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당시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서북청년단의 만행에 대해서 아직 한국교회가 그 만행에 대한 참회와 사과가 있었는가?”

남재영 목사는 이렇게 질문을 던지며 그동안 4.3과 기독교의 불편했던 관계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그리고 남 목사는 곧바로 한국교회를 대신하여 사과한다고 말했다.

“제주4.3의 그 희생자들과 그리고 생존해 계신 피해자들, 그들에게 먼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장으로서 한국교회를 대신해서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 NCCK 정의평화위원회와 인권센터가 4월4일 낮12시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제주4.3 70년, 역사정의와 화해를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윤병희

4월4일 낮12시,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홍정 목사)의 정의평화위원회와 인권센터는 <제주4.3 70년, 역사정의와 화해를 위한 기도회> (이하, 기도회)를 공동으로 주최하고  NCCK 회원 교단 대표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70년 만에 처음으로 제주4.3의 교회책임을 인정했다. 이날의 기도회는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 제주4.3의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으로 사과했다는 것과 대견되며 한국개신교 사상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기도회 인도를 맡은 NCCK 인권센터 소장 박승렬 목사는 기도회를 시작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교회가 가해자로, 그리고 70년 동안 침묵하며 살아왔던 제2의 가해자로 살았던 지난 날의 교회의 허물을 회개하는 기도로 이 기도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기도회를 연 장소가 광화문 북측광장에 설치된 ‘제주4.3 분향소’ 앞이라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기도회를 공동주최한 두 기관은 며칠 앞서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제주4.3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시인하고 ‘회개’와 ‘사죄’를 고백했다. 이 성명서는 이날 기도회에서 한국기독청년협의회 소속 청년 두 명이 기도회 참여자들 앞에서 낭독했다.

교회가 이 말을 하기에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지만 그마저도 교회가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라기보다는 촛불혁명이 몰고 온 외부요건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홍정 총무는 기도회를 마치고 전한 인사말에서 지난 3월 중순 ‘부활절 맞이 제주4.3 평화기행’에서 만난 피해자 유족과의 조우를 언급하며 “화해와 상생의 여정을 출발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습니다. 사실 이와 같은 용기를 같게 해 준 것은 우리 자신들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먼저 내민 화해의 손길이었습니다.”고 털어놓았다.

한편 지난 3월30일 제주에서는 제주 교계가 70년만에 사상 첫 4.3연합예배를 열고 공동기도문으로 기도한 바 있다. “편을 가르고 등을 돌리며 편견과 아집에 사로 잡혀 갈등과 분쟁을 일삼아온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소서. 정죄하고 판단하며 스스로 심판자의 자리에 서서 죄악에 동참한 우리 안의 무서운 폭력성을 회개하오니 사하여 주옵소서.” 공동기도문의 이 구절을 포함한 몇몇 문장은 이날 광화문 기도회에서 청년들이 낭독한 성명서의 부분들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NCCK의 성명서에 적시되어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편을 가르고 등을 돌리며 편견과 아집에 사로 잡혀 스스로 심판자의 자리에 서서 죄악에 동참하였습니다. 우리 안의 무서운 폭력성을 회개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사죄합니다.” 의도적이든 우연적이든 제주 교계와 NCCK의 제주4.3 70년사 최초 사죄에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날 기도회는 박승렬 목사의 인도로 예배로의 부름에 이어 고일호 목사(예장 영은교회)와 인금란 목사(기장 여신도회전국연합회 총무)의 기도, 사도행전2장 23절~24절의 성서본문으로 남재영 목사가 “구원의 역사 제주4.3”을 주제로 설교했다. 이어 “잔혹한 학살의 역사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섰음을 고백”하고 “부끄러운 역사 앞에서 참회”와 “고통의 세월을 지나온 제주도민들 앞에 사죄”하기를 원하는 공동기도를 참여자 모두 함께 한 후 성명서를 낭독하고 이형기 목사(장신대 은퇴교수)의 축도로 마무리 지었다.

고일호 목사의 기도에는 진상규명되지 못하고 있는 4.3의 특징을 포착하고 있다. “가해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피해자는 말을 할 수 없었던 세월이 흘러 70년이 되었습니다. 가해자는 피해자라 주장했지만 피해자는 피해자라 말할 수 없었기에 그 진실과 실체조차 드러내기 힘든 긴 어둠의 시간이었습니다.“

인금란 목사는 비단 4.3을 포함하여 현대사 전반으로 교회의 발자취를 반성해야 한다며 시간대를 확장시켰다. “이 오욕의 역사 속에서 교회는 무엇을 했는지요. 국가권력에 시녀노릇을 하고 동조하고 생명을 죽이는 일에 앞장 서 왔습니다. 이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남재영 목사는 설교에서 제주4.3 비극의 메커니즘을 낙인찍기(명명)로 타자를 배제하는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구조로 보고 정명운동을 통해 이에 대한 극복 가능성을 선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권력이 불의하고 야수적일 때 민중은 이름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름을 빼앗긴 사람들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야만적인 권력에 의해서 왜곡된 이름으로 능욕을 당하고, 살해를 당한 피해자들이었지만, 그 이름은 언제든지 짓밟고 살해를 해도 괜찮은, 비인간적인 존재로 낙인을 찍으면 얼마든지 낙인이 찍혀야 했던 민중이었습니다. 폭도요, 빨갱이, 용공,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낙인을 찍음으로써 불의한 권력은 자신의 야수적인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미화시켰습니다.”

이어 화해는 선포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힐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4.3의 또 다른 비극은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 이웃들 사이에 증오와 적개심을 심어서 진실을 외면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직도 이 아픔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당사자 사이의 화해는 4.3의 진실이 밝혀질 때에 비로소 참된 화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이날 기도회의 제목은 <제주4.3 70년, 역사정의와 화해를 위한 기도회>라고 인쇄되어 있지만  ‘역사정의와 화해’를 위해 회개와 반성이 선행되어야 함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동안 교계의 일각에서는 일찍부터 4.3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남재영 목사는 “우리가 더 격식을 갖추고 모양을 갖추어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참회와 반성과 사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이날의 기도회는 출발선임을 상기시킨다.

윤병희  ubiquita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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