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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의 목적(누가복음 18:22-23)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성훈 | 승인 2018.04.23 00:29

오늘은 교회에 있어서 민감한 문제이면서도 바른 교회를 이루어가자는 이야기를 할 때, 절대로 빠질 수 없는 헌금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헌금에 관한 인식과 사용 방식들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좋은 교회를 만들 수도 있고, 나쁜 교회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이 절대적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가장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만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헌금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 왜 헌금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부분은 다른 때에 기회가 된다면 말씀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헌금은 이미 하신다는 전제하에 그 헌금, 교회의 재정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이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누가복음의 교회(누가복음을 기록한 교회)의 이야기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누가교회

누가복음을 기록한 교회 공동체, 쉽게 누가교회라고 부르겠습니다. 누가교회는 성경 안에 두 개의 책을 기록한 교회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입니다. 이 둘을 연작물로 읽어야 누가교회의 생각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가진 돈을 모두 바치라는 이야기가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은 모든 공관복음에 나오는 말씀이지만, 삭개오가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다고 다짐하는 이야기나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등은 누가복음에서만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또한 사도행전에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일화도 나옵니다.

과부의 헌금, 자신의 소유 전체를 바친 과부야말로 가장 많은 것으로 바쳤다는 이야기는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에만 나옵니다. 마태교회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예수님의 말씀 자료들도 있었고, 자신들의 복음서보다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을 통해 과부의 헌금 이야기를 알고 있었음에도 의도적으로 그 본문을 빼버립니다. 자신들의 신앙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 "Christ and the Rich Young Man" by Heinrich Hofmann ⓒGetty I,age

다시 본래의 주제로 돌아와서 누가복음, 사도행전이 헌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그것을 모두 교회에 바치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말씀들, 가진 것을 모두 바치라는 말씀들은 어떤 교회들에게는 써먹기 좋은 본문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누가교회가 이런 말씀에 집중하면서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앙적인 이유입니다. 누가교회가 가진 재산을 모두 바치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신앙적 바탕은 임박한 종말론입니다. 사실 복음서들이 기록된 이유는 종말이 자꾸만 늦어지고, 예수님을 경험한 제자집단들이 죽음으로 인해 사라져 갔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교회들은 예수님을 경험한 이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그 체험을 글로 남겨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종말이 점점 늦춰짐에 따라 복음서가 기록되었기 때문에 마태, 마가, 요한복음의 경우에는 ‘당장에 이루어질 종말’이라는 생각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난 입장을 취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재림과 종말을 믿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때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는 입장으로 변화됩니다. 하지만 누가교회는 다른 복음서를 기록한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임박한 종말론에서 약간 물러나면서도 헌금에 관한 부분, 교회에 돈을 바치라는 말을 함에 있어서는 임박한 종말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임재하셔서 이 땅에 종말이 올 텐데, 너희들이 가진 재산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모든 재산을 당연하게도 바른 일에 다 쓰고 천국의 보화, 선행을 통한 업적을 쌓아야 한다.” 이런 사상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렇기에 재산을 모두 바치는 사람은 종말을 믿는, 예수님께서 곧 다시 오심을 믿는 진정한 신앙인이고, 같은 맥락에서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재산을 다 바쳐야 합니다.

이런 누가교회의 이야기를 지금 시대에도 가끔씩 볼 수 있습니다. 곧 종말이 오니까 재산을 모두 교회에 바치라는 주장을 하는 곳들이 있는데, 이런 곳들은 누가 보더라도 사이비들입니다. 누가교회가 말하고 있는 임박한 종말 신앙은 예수님 승천 직후에 형성된, 예수님께서 당연히 곧바로 오시리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신앙 체계입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이 기록된 시기나, 바로 지금 예수님 승천이 2000년이나 지난 이 때에도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림이 거짓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주제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본래의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앞서 종말론은 누가교회의 헌금 강요에 대한 신앙적 기반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복음서가 종말의 지연으로부터 기록되기 시작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누가교회가 임박한 종말론을 믿고 있었는가?’라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임박한 종말을 믿고 있으면서 종말의 지연으로 인해 복음서를 기록했다는 점은 모순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가교회가 이런 신앙적 이유를 표면으로 내세우면서 헌금을 강조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습니다.

어쩌면 누가교회가 헌금을 강조하는데 있어서 더 중요한 이유였을지도 모르는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실상 누가교회가 당시에 처해있던 상황은 모두 함께 모여서 기도하면서 기쁘게 종말을 기다리고 맞이하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못 가진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성경에 따르면 과부와 고아들 병든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고, 그들이 교회 주변에 넘쳐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현실적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가 이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교회는 스스로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교회 구성원들, 특히 돈을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의 재산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누가교회는 그들에게 공동생활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재산을 모두 구제에 쓰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이런 누가교회에 대해서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누가교회의 상황을 여실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6장은 일곱 집사를 선출하게 된 배경이 유대인 과부들에 대한 구제에 비해서 헬라파 유대인들에 대한 구제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일을 원활히 해결해나갈 사람들로 헬라파 유대인 중에서 일곱 명을 택하여 집사로 삼습니다.

