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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더 사랑하면”-愛以身爲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13
이병일 | 승인 2018.04.03 00:47
“총애를 얻거나 수치를 당하는 것은 놀라운 일을 당하는 것과 같다. 귀한 신분이 되거나 큰 근심을 하는 것은 자기 몸이 당하는 것과 같다. 어찌 ‘총애를 얻거나 수치를 당하는 것은 놀라운 일을 당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가? 총애를 얻는 것은 아랫사람이 되는 것인데, 그것을 얻어도 놀라운 일을 당하는 것과 같고, 그것을 잃어도 놀라운 일을 당하는 것과 같다. 이를 ‘총애를 얻거나 수치를 당하는 것은 놀라운 일을 당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찌 ‘귀한 신분이 되거나 큰 근심을 하는 것은 자기 몸이 당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가? 내가 큰 근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까닭은 내 몸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 몸이 없다면 어찌 근심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천하보다 자기 몸을 더 귀하게 여기면 천하를 맡길 수 있고, 천하보다 자기 몸을 더 사랑하면 천하를 부탁할 수 있다.”
- 노자, 『도덕경』, 13장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寵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 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故貴以身爲(於)天下者, (若)可(以)寄天下. 愛以身爲天下者, (若)可(以)託天下.

총애는 임금이 신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자 간에 지배와 복종이 성립하는 관계입니다. 이 총애는 상대를 자신의 수하로 만들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노자는 이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총애는 다시 욕됨으로 변합니다. 상대가 자신의 수하이기를 거부하게 된다면 강제력을 동원합니다. 노자는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총애를 받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 것입니다. 총애를 받는다고 해서 화들짝 기뻐하거나, 수모를 당한다고 해서 분노하거나 슬퍼할 것이 아니라 담담한 마음으로 그저 신기한 듯한 자세를 지니라고 합니다. 감기가 걸리면 감기를 잘 모시다가 내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환란을 당하지만 환란으로 인해 두려워 하지만 말고 환란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환란이 주는 경고와 유익을 깨우치는 일이 중요합니다.

라쥬니쉬는 장자의 ‘빈 배’의 예를 들면서 아주 인상적인 해설을 붙입니다. 뱃놀이를 하는 중에 어떤 배가 내가 탄 배를 부딪쳤다고 하면 나는 씩씩거리며 그 배에 다가가 한바탕 할 자세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배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빈 배’였습니다. 화를 내고 싶어도 빈 배에 어떻게 화를 내겠는가?

여기서 빈 배로 상징된 것은 ‘나’를 비운 ‘빈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빈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대환(大患)이 있을 수 없고, 설사 세속적인 눈으로 大患이라는 것이 그에게 닥쳐온다 하더라도 모두 전화위복(轉禍爲福)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본성을 잘 간직하는 사람이고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인기와 사랑을 받던 사람이 어느 순간에 그것을 잃어버리면 정신적인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치와 비난을 받게 되면 충격의 깊이는 더욱 심할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를 지나치게 많이 의식하는 사람은 좀처럼 그 충격과 공황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의 총애를 받거나 누군가에게 수치를 당할 때에 노자는 오히려 자기의 몸을 더 귀하게 여기고, 자기를 더 사랑하라고 합니다. 자기의 주체성을 차분히 쌓은 사람은 타인의 평가나 시선보다는 자기 스스로의 몸과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천하를 맡기고 천하를 부탁해야 한다고 노자는 역설합니다. 특히 요즘 Me Too에 오르내리는 사람들,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노자의 말씀입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정호승의 시 “봄길”

예수님이 손이 오그라들어서 주눅이 들고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을 치유하는 과정은 사람들에게 주체성과 개방성을 가지라는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타인의 총애나 비난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자기를 주체적인 성찰하고 평가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독선이나 아집과는 달리 스스로를 개방하는 일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체적인 사람이 진정으로 개방적일 수 있습니다. 봄이 되면 스스로 연한 싹을 힘차게 밀어 올리는 새싹들처럼 하느님이 맡겨주신 자기의 길을 진득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라”고 한 것은 그를 회당의 구석으로부터 중앙으로 불러 세우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세상의 주변인을 중심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 스스로 위축되어 변두리를 찾아간 사람들에게 중심을 찾아주고 삶의 주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삶에 있어서 스스로 주인이 되는 것은 주체성을 찾는 일입니다. 누구누구의 힘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회당의 중심으로 부르고 그곳에 스스로 서게 했습니다. 은유적으로 말하면 자아정체성을 깨닫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체성과 아집이나 독선은 전혀 다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합니다. “손을 쭉 뻗어라.” 손을 내미는 행위는 주변을 향해 자기의 존재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이 말씀은 동료 인간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마음을 열어 자신을 내어 놓는 것임과 동시에 그들을 품으라는 말씀입니다. 위축되었던 모든 틀을 깨뜨리고 자신을 개방하고 확장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함께 따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대한 의미를 바로 깨달을 때에 주체적인 믿음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아집이나 독선이 아닌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바로 세우게 됩니다. 나를 인정한 만큼 다른 사람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일어나라, 중심으로”는 중앙 지향을 말한다면, “손을 곧게 뻗어라”는 존재의 확장과 개방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존재양식은 중심을 돌파하고 다시 존재를 주변으로 확장함으로써 갇힘으로부터의 해방,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주변 세계 속에서의 조화로운 자기 성취와 아름다운 자아실현에 대한 표현입니다.”
- 이병일,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주체적인 삶을 위하여” 중에서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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