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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사건으로 본 외부인과 내부인의 전복과 제자도의 재구성참다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려면
이원돈 | 승인 2018.04.10 23:58

마가복음은 길의 복음입니다, 이 마가복음이 제시하는 예수와 함께 떠나는 길은 육로의 길뿐만 아니라 ‘망망대해 속의 쪽배’로 표현되는 거친 바다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의 제자공동체는 지금 거대한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갈릴리 바다의 서쪽 광야(6:31-44)와 동쪽 광야(8:1-9)에서 물고기와 떡으로 각각 유대인들에게 5천 명과 이방인들에게 4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베풉니다. 이는 야훼 하나님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던 사건을 연상케 만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와의 항해 과정에서 제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출애굽하였지만 광야에서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역-출애굽 운동이 일어났듯이 이방 땅으로의 항해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헤롯과 세상과 외부인을 흠모하고 닮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마가복음은 예수와의 항해의 앞뒤로 펼쳐지는 비유 교육과 광야의 기적과 풍파를 제압하시는 바다 항해의 교육적 신앙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실패한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가 적나라하게 들어내고 있기도 합니다. 이 예수와 제자들의 항해의 과정은 마가복음의 4장37절의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라는 말씀처럼 바다를 건너는 도중 바다의 광풍을 만나 큰 풍랑이 일어 좌초의 위협을 당합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마을에서 그리고 항해의 앞과뒤 광야와 들판에서 그리고 항해 중에 여러 가지 기적을 보여 주신 것은 그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보고 믿으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오직 다시 세상 사람들 즉 외부인인 헤롯과 바리새파와 같이 질병이나 장애나 먹고 마시는 문제로 근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아직도 전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해가 없는 제자들의 하나님 나라에 대해 무지함을 폭로하시면서 두 번이나 “깨닫지 못하느냐?”(17절, 21절)라고 책망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이 제자들과의 항해를 통하여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내부인에서 길가에 떨어진 씨앗처럼 모든 하나님 나라의 지혜를 빼앗긴 외부인화되는 위험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 하나님 나라의 모든 지혜를 빼앗기고 정태적이고 고립되어가고 있는 제자들을 역동화시키기 위하여 늘 낯선 곳으로 새로운 여행길을 떠나는 자기 해체와 재구성의 이 횡단 항해라는 여행 수업을 통해 제자공동체 가운데 끊임없는 소통, 교통, 개혁의 공간을 확보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마가의 부활절 기사를 보면 여기서도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큰 반전을 보게 됩니다. 남성중심의 예수의 12제자들은 다 마지막 순간에 예수를 끝까지 따르는데 실패를 합니다. 남성 중심의 12제자 그룹은 다 유다처럼 예수를 팔고 베드로처럼 예수를 부인하고 그리고 마지만 순간 다 도망가 버립니다. 그러면서 누가 등장합니까?

예수의 수제자 그룹이 예수를 버리는 동시에 새로운 그룹이 등장하는데 예수의 운명하심을 보고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였던 로마의 백부장과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예수의 시신을 안치할 장소를 마련한 아리마데 요셉 그리고 가장 열심히 예수를 따르다가 발가벗고 도망간 청년과 길 지나가다 예수의 십가가를 진 구레네 사람 시몬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예수의 무덤으로 간 여인 3명이 등장합니다. “태의 소생, 여성 지도자들을 위한 마가 읽기”라는 책에서 조태연 교수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의 이야기에서 내부자인 12제자는 외부자로 추락하고 외부자이었던 로마의 백부장,아리마데 요셉,벌거벗고 도망간 청년과 특별히 그동안 조용히 예수의 뒤만 따르던 여인들이 부활의 소식을 전하며 외부자에서 내부자로의 전격적 반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복음서의 초입에서 외부인으로 출발하였으나, 다른 두 여인과 함께 내부인으로 완전한 변신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 무덤가에서 흰 옷 입은 청년을 만나 갈릴리 마을에서 나를 다시 만날것이라는 부활의 소식을 전해듣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오늘 주류 남성 제자들의 탈락과 여성과 주변인들이 이 예수 운동의 가장 적극적 참여자가 되고 결국 여성이 가장 중요한 부활의 증언자로 등장하는 것이 마가복음의 부활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야기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절과 성령강림 사이에 서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4.3과 4.16, 5.18, 6.10 사이에 있습니다, 이 성령의 계절에 부는 시대적 성령의 바람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선 성령의 바람 봄바람이 평양에서 불어오고 있습니다. 얼마전 봄이 온다라는 평양에서 우리 예술단의 감동적인 무대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부활의 계절에 남북의 봄이 온다는 남북 공연 소식을 듣고 또 가을에 남에서 만나자는 놀라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소식에 뒤질 수 없다는 듯이 중국의 시진핑도 급작스레 김정은을 만났습니다. 러시아도 곧 김정은을 초청할 예정이라고 하며, 동북아의 왕따 분위기를 감지한 아베 일본 총리도 북일 접촉을 서두르고 있다. 한반도 주변강국 모두가 김정은을 붙들고자 온갖 구애를 바치는 격입니다. 그러나 온 세상이 이렇게 변해 가는데도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는 소위 보수는 범죄자 박근혜와 이명박을 지키겠다며 태극기만 흔들어대고 있습니다.
- “한국 보수는 태극기 흔들 자격도 없다!” = 페이스북 글 인용

