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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사랑 허염쪄
임정훈 | 승인 2018.04.17 22:30

봄볕에  즐거운 일이 어디 한 두 가지일까 마는 내게 제일은 쑥 뜯는 일이다. 쑥을 보면 욕심이 생겨 들고 간 바구니를 꽉 채우고 싶다.

그날은 오롯이 쑥을 뜯는 일에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주변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가로등도 없는 시골 낯선 동네에서 길을 잃은 것 이다. 순간 미아가 된 것처럼 당황스러웠다. 그제서야 내 욕심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스쳤다.

궁하면 통한다. 그 때 핸드폰에 들어있는 네비를 켜보자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성실한 네비는 친절하게 나를 집으로 안내해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쑥을 뜯으러 다닌다.

한낮을 피해 적당히 해가 기울고 있는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선다. 그동안 뜯던 곳이 아닌 새로운 길로 나가볼 심산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냉이나 달래, 돌나물 같은 나물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발걸음 닿는 곳곳에 겨울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쑥 만 보일 뿐이다.

육지에서는 쑥을 뜯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의 바구니를 힐끔거리며 인사를 나누기도 했는데 제주에서는 도무지 나물을 뜯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쑥 뜯는 일에만 심취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르신이 뱀 조심하라며 주의를 주고 가신다.

▲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제주의 쑥 ⓒ임정훈

쑥은 봄에 쑥쑥 올라와서 쑥인가? 아니면 배 아플 때 쑥쑥 내려가라고 쑥인가? ‘쑥스럽다’는 어휘에 ‘쑥’은 ‘숙맥’ 즉 콩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숙한 사람을 뜻하는 어원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쑥은 절대 쑥맥이 아니다. 당차고 야무져서 제 할 일을 다 하는 식물이다.

엷게 푼 된장에 바지락을 넣고 여린 쑥으로 쑥국을 끓여 먹어도 좋고, 적당히 자란 쑥은 씻어 말려 살짝 덖어서 쑥차를 만들어 마셔도 좋다. 웃자란 쑥을 여름 밤 모깃불에 얹었을 때 매캐한 연기와 함께 풍겨 나오는 쑥 향을 맡아 본적이 있는가 어디 그뿐인가 쑥뜸이나 쑥환의 효능은 또 어떤가. 특히 부인병 한약재로도 널리 쓰이는 쑥이 아닌가 
그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쑥개떡이다.

오래전 춘궁기라고도 하고 보릿고개라고도 불리던 먹거리가 귀한 시절이 있었다. 그때 형편이 나은 집에서는 쌀을 넣어 쑥개떡을 만들어 먹었고, 대부분은 밀가루를 넣어 만들어 먹었으며, 생 쑥과 밀가루를 함께 섞어 쑥 버무리도 만들어 먹었다.

겨우내 따뜻한 아랫목에서 윷놀이나 실뜨기를 하며 놀던 그 시절에 먹 던 간식은 언제나 꿀물이 손을 끈적하게 만드는 물컹한 고구마였다. 봄이 오면 제일 먼저 바구니를 들고 들녘으로 나가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쑥을 뜯었다. 드디어 상큼한 별식인 쑥개떡이나 쑥버무리를 먹게 된 것이다.

오늘 나도 쑥개떡을 만들기로 했다. 벌써 마음이 설렌다. 아침에 불려 놓았던 쌀을 건져 삶은 쑥과 함께 들고 방앗간을 찾았다. 몇 년 만인가 방앗간을 찾아 나선 것이, 그것도 제주도에서. 두근거리는 내 심정도 몰라주고 두 군데의 방앗간에서 거절을 당했다. 떡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니고 빻아만 달라는 말에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갑자기 의기소침해진다.

그때 낙심한 내게 한 할아버지께서 가르쳐준 방앗간은 아는 사람이나 찾아 갈 것 같은 골목 끝에 있었다. 그 방앗간에서는 흔쾌히 빻아주겠다고 하여 마음이 놓였다.

힘차게 돌아가는 방아소리가 반갑다. 빠르게 돌아가는 방아 소리에 맞춰 피댓줄도 반복해서 돌고 있다. 쌀이 함박눈처럼 함지박으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일차로 빻은 쌀에 쑥을 넣고 버무린다.

▲ 봄쑥으로 만든 쑥떡 ⓒ임정훈

쑥과 쌀이 함께 어우러져 연두빛으로 여들 여들하게 만들어지며 미끄럼을 타고 빠르게 내려온다. 그렇게 쑥과 쌀은 방아를 바꾸며 갈려나오는 동안 점점 곱게 섞여 하나가 되었다.

두 번씩이나 거절을 당해서인지 방앗간집 주인이 정말 고마웠다.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내게 아무 말도 없던 무뚝뚝한 아저씨가“반죽은 꼭 뜨거운 물로 해요”하며 한마디를 건넨다.

집으로 돌아 와서 함박에 떡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장정처럼 치대기 시작한다. 많이 치댈수록 쑥개떡이 차지기 때문이다. 떡가루를 치대면서 그동안 받기만 했던 이웃들과 나누어 먹을 생각을 하니 힘이 더 난다. 먼 길 제주까지 나를 찾아오는 반가운 벗에게도 쑥개떡을 만들어 대접할 것이다.

팍팍 치대 만든 쑥개떡에 아몬드를 두 개씩 박는다. 보기에도 좋고 고소함이 씹히는 업그레이드 된 쑥 개떡이다. 찜 솥에 베보자기를 깔고 동글납작하게 만든 쑥개떡을 가지런히 놓고 찐다.

집안 가득 봄을 알리며 쑥 냄새가 퍼진다. 그것은 긴 세월 동안 내 몸에 녹아있던 유년의 향이었다.

임정훈  author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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