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천국(누가복음 13:18-21)그런 천국이라면
이성훈 | 승인 2018.04.08 22:06

우리가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혹은 나의 옆에서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을 느끼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보다도 더 큰 이유는 아마 죽음이라는 막연한 공포 앞에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천국이라는 소망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으실 것입니다.

죽음 후에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서의 시작이 됩니다. 영혼이 어떤 개념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귀신같은 존재인지 유령 같은 존재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 무엇인가는 분명 존재하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습니다.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오늘 저희는 이러한 천국, 우리가 굳게 믿고 있으며, 어떻게 생각하자면 우리 신앙의 마지막 종착지이자 목표이기도 한, 이 천국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천국에 대한 우리의 생각

먼저 우리는 천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를 돌아보려고 합니다. 저 역시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들어왔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여왔던 생각들 몇 가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천국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은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 말씀하신 비유에서보다는 다른 곳에서 갖고 온 경우가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소위 ‘하늘에 쌓는 보물’이라고 제목이 붙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6장 19-21절에 나타납니다. 말씀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 땅에 쌓은 보물은 잃어버릴 수 있으니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유사한 말씀은 누가복음 12장 33-34절에도 나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구제함을 통하여 낡아지지 않는 배낭을 만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하늘에 쌓은 다함이 없는 보물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교회를 어느 정도 다니신 분들이라면 꼭 들어보셨을 말씀입니다. 특히 누가복음의 말씀보다는 마태복음의 말씀을 더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많은 교회들에서 헌금을 내야한다고 이야기할 때에 이 본문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과 같이 ‘구제’라는 말이 앞에 있으면 헌금과는 약간 무관해지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말씀이 많이 사용됩니다.

우리가 지금껏 교회에서 들어왔던 이야기를 돌이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헌금을 하면, 헌금을 한 만큼 천국에 보물이 쌓이게 됩니다. 헌금이 아니더라도 누가복음을 따라서 구제라고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남을 위해 돈을 쓴다면 그만큼 천국에 쌓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쌓인 그 보물은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죽은 후 천국에 가서 그 돈을 사용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천국은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로 생각해도 될까요?

다음으로 한 가지 말씀을 더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굳게 품고 있는 소중한 말씀들 중 누가복음 14장 11절의 말씀이 있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 말씀을 천국과 연결시키는 것은 뭔가 어색해보이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가진 생각을 돌이켜보고자 이 말씀을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유사한 말씀은 마태복음 23장과 마가복음 9장에도 나옵니다.

이 말씀은 현실에 기반한 말씀입니다만, 실상 우리는 이 땅에서 결코 높아질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는 분명 돈에 의한, 명성에 의한, 권력에 의한 계급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도님들과 저는 분명 낮은 계급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대에 이 계급은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해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성도님들은 이 ‘높아짐’이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다.

물론 꼭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일만은 아니기도 합니다. 대형교회들을 보면, 장로가 되기 위해서는 주차 관리부터 해야 한다고 합니다. 높아지기 위해서 낮아지는 일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장로가 왜 높은 자리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주차관리가 왜 낮아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고된 일을 하면 낮아진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아무튼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땅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 낮은 사람의 일을 하면, 즉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는 일을 하면 우리는 천국에서 높은 자리에 앉게 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합니다. ‘높아지기 위한 낮아짐’이 정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일까요? 남들보다 겸손하게 낮은 자세로 섬기는 일은 정말 귀하고 귀한 일입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사실 속으로는 ‘내가 나중에 천국에서는 너보다 높은 곳에 있겠지.’ 하는 생각을 품고 있다면 이만큼 소름끼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는 조금 뒤로하고, 우리가 천국에서 높아진다는 생각을 품고 있음을 전제하고 생각해본다면, 천국에는 높고 낮은 계급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계급이 존재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금 신앙을 바탕으로 한다면, 하나님과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계급이 아닌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 사이에도 계급이 존재하게 됩니다.

계속 생각해본다면 더욱 다양한 생각들을 끌어낼 수 있겠지만, 이 두 가지만 생각해봐도 충분하리라 봅니다. 우리의 믿음 속에서 천국은 자본주의 체계를 갖춘 계급 사회입니다. 이 땅에서 열심히 헌금하고 구제해서 천국에 많은 돈을 쌓아둔 사람은 천국에서 그 돈을 쓰면서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반면 헌금도 많이 안하고 구제도 많이 안했지만 어떻게 천국에 온 사람들은 천국에서 쓸 돈이 없어서 그다지 행복하진 못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또한 이 땅에서 열심히 낮아지려 한 사람은 천국에서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남들을 호령하며 또는 부려먹으며 살 수 있게 됩니다. 반면에 이 땅에서 낮아지려고 하지 않았으나 어떻게 천국에 온 사람들은 천국의 낮은 자리에 가서 높은 사람들의 부려먹음을 당하던지 아니면 그냥 이도저도 아니게 살아야 합니다.

