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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째 전태일우리에게 남아 있는 어떤 희망
이수호 | 승인 2018.03.27 23:32

전태일재단의 천 번째 자동이체서비스(CMS) 후원회원이 등록됐답니다. 묘하게도 세월호 가족이어서 더 뜻 깊다고 전태일 재단 관계자들은 좋아하고 있습니다. 전태일재단 후원금은 주로 노동자들이나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평균 1만 원 정도여서 한 달에 천만 원 남짓입니다만, 어떤 재단의 많은 돈보다 의미 있게 쓰이고 있습니다.

전태일재단은 전태일의 풀빵 나눔 정신을 이어받아 장학사업, 사회활동가 지원사업, 이주노동자 지원사업, 투쟁사업장이나 어려운 노동조합 지원사업 등, 나눔과 연대 활동을 활발히 펼쳐가고 있습니다. 온갖 질환에 시달리며 과로에 점심도 못 먹고 일하던 어린 시다들에게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 주고, 자신은 2시간이나 넘는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던 전태일. 그의 인간애를 기려 아직도 어두운 우리 사회를 비추는 등불이 되고자, 전태일재단은 2015년부터 정성이 담긴 후원금을 바탕으로 “풀빵 나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학사업은 전태일의 친구이자 청계피복노조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삼동회 회원으로 함께 활동했던 최종인 청우회 회장이, 10년 간 적금을 들어 모은 1억 원의 기탁금을 마중물로 시작됐는데, 올해까지 3년 동안 65명에게 9천8백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이 전태일 장학금은 지금도 봉재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청우회 회원의 자녀를 비롯하여, 사회활동가 본인이나 자녀, 이주노동자 본인이나 자녀, 등 어려운 삶 속에서도 스스로 공부해보려고 애쓰는 분들을 찾아서 자립의지를 키워주는 일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번에 천 번째 후원회원이 된 세월호 유가족 오병환 씨는, 세월호 참사와 함께 억울하게 죽은 단원고 학생 영석이 아빠로, 그 동안 유해 수습, 진상 규명 등 급한 일 때문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새 정부 들어서고 세월호 문제도 급진전 되면서 4.16재단 설립 등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합니다. 특히 4.16재단 설립과 관련하여 국민 발기인 모집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참여한 전태일재단을 보면서 전태일을 다시 한 번 떠올리는 기회가 됐고, 어쩌면 48년 전에 돌아가신 전태일 열사도 그 죽음을 통해 사회에 경종을 올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세월호의 죽음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더 관심을 갖게 됐다 합니다. 후원회원이 되고 보니,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누군가를 도우며 우리 사회를 더욱 살만한 사회로 바꾸어 나가는데 이바지하는 자부심이 생기기도 해서, 기분이 좋다고 합니다.

전태일재단은 전태일의 친구들과 함께 천 번째 후원자인 오병환씨를 비롯한 세월호 유가족들을 모시고 따뜻한 밥 한 끼라도 같이 나누려 합니다. 재단 사무실이 있는, 아직도 작은 봉제공장들이 즐비한 동대문 창신동 골목 모퉁이, 노동자들이 즐겨 찾는 값 싸고 맛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모진 세상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얘기도 기탄없이 나누며, 그래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어떤 희망이 있는지 같이 찾아보려 합니다.

밥을 먹고는 전태일이 일하던 평화시장도 한 번 들러 보겠습니다. 리모델링으로 겉모양은 유리로 번쩍거리지만 속은 그대로인 평화시장, 이름만 바뀐 그날의 재단사, 미싱사, 시다들도 만나 보겠습니다. 그 당시 전태일이 조직했던 바보회나 삼동회 회원들이 드나들며, 어떻게 하면 제대로 대접을 받으며 노동자의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명보다방(이 다방만은 그때 그 자리에 거의 그때의 모습으로 있음)에 가서, 전태일과 친구들이 월급날이나 큰맘 먹고 마시던 쌍화차도 한 잔씩 마시며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얘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그리고는 전태일다리로 이름이 바뀐 버들다리 위에 있는 허리 잘린 상반신 전태일 동상에 가서, 토시 낀 작업복에 슬픈 눈빛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껴안을 듯 바라보고 있는 그때의 전태일을 만나보겠습니다. 평화시장 골목 입구, 자기 몸을 불태우며 불가능과 절망에 항거하던 그 자리에도 서서, 그 불가능이 어떻게 가능으로 그 절망이 어떤 희망으로 바뀌었는지 살펴보려합니다.

전태일의 마지막 외침이 들리겠지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그리고 마지막 남은 생명의 힘을 다해 울부짖었던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 마지막 울부짖음은 어쩌면 세월호 희생자들의 한결같은 외침이기도 하겠지요.

이수호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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