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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음은”-爲腹不爲目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12
이병일 | 승인 2018.03.26 22:04
“다섯 가지 색은 사람으로 하여금 눈이 멀게 하고, 다섯 가지 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귀를 먹게 하고, 다섯 가지 맛은 사람으로 하여금 입을 상하게 한다. 말을 달려 사냥을 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발광하게 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으로 하여금 행동을 방황하게 한다. 이러므로 성인은 배를 위하지만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눈)을 버리고 이것(배)을 취한다.”
- 노자, 『도덕경』, 12장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馳騁田獵, 令人心發狂. 難得之貨, 令人行妨(仿). 是以聖人爲腹(而)不爲目, 故去彼取此

無가 비우는 것이고 없애는 것이라면, 무엇을 없애는 것인가? 노자는 현실 정치 속에서 일어나는 사람의 의식을 살피고 있습니다. 오음과 오미, 사냥 등의 쾌락은 벼슬과 재산을 통해 얻어집니다. 학문과 기예를 배우고 익히면 왕은 벼슬과 상을 내렸습니다. 벼슬과 상을 받으면 음악과 음식을 즐기고, 호화로운 색깔로 수놓은 옷을 입게 됩니다. 12장에서 노자는 벼슬을 얻을수록 쾌락에 눈이 멀게 되는 정치적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벼슬을 얻기 위해 왕의 총애를 구하게 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인간이 감각 기관에 몰입하면 자신의 실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감각의 충족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망치게 됩니다. 외부에 대한 추구는 만족을 모릅니다. 한번 자극을 받아서 쾌락을 느꼈으면 그 자극을 뛰어넘는 자극이 아니면 다시 쾌락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길일뿐이죠. 외부에 대한 추구는 결국 내부의 빈곤을 가져옵니다. 노자는 내면으로 돌아올 것을 강조합니다. ‘실질을 취하라. 그대의 본질을 바라보아라.’ 외부에 대한 추구는 궁극적인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자신의 본질에 대한 추구가 중요한 것입니다.

노자가 이야기 하는 오색(靑赤黃白黑), 오음(宮商角徵羽), 오미(酸苦甘辛鹹)는 오늘날 성공을 하려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꿈이라고 포장된 그 이면에 잘 먹고 잘 입고 즐기기 위한 욕망이 가려져 있습니다. 가끔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사건사고를 보도할 때에 그들을 공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공인(公人)인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공공의 녹(祿)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전 정권에서는 정치인들의 비리, 특히 독재정권의 실정을 덮기 위해서 공인 아닌 사람들의 기사를 널리 퍼뜨리는 언론 플레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SNS를 통해서 사건과 사고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라 언론을 호도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노자가 비판하는 정치적 현실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되었지만, 그러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적지만 면면히 이어졌습니다.

풍랑 일렁이는 / 잿빛 도시의 바다에 / 고독한 섬처럼
행인 불쑥 마주치면 / 그 섬들 에돌아 / 집으로 가야 하네 //
빌딩 숲 사이로 / 헤집고 얼굴 내미는 / 기죽은 석양 맞으며
남루한 그림자 / 가슴 시리게 매달고 / 집으로 가야 하네 //
숯덩이가 되도록 / 밖으로 내몰리다 / 수척해진 가장의 몸
낯선 곳에 둘 수 없어 / 무거운 발길 재촉해 / 집으로 가야 하네 //
단 하루를 살다 / 장렬하게 세상 떠나는 / 하루살이처럼
완전히 탈진하여 / 이불 속이 더욱 간절한 / 집으로 가야 하네 //
가자! / 가자! /비록 바람이라도
하늘로 비상할 수 있는 / 풍선 여러 개 사 들고 / 집으로 가자!
- 공석진의 시 “집으로 가는 길”

오색(五色), 오음(五音), 오미(五味)를 추구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꿈 너머 꿈”을 그려야 합니다. 지금은 출세하기 위한 방향이 정치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고 다변화되었기 때문에 ‘실질을 취하라. 그대의 본질을 바라보아라.’라는 노자의 충고는 꿈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꿈의 이면에, 꿈 너머 꿈이 “사람 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자기의 정당한 생명의 권리를 누리면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 말입니다. 요즘 개헌 논의로 갑론을박 하는데, 헌법에 담겨질 내용은 사람됨이 어떻게 우리 사회 속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보장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 규정을 들어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제자들의 행동을 방해하고 가로막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에는 법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느냐는 물음이 들어 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너희는 안식일 규정을 맘대로 만들기도 하고 어기기도 하면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을 규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느냐? 너희뿐만 아니라 나는 안식일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따라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종교적 제도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종교 그 자체가 바로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인간 속에 있는 참된 인간됨도, 사람 속에 있는 하느님의 형상도 온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딱딱하게 굳어져서 이제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 통제의 수단으로 전락한 율법에 도전하는 것은 바로 율법의 본질인 사람됨, 함께 살아감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와 제도 그리고 이념의 목적은 사람입니다. 법의 목적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권과 인권을 제대로 세우고 보장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지배자들과 권력을 쥔 사람들에 의하여 그 법이 오히려 사람들의 생명권과 인권을 억압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 땅에서 불의한 법을 만들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심지어 생명을 파괴하고 평화를 깨뜨리는 일이 만연한 세상에서 국민들의 선택은 저항과 불복종에 있습니다. 세계 역사의 흐름에서 저항과 불복종은 새로운 길을 만드는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미 파종된 것들을 뽑으면서 새로운 길을 만들었듯이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길을 만드는 활동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합법과 불법, 그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생명과 사람들의 평화입니다. 안식일법을 포함한 하느님의 율법도 사람을 위해 있습니다. 법의 주인이 사람이기에 사람을 억압하는 법은 폐기되어야 하고 사람들의 평화를 깨뜨리는 법은 거부되어야 합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 (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중에서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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