솔직히 이런 곳이 천국이라면 저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말씀에 대한 오해

앞의 두 말씀에 대한 오해는 짧게라도 풀고 가야 할 듯 합니다. 각각의 말씀들만 가지고도 설교 한 편은 쓸 수 있겠지만,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만 말씀드리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먼저 천국에 보물을 쌓으라는 말씀은 마지막을 잘 봐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21절과 누가복음 12장 34절은 거의 동일한 말씀으로 마무리됩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눅12:34).”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헌금을 열심히 하라는 말씀도 아니고 구제에 모든 재산을 다 쏟으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물론 누가복음은 구제에 온 재산을 쏟으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본래 예수님의 말씀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우리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고 살아가라는 점입니다. 세상의 보화에 눈이 멀어서 세상을 쫓아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높아지려면 낮아지라’는 말씀의 핵심은 행동의 결과보다는 행동 자체에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전하신 말씀이 누가복음 14장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혼인잔치에 초대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한 사람은 자신이 제일 높다고 생각하고 상석에 앉았다가 나중에 더 높은 사람이 나타나서 말석으로 쫓겨난 사람이고, 한 사람은 겸손하게 말석에 앉았다가 주인에 의해 상석으로 불려 올라간 사람입니다. 이 비유 속에서 상석에 앉았던 사람과 말석에 앉은 사람은 자신에게 어떠한 결과가 올지 판단하며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행동했고, 그런 결과가 따라온 것입니다.

말석에 앉은 사람이 속으로는 ‘저 주인이 언제 나를 상석으로 불러주려나’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면 이보다 음흉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그저 겸손하게 행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높은 자리라는 결과가 주어진 것입니다. 만약 주인이 깜빡하고 그를 잊었다고 해도 말석에 앉았던 사람은 결코 분해하거나 속상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그저 겸손하게 행하라. 너희의 행함은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하나님께서 분명 보상해주시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천국

그렇다면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사실 저는 천국이 어떤 곳이라고 여러분께 확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가본적도 없고 환상 중에나 계시로 본 적도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살펴보고 추측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천국이 겨자씨와 같고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둘은 모두 처음에는 작지만 나중에 커지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자연 속에서 너무나 당연히 봐왔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현상입니다. 바로 아주 작은 것에서 큰 것이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씨앗이 썩어지며 그곳에서 싹이 트고 꽃이 되거나 큰 줄기를 이루거나 혹은 커다란 나무가 되는 현상, 예수님께서 비유로 전하시는 말씀은 바로 지극히 당연한 자연 현상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현상을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당연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저 작은 무언가가 거대한 무엇인가를 이룬다는 일은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현상입니다. 요즘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 느끼고 있습니다만, 태어났을 때 제 팔 길이 만하던 아이가 어느새 허리 위까지 자란 모습을 보면 항상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고 쉽게 생각하는 자연 현상들은 사실 놀라운 현상의 연속입니다.

자연현상 정도로는 놀랍지 않으신가요? 더 큰 자연인 우주를 생각해봐도 좋을 듯 합니다. 학자들은 지금의 우주가 아주 작은 점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른바 빅뱅이론입니다. 빅뱅이론이 처음 나왔을 때에 이 이론은 학계의 웃음거리였습니다. 이 넓은 우주가 점에서 시작되었다니 다들 비웃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럼 그 점이 쾅(bang)하고 터졌나!’하고 비웃었던 이름이 ‘빅뱅’이었습니다. 이 이론이 지금은 어떤 이론으로도 넘볼 수 없는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주는 가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입니다. 심지어 그 우주가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은 점이 이 거대한 우주가 되었습니다. 믿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놀라움’ 또는 ‘경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라 그냥 천국에 대해 직유로 말씀하셨다면 “천국은 놀라움이다.” 혹은 “천국은 경이다.” 라고 하셨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렇게만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약간 의아함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공간적인 개념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하늘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이다.”라거나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 다스리심이다”라는 신학적인 생각은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의 기본 개념 속에서 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오늘 말씀의 주제이기에 그러한 기본 개념만을 다루려고 합니다. 우리는 천국이라고 하면 어떠한 장소를 떠올립니다. 장소를 떠올린다는 점은 분명 우리가 천국을 공간적 개념 안에서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공간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천국은 마치...’로 시작되는 말씀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그 어떤 비유 속에서도 장소, 공간을 언급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천국이라는 사건을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그저 우리가 죽어서 가게 될 한 장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이루어진 사건이 천국입니다. 천국에 들어간다 함은 그 사건을 체험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명확하게 어떤 사건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천국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겨자씨와 누룩이 커지는 모습은 우리가 보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천국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는 천국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처 그 천국을 깨닫지 못한 채, 자본주의적이고 계급주의적인 어떤 장소로 존재하는 천국만을 바라는지 모르겠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심으로 천국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사후체험을 하시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체험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나 얻게 되는 평안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 주시는 평안, 그 천국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성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55(충정로 2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 생명의집 204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윤인중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인중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8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