공산주의자,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주관적 판단으로 규정한 공산주의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까? 붉은 용, 말세에 나타나는 사탄으로 보았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설교는 기독교출신 서북청년단의 행동을 적극화하였을 것이고, 자신의 행위를 붉은 용을 제거하는 행위로 정당화 하였을 것이다.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 선택해야 한다는 한경직 목사의 주장은 트루먼의 주장과 일치하였다. 1947년 3월 12일,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는 두 가지의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각주 59)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이 이 외에 다른 길은 없으니 세계의 각 나라들은 두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소련 공산주의 적대를 표방한 냉전의 선언이자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이었다. 미국의 대외정책기조와 한경직 목사의 주장이 일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한국기독교계에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 YMCA연합회 간사였던 김형도(金瀅覩) 목사는 1948년 당시 “금일 세계문명에는 2대 조류가 있어 우리는 이들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라고 하면서 “여기에서는 중간적 존재는 용서”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유물주의를 취하느냐 가장 높은 인격주의를 취하느냐” 우리로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라고 하였다.(각주 60) 천주교 신부도 마찬가지의 입장을 피력하였다. 천주교의 강아오스딩은 『천주교와 공산주의』에서 세계가 “미·영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국가군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국가군이 뚜렷이 대립”하고 있다고 하였다. 즉 세계가 “공산 대 비 공산의 두 개의 세계가 형성”되었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공산주의와 사상전을 전개할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 사상전은 “우익 대 좌익, 민주주의 대 독재주의라 한다. 종국은 유신론 대 유물론의 싸홈”으로 진정의 구세주가 “예수냐? 막스냐? 카톨릭의 白이냐? 맑시즘의 赤이냐?”를 가리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유물론 사상에 대항하고 격파하는 思想的 十字軍을 준비할 시기”라고 했다.(각주 61)

공산주의 적대라는 이념을 신앙 안에서 신념화 할 때 그것은 단순히 적이 아닌 사탄이 되고, 붉은 용이 된다. 해방 이후 기독교를 지배해 온 적대 문화, 즉 자기와 다른 존재를 부정적 타자로 규정하고 이를 사탄과 붉은 용으로 만들어 배제, 제거하려는 문화가 기독교에 팽배해 있었다. 바로 이런 문화가 기독교인들의 행동을 적극화 하였고, 기독교인들은 서슴지 않고 적을 사탄, 붉은 용으로 규정하면서 배제, 제거하였다.

제주4.3 사건을 돌아보며 기독교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면 자신과 다른 개인과 집단, 종교화 문화, 특히 북한에 대한 적대의식이 상황이 악화 될 때 사람을 살해하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반공종교동맹을 조직해 소련 적대 이념을 전 세계적으로 강화하여 소련 공산주의를 봉쇄하려 할 때 WCC 소속 미국의 개신교 지도자들이 트루먼에게 주었던 고언에 귀를 기우릴 필요가 있다. 1949년 5월 3일, 트루먼의 지시를 받고 반공종교동맹을 조직하고 있던 테일러가 뉴욕에서 FCC의 사무엘 맥크레와 감리교 감독 브롤리 옥스남, 장로교의 윌리암 푸 등 미국의 개신교 지도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트루먼에게 “WCC는 공산주의를 억제하거나 무신론을 막는 단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통령은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다.(각주 62) 1950년 중반 이후 미국의 NCC가 이러한 입장을 포기하기에 이르지만 그러나 적어도 이들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 분열과 적대를 싸매는 평화의 메시지를 포기하지 않으려 하였다.

최태육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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