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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청년단 만행에 대해 격식 갖춘 사과와 반성 있었으면제주4.3 70년 역사정의와 화해를 위한 기도회 설교문
남재영 | 승인 2018.04.06 01:03
○ 이 예수가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된 일이지만,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말씀을 드리기 전에-제주4.3 당시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서북청년단의 만행에 대해서-아직까지 한국교회가 사과와 반성을 했다는 기억이 없었습니다. 우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한국교회를 대신하여 서북청년단의 만행에 대해서 격식을 갖춘 사과와 반성이 있었으면 합니다. 제주4.3의 희생자들과 생존해계신 피해자들에게 NCCK 정의평화위원장으로써-먼저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주 4.3은 야만적인 국가권력과 악마적인 이데올리기에 사로잡힌 집단에 의해서 무고하고 무죄한 사람들이-특별히 저항능력이 없는 10세 이하의 어린이들과 여성들 그리고 노인들까지 3만~8만명이 빨갱이로 몰려 무참하게 참살을 당한 비인간적이고 비극적인 역사였습니다.

처녀라는 이유로 치욕적인 능욕을 당하고 죽음을 맞아야 했던 여성들과-아직 머리조차 여물지 않은 어린 것이 어머니의 품에서 경찰관의 손에 넘겨지고, 경찰관은 그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바위에 내리쳐 죽여 버린 어린 아기와 그 또래로 살해를 당한 숱한 어린 아기들과 무슨 죄가 있는지-재판도 생략한 채 어디론가 끌려가 집단적으로 총살을 당하고 흙구덩이에 파묻혔거나, 바다에 수장된 사람들,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식을 죽이고, 자식을 대신하여 아비를 죽이고, 남편을 대신하여 그 아내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죽창을 손에 쥐어주고 무고한 이웃들을 찔러 죽이라는 협박 앞에서 무고한 이웃을 찌르게 만들었던 만행들-70년 전-4.3은 불의한 국가권력과 거기에 동화된 인간들이 얼마만큼 악마가 될 수 있고-또 금수같이 될 수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역사였습니다.

▲ 4월4일, 오후12시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NCCK 정의평화위원회와 인권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주4.3 70년, 역사정의와 화해를 위한 기도회>가 진행되었다. ⓒ윤병희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은 그들의 영혼을 익사시킬 만큼 컸지만, 이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해온 역사가 제주 4.3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조차 없이 70년의 세월을 지내야했던 제주 4.3에 대해서 70주년을 맞은 화두였습니다.

역사적으로 권력이 불의하고 야수적일 때 민중은 이름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름을 빼앗긴 사람들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야만적인 권력에 의해서 왜곡된 이름으로 능욕을 당하고, 살해를 당한 피해자들이었지만-그 이름은 언제든지 짓밟고 살해를 해도 괜찮은-비인간적인 존재로 낙인을 찍으면-얼마든지 낙인이 찍혀야 했던 민중이었습니다. 폭도요, 빨갱이, 용공,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낙인을 찍음으로써 불의한 권력은 자신의 야수적인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미화시켰습니다. 이것이 불행했던 우리 민중의 역사였습니다.

여수순천의 항쟁이 그랬고, 가깝게는 518광주민중항쟁이 그랬습니다. 여순은 반란으로, 518광주는 폭도들로 매도를 당했습니다. 이렇게 불의한 권력에 대항하여 정의를 위해 일어선 민중의 역사는 늘 이름을 빼앗겼습니다. 정의로운 민중의 이름을 빼앗고-악마적인 권력이 지어준 이름으로-그 권력에 의해서 짓밟히고, 패대기쳐지고, 살육을 당한 것이 민중의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그 민중의 역사는 그냥 버려진 죽음으로, 매장을 당한 주검으로 그냥 침묵하다 역사에서 지워지고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다시 부활하여 역사의 정의를 선포하고, 반드시 불의한 권력을 심판하고야 말았던 것이 우리 민중의 역사였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민중의 역사는 언제나 그릇된 역사를 심판하고, 역사의 정의를 반듯하게 세우고야 말았던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70주년이 되도록 자기 이름을 가지지 못한 제주 4.3은 이제사 폭도요 빨갱이라는 야만적이고 불의한 국가권력이 붙여준 이름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자기 이름을 가지는 구원의 역사로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권력 빌라도와 예루살렘의 종교권력에 의해서 십자가의 중형을 받아 처참하게 살해를 당하고 무덤에서 장사를 지냈으나-끝내 그 무덤을 열고 <구세주>라는 당신의 이름으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제주 4.3도 정의로운 자신의 이름으로 다시 부활하여-불의한 역사를 심판하면서 지금까지 역사의 무덤에 매장된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4.3의 또 다른 비극은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 이웃들 사이에 증오와 적개심을 심어서 진실을 외면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직도 이 아픔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당사자 사이의 화해는 4.3의 진실이 밝혀질 때-비로소 참된 화해가 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불의한 국가권력에 의해서 매장을 당한 4.3의 역사가 그 매장된 무덤을 열고 다시 부활해야 합니다. 제주 4.3의 정명운동은 참된 화해를 위하여-역사에 정의를 세우는 거룩한 과업입니다.

구원의 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즈음에-구원의 역사로 제주 4.3의 부활을 기도하면서, 오늘 말씀을 묵상합니다. 성경말씀에서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 역사에서 자기 이름조차 가질 수 없도록 죽어버린 제주 4,3의 죽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듯이 부활절에 즈음하여-제주 4.3도 지금 부활 중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 이 예수가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된 일이지만,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서- 예수가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된 일이지만,-이라는 구절은 제주 4.3의 죽음과 다른 예수님의 죽음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섭리의 성격을 드러내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주 4.3은 역사적인 시점이나 경험이 예수님과 똑같을 수는 없는 죽음입니다. 그럼에도 제주 4.3은-예수님처럼 불의한 역사의 무덤을 열고, 그 역사의 불의와 야만을 심판하면서, 역사의 정의를 세우는 구원의 역사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13절에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죽음의 경험은 제주4.3과 똑같지 않지만-부활만큼은 예수님의 부활과 제주 4.3의 부활은 같은 부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음의 권세로부터 풀어서 살리신 것처럼-70주년을 맞은 제주 4.3도-부활의 절기에 <제주 4.3민중항쟁>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다시 부활하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마냥 무덤 안에서 죽어 있을 수가 없는 사건이었던 것처럼-제주의 4.3도 더 이상 죽어 매장을 당한 죽음 가운데 마냥 죽어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부활의 때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부활절을 증언한 것처럼-70년을 맞은 올해 제주 4.3도 이제는 <제주4.3민중항쟁>으로자신의 이름으로 부활하는 부활의 때를 맞았습니다. 제주 4.3 70주년을 맞은 올해-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제주 4.3민중항쟁>을 또 하나의 구원의 역사로-부활하게 해주신-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성 삼위 하나님께서 제주4.3 70주년 피해자들과 또 제주4.3 정명운동에 힘을 모으고 있는 모든 국민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남재영  goodpast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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