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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구원, 그리고 종말이영재 목사와 성서의 숲을 거닐다 1
이영재 | 승인 2018.04.14 22:50
전주화평교회 이영재 목사님께서 에큐메니안에 연재를 시작하십니다. 원고를 보내주시며 언급하신 내용입니다. “구약성서를 창세기부터 차례대로 주석하여 한 주간에 한 꼭지씩 보내겠습니다. 성서의 놀라운 사상을 남김없이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영재 목사님이나 에큐메니안의 사정을 제외하고 주일에 독자 여러분께서 읽으실 수 있도록 개재할 예정입니다. 이영재 목사님과 성서묵상의 시간으로 주일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 편집자 주

성서 전체의 저변에 면면히 흐르는 사상의 기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창조신앙이고 둘은 구원신앙이다. 이 두 가지 신앙은 창세기 앞 부분인 소위 ‘원역사’(proto-history)라 부르는 1~11장에 뚜렷하게 표명되어 있다. 창조신앙은 1~2장에 표명되어 있고, 구원신앙은 심판의 주제와 더불어 중앙부인 6~9장의 노아대홍수기에 표명되어 있다.

창세기 1~11장은 족장사 앞에 제시한 원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와 구원의 신앙을 진술하는 신학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원역사’라는 표현 보다는 ‘토라 서론’이란 표현을 더 즐겨 사용한다. 창세기 1~11장은 창세기의 서론부일뿐만 아니라 오경 전체의 서론으로도 기능하고, 더 나아가서는 성서 전체의 서론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된다.

▲ 1200년경 서구 사회가 과학시대를 맞이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묘사한 성화. ⓒOld French Bible moralisée (c. 1208-15), Codex Vindobonensis 2554, fol. lv, Österreichische Nationalbibliothek (source).

창세기 첫 문장 창1:1에 ‘하나님’이란 단어가 주어로 나온다. 히브리어로는 <엘로힘אֱלֹהִים >이다. 이 단어는 복수형인데 단수형으로 <엘 אֵל>, 또는 <엘로아흐 אֱלוֹהַּ>이다. 성서에서 복수형 <엘로힘>은 종종 여러 신들을 가리키는 용법으로 사용되기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유일신 야훼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복수형 <엘로힘>으로 표현하는 수사법을 학자들은 magistrie pluralis(“장엄 복수” - 편집자 주)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강함을 나타낸다.

<엘로힘>이 복수형이지만 한 분이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데에는 또 다른 신학적 묵상이 들어 있다(신6:4). <엘로힘>은 창2:4에서 ‘야훼’라는 이름으로 밝혀진다. 성서 전체에 ‘야훼 엘로힘’이란 신명이 유일신을 고백하는 표호로 사용된다. 야훼는 모든 신들의 총합체로서의 한 분인 <엘로힘>이라는 뜻이다. 신들의 개별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모든 민족들과 문화들 속에서 종교의 내용으로 전승되어 온 모든 개별성으로서의 신들은 한 분 창조주 야훼 엘로힘이라는 보편자의 우산 아래에서 다 하나가 된다. 모두가 ‘하나’라는 선언이 <엘로힘> 속에 들어 있다.

샤머니즘이나 불교나 유교나 이슬람이나 힌두교나 기독교나 어떤 종교이든지 모두가 하나이다. 모든 종교는 그 내용과 형식이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며 역사의 산물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모든 신들은 그 사람을 지으신 한 분 창조주의 작품이며 그 창조주는 바로 <야훼 엘로힘>이시다.

그러므로 <야훼 엘로힘 יְהוָה אֱלֹהִים >은 역사 속에 나타나 있는 모든 개별의 신들을 초월하여 계시며 사람의 신인식 범주를 벗어나 있는 초월하신 창조주이시다. 그러므로 야훼 하나님 아래에서 모든 종교들은 한 지평 위에서 서있는 것으로서 어떠한 이유로서도 서로 대립하거나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종교들 간에 갈등하는 상황을 종교전문가들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다.