이러한 때에 한반도의 가장 남쪽 끝인 제주도에서 이번 문제인 대통령이 4.3 70주년 기념식 공식 행사에서 추모연설 내용에서 말씀하셨듯이 제주 도민들이 70년 동안 물었던 그 봄이 오고 있습니다. ”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마을 주민 전체가 학살당한 곳도 있고,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1, 3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었고, 한꺼번에 가족을 잃고도 ‘폭도의 가족’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그 제주도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홍정 목사)가  ‘2018년 부활절 맞이 고난주간 고난의 현장 방문’을 주제로 지난 28일 제주도를 찾았습니다. NCCK는 “한국 기독교는 4.3사건에서 외면할 수 없는 죄과를 범했다.”며 “물론 4.3사건의 본질은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지만 그 학살의 한가운데 당시 기독교의 대표적인 인물과 집단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것은 이제 가릴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뿐 아니라 이후에도 이러한 범죄를 고백하거나 사과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잣대로 4.3사건을 폄하해왔다. 우리는 이 곳 제주에서 반공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며 너무 많은 이들을 죽였고 수치스러운 행위들을 합리화하면서 오랫동안 유족들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해왔다”고 되짚으며 오늘 우리는 화해와 상생을 바라는 유족의 뜻을 따라, 그리고 4.3에 대한 책임적 자세를 확립하겠다는 다짐을 담아 이 곳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는 기념식수를 하였습니다.

▲ 이 성화는 14세기 이탈리아 화가 귀도 디 피에트로의 ‘그리스도의 부활과 무덤가의 여인들’.

그러면 오늘 우리의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고, 오늘 마가 복음의 우리의 부활절 기사와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우리의 고난과 부활의 성서의 본문에서  예수의 부활의 증인으로 지나가던 로마백부장,아리마데 요셉,구레네 사람 시몬과 벌거벗은 청년, 여성들이 나섰듯이 이것은 그동안 주변인으로 외부자로 밀려났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증언을 하면서 그동안 은페되고 감추어져 와 있었던 모든일이 이제 그 전모가 밝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막 16:8)

그러나 우리의 부활의 증언의 16장 8절 본문에서 마가는 정말로 놀라운 결말은 냅니다. 남성 제자들이 모두 도망(14.20)한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예수의 곁을 지켰고, 부활 이후에도 그 빈 무덤을 목격한 유일한 이들로 기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여성도 끝까지 예수를 지키고 무덤을 박차고 남성 제자들에게 부활소식을 전하러간 여성 제자들도 결국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16:8) 라고 끝을 맺고 맙니다.

왜 마가는 마지막 남은 여성 제자들 끝까지 예수를 지키고 부활의 소식을 들은 여인들도 심히 몰라 떨며 끝내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 마가복음의 끝을 맺었습니까? 이 열려진 결말로 끝을 맺는 이 놀라운 결말의 핵심은 이제 이 복음을 이제 듣는 독자들의 몫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2018년의 참다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려면 가장 먼져 이 2018년 부활의 아침에 우리가 배반 부인 도망 다니는 외부자에서 십자가의 그 끝과 무덤까지 따르는 내부자로 전환될 때에만 그가 부활하였다는 부활의 소식을 들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식을 들은 외부인에서 내부인으로 전환하여 무덤까지 따라가 부활의 소식을 들은  여성들도 정작 너무 두렵고 떨려 부활의 소식을 전하지는 못했다는 오늘 마가의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가 이 부활사건의 온전히 완성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외부자에서 내부자로 전환되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부 구경꾼에서 십자가를 짊어지는 내부자가 될 뿐 아니라 오늘 이 부활 사건의 전모를 다시 듣고 읽는 독자들에게 이 부활의 사건에 참여하도록 초청하고 전파할 뿐만 아니라 이 소식을 오늘 다시 듣는 이 복음서의 독자들이 다시 그 부활사건의 증언자가 되기 시작할 때만 2018년의 오늘의 부활사건 다시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부활의 복음을 듣는 우리 모두는 외부자에서 방관자에서 내부자로 돌아서야 할 뿐만 아니라 이 부활사건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또 다시 초청하는 초청자와 전파자들과 증언자들이 되어야 2018년 오늘의 부활사건이 완성될것입니다.

이원돈  wewinw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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