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입니다. 4월은 유난히 아픈 일들이 많이 기억나, 피는 꽃들을 보아도 여러 기억들에 시달리는 잔인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한창 따사롭다가 다시 예년보다 서늘해진 날씨에, 우리는 좀 더 단단히 옷을 챙겨 입고 이 현장연합예배, 야외예배에 나왔습니다.

고난 받는 현장에 직접 달려가 야외예배를 하는 것이 제자의 일 중 하나라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오늘은 우리가 모여 기도하던 성전에서 쫓겨났기에 하릴없이 우리가 겪는 고난의 현장에서 야외예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말마다 찾아가고, 그 주말을 넘어서 주중의 일상을 의지하던 거여동의 성소가 예고 없이 강제 철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를 사랑하고, 그 정신을 지켜온 세월이 강한 만큼, 매우 강력한 저항이 예상된다며 우리의 성전은 더욱 급속하게 철거되었습니다.

▲ 강남향린교회 강제집행 규탄 향린공동체 연합예배 ⓒ박상범

주님. 우리는 우리의 고난을 고백합니다. 타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다시 달려갑니다. 주님,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우리의 의지가 아닌 것들에 의해 쫓겨날 수 있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주님, 우리는 또한 주님의 뜻이 아니라 생각되는 세상의 논리에는 순종하지 않는 강한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곳이지만, 이 성전은 저에게도 말할 수 없이 귀한 공간입니다. 이십 대 초반, 세상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부당한 세상의 목소리에 지쳐 있을 때, 저는 물어물어 성서학당이 있는 강남향린의 처소를 찾았습니다. 그 이전에도 교회를 찾아본 적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워십과 기도에 자기도취적으로 눈물 흘리는 일이 신앙의 전부일 때도 있었습니다.

성서학당을 드나들며 곁가지로 신학 지식을 공부하면서 앞으로 제가 쓰려는 글에 도움이 되었으면, 바라기도 하였었지요. 그러나 그 당시 강남향린교회의 담임목사셨던 김경호 목사님의 말씀에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지식으로 신학을 받아들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교회를 선택하여 작은 것이라도 실천한다면 자신이 배운 신학적 지식이 어떤 것인지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자기 선택에 책임지는 제자가 되겠다는 맘으로, 자기도취적 눈물이 아닌, 타인을 위한 눈물의 의미를 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저는 이 장소를 선택했습니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밥을 지어먹었습니다. 도자기도 빚고, 국악 자락에 흥을 느끼며 들썩이고, 강한 마음이 되고자 현장을 찾아가기도 하고, 여전히 부서진 마음들은 청년들과 밤새 다독이기도 하면서 함께 일구는 공동체의 전신을 경험하였습니다.

오래도록 고민하다가, 진정한 주님의 자녀로 태어나겠다는 마음이 되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강남향린교회는 제가 처음으로 만난 예수님의 성전이었고, 민주주의의 실상을 학습하는 장소였고, 세상의 마음으로 범벅된 저를 물세례로 씻어주어 새로 태어나게 한 곳입니다.

강남향린교회에서 파송된 이후 들꽃향린교회에서 십여 년의 신앙생활을 더 길게 하였지만, 제가 강남향린교회에서 새로 태어난 존재라는 걸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에겐 이 성전은 고향과도 같은 장소이면서, 제 처음의 마음들을 움찔거리게 하는 십자가 그 자체입니다. 오래 전에 들꽃향린으로 떠나온 저에게도 강남향린이 이런 의미일진대 현재 그곳을 보금자리로 삼고 있는 강남향린 교우들의 애통한 마음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여러 인연으로 저와 같은 마음이 되어, 우리 향린공동체의 지체가 무너진 강남향린교회 앞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우리에게 어떤 곳입니까. 새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이 기억나 오늘 아침엔 그 소설의 한 자락을 펼쳐 보았습니다.

그 소설에는 쇠망치를 들고 시멘트담을 쳐부수며 집을 철거하겠다 들이닥친 사람들 앞에서 ‘난쏘공’의 주인공들이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최후의 밥상에는 우리 선조들 대부터 묶어 흘려보낸 시간들이 올라앉아 있다며, 쇠망치에 맞아도 마저 식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의 의례를 치르듯 더 천천히 식사를 합니다.

그러나 산업화의 상징인 70년대, 그 때 나온 소설에서도 당시 철거반원들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도 있었습니다. 이들 주인공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철거 집행을 기다려주지요. 철거반원들은 주인공들이 숭늉을 마시고 이들이 싸놓은 부엌 집기며, 공구며 짐을 하나하나 들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줬다가 그제서야 철거를 시작합니다. 오늘 기도를 통해 나누고 싶어 다음과 같은 난쏘공의 일부 구절을 옮겨와 봅니다. 철거반원들이 주인공들의 오래된 집을 철거한 이후에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주님. 그동안 오백 년이 걸려 지은 집들이 헐려왔습니다. 우리 강남향린교회의 역사는 몇 년이 되었나요? 과연 몇 년이라 할 수 있을지요. 저에게 이 강남향린교회는 청년 시절의 세례에서부터 시작하여 제 반절의 삶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제 신앙의 전부가 시작된 곳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 강남향린교회에 깊이 연루된 지워지지 않는 세월이 있습니다.

강남향린교회는 향린교회에서부터 나왔으며, 들꽃향린교회를 낳았습니다. 향린 정신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합니다. 한국 기독교의 양심은 물론 우리의 고통스런 근현대사의 아픔과 함께 해왔습니다. 예수 이후의 이천여 년의 역사, 그 이전 야훼 하나님이 세우신 정의의 역사와도 함께 합니다. 마치 강물과 같이, 특정한 수로 측량할 수 없는 오래된 역사를 살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역사적인 장소를 존엄하게 떠날 권리를 말살하고, 이곳을 온전히 추억하며 최후의 식탁을 나눌 권리마저 빼앗았습니다. 철거하여 신속히 세우려는 것은 누구의 법이며, 누구의 이득입니까.

주님. 누군가의 처참한 고통으로 발생하는 이득을 우리는 반대합니다. 비단 이 현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처할 수 있는 고통이라 더더욱 강하게 반대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 현장예배에서 온전히 세우려는 것은 주님의 법이자, 마지막까지 지켜져야 할 인간의 존엄과 품격입니다.

오늘의 강제침탈 현장에서 숨겨진 의혹들이 있다면 진실로서 풀려져야 할 것이고, 인간의 존엄할 권리를 말살한 족속들은 응당 그 책임과 부끄러움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 언젠가 우리가 붙여나간 작은 십자가들을 하나하나 도려내어 폐기물로 던져버린 이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그처럼 강제적으로 던져서 버려져야 할 존재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다시 그 십자가 하나하나를 기억하며, 주님의 정의를 세우고자 하오니 부디 우리 공동체에게 힘을 주시고, 쫓겨난 것들, 무너진 것들이 다시 분연히 일어나는 역사를 보여주소서.

우리는 약하나, 주님은 강하시니, 내 능력은 약한데서 완전하게 된다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더욱 진실하게 강해지려 합니다. 그로써 이 장소는 쫓겨남의 상징이 아니라 일어남의 상징이 될 것이요. 무력하게 침탈당한 곳이 아니라 새 힘으로 스스로를 지키는 곳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주님. 그런 힘과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실 줄 믿사오며, 고난으로 새로워지는 역사마다 언제나 함께 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노지영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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