국가들 사이의 대립과 정치적 이유로도 서로 갈등해온 종교들의 역사는 정당화할 수 없다. 유일하신 한 분 야훼 하나님의 이름을 듣는 순간 모든 종교의 개별성은 일시에 대화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게 되며 모든 종교는 생명을 살리는 일과 생명들을 평화로 이끌어가는 진리가 된다.

유일신 신앙의 보편성은 단지 종교의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원리이다. 창세기의 창조신앙이 표명하는 유일신 신앙은 더 나아가 신약성서에서 차별이 없는 복음으로 더 뚜렷하게 제시된다. 개별성의 차이를 너머서는 보편성으로 나아간다. 모든 존재의 기원이 한 분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성서는 가르친다.

창1:1은 ‘태초에’란 어귀로 시작한다(개역개정). ‘태초에’는 히브리어로 <버레쉬트 בְּרֵאשִׁ֖ית>이다. <버 בְּ>는 ‘~에’란 뜻의 전치사이고 명사 <레쉬트 רֵאשִׁית>는 ‘시작/처음/머리’란 뜻이다. 우리말로 ‘초두에/서두에’라고 할 때 거기에 머리 頭자를 쓰는 것은 히브리어 어법과 동일하다.

만물의 기원은 <엘로힘>이며 그는 모든 차별을 없애시는 보편주이시다. 이것을 ‘한 처음에’라고 번역한 경우가 있는데 히브리어 원문에 정관사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관사가 없다는 것은 이전에 없었던 전대미문의 일이 시작된다는 뜻이라. 표준새번역에서는 각주를 달아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시작하셨을 때에’라고 설명을 붙여주고 있다. 영어성경은 In a beginning 또는 In the beginning이라고 두 가지로 번역한다.

우주만물이 생겨나는 모든 존재자의 출발점을 가리는 어구 ‘태초에’<버레쉬트>는 출발점이 있으면 당연히 종착점도 있음을 시사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다. 창조사역이 시작되었으니 그 사역은 완성될 것이다. <버레쉬트 בְּרֵאשִׁ֖ית>란 어귀에는 종말을 향한 희망이 담뿍 담겨있다. 창조가 시작되는 처음부터 이미 마지막 날의 완성을 바라보는 희망이 있다. 이 희망을 우리는 ‘종말론’이라고 부른다.

‘태초에’란 어구 다음에는 ‘창조하다’란 뜻의 동사 <바라 בָּרָא>가 나온다. 동사 <바라 בָּרָא>에는 두 가지 신학의 주제가 들어있다. 하나는 ‘창조신앙’이요 또 하나는 ‘종말론’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이미 종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말’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다. 여섯째 날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쉬실 때 창2:1, 2에 동사 <칼라 כָּלָה>를 사용하는데 이 동사는 ‘완성하다/마치다/성취하다’란 뜻으로서 종말론을 표현한다. 창1:1에 <바라 בָּרָא> 동사로 창조기사가 시작되고 맨 끝인 창2:2에 <칼라 כָּלָה> 동사로 마무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창조는 종말로 귀결된다는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세계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종말론은 이 작품이 마침내 완성된다는 믿음이다. 세계의 역사는 마침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믿음이 창조신앙과 종말신앙이다. 생명과 정의, 평등과 평화,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완성되고야 말 것이다. 성경말씀으로 양육된 그리스도인은 창조신앙과 종말의 희망을 품고 산다.

창조신앙은 우주에 가득한 별들을 우러러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인도한다(시8편).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니 결국 하나님에게로 귀속될 것이다(엡4:6). 그래서 성서는 인간 존재의 든든한 기반을 제공한다. 종말론은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그 암울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하고 기다리는 희망을 제공한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곧 신앙인이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승리하실 것이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16:33).

이영재  rheeyjae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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