누가교회는 본래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구제에 중점을 두고 활동해 나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구제 활동이 소문이 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면서 사도행전 6장의 상황, 구제에 불평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누가교회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그나마 교회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많이 가진 사람들의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그것으로 구제를 행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정리하자면, 누가교회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행합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 구제에 중점을 두고 교회를 이끌어갔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가난한 사람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누가교회의 구제 이야기를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난 상황에서 누가교회는 더 이상 구제를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재정에 압박을 느끼게 됩니다. 그랬기에 예수님께서 돈에 관하여 하셨던 말씀들을 자신들의 상황에 맞춰서 변화시키고 신앙체계화 시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교회에 바쳐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임박한 종말 신앙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우게 됩니다.

누가교회에 있어 헌금의 목적

사도 바울의 편지에 보면, 많은 교회들에게 구제를 위한 헌금, 연보를 부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연보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우리는 바울의 편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구제만이 목적이었을 때,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교회는 종말이라는 신앙적 체계를 더욱 강조하였고,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 강하게 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물론 누가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을 실제로도 그렇게 이해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전체의 맥락에서 보았을 때, 그 가능성이 크지는 않습니다.

이런 누가교회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오늘의 이야기와는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여러분께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우리가 그대로 따라야 할 정답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읽어가면서 따라야 한다고 하는 점도 꼭 옳지는 않고, 해석을 한다고 해도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해석한다면 그것도 문제는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누가교회의 이야기, 가진 모든 것을 교회에 바치고 종말을 기다린다는 생각은 지금 시대에 있어서는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 사이비의 교리일 수도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성경의 많은 이야기들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잘못된 신앙의 형태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돈과 관련된 문제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신앙에 무분별하게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누가교회를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점은, 우리가 교회에 헌금할 때에, 또한 교회가 성도님들의 헌금인 교회의 재산을 다룰 때에,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분명한 목적을 취해야 하며, 그 목적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목적이 잘못되어서도 안 되고, 좋은 목적을 가졌다고 해도 잘못된 방식을 택해서는 안 됩니다.

바른 목적을 갖추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읽고 해석하며 깨달아야 합니다. 당시의 교회가 왜 이러한 말씀을 전했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교회가 좋은 방법 속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더 고민해야 하고 더 기도해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그렇겠지만, 특히나 헌금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헌금을 모으기 위해서 성경을, 또한 말씀을 왜곡시켜서는 안 됩니다.

누가교회는 분명히 예수님의 명령에 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말씀하셨던 구제를 자신들의 목적으로 삼았고 그 목적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서 그들은 교회의 재정을 늘릴 필요가 있었습니다만, 그 목적 외에 이들에게 돈 자체의 가치는 크지 않았습니다. 돈을 위해서 교회의 재정을 늘려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누가교회에 있어서 돈은 구제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고, 그 돈을 모으는 수단이 헌금이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헌금의 목적

이제 지금 우리 교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지금 시대의 수많은 교회들은 어디에 목적을 두고 헌금을 모읍니까? 지금의 사회 속에서 교회 유지를 위한 헌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헌금의 1차 목적은 목회자의 사례비를 포함한 교회 유지비가 될 것입니다. 이는 지금의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고 교회를 운영하려면 어쩔 수 없이 돈이 드는 사회이기 때문에 무조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목적이라고 보입니다.

그럼 교회는 이 1차 목적을 제외하고 분명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재정을 운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많은 교회들이 암묵적으로, 또는 너무나 눈에 보이게 헌금의 목적으로 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보았을 때, 수많은 교회들은 교회 유지를 헌금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교역자에게 더 많은 사례비를 제공하기 위해서, 교회의 크기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많은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기 위해서 헌금이 사용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헌금의 목적이 되어 있습니다.

추구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기본이 될 수밖에 없는 점이 최종적인 목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형교회들은 교회를 새로 짓는다면서 몇 십억, 몇 백억을 사용하고, 교회를 보수하는데만도 몇 십억씩 사용합니다. 담임목사님은  좋은 차를 타셔야 한다고, 좋은 음식 드셔야 한다고 하면서 거기에도 많은 돈을 사용하고, 담임 목사님이 걱정이 없어야 성도님들에게 은혜가 넘친다면서 담임 목사 자녀들을 위한 넘쳐나는 학비를 다 지원하곤 합니다.

물론 성도님들이 너무 늘어나서 교회를 증축해야 하는 경우나 교회 건물이 너무 낡아서 보수해야 하는 경우, 당연히 재정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건축헌금이라고 교회에서 모으고 있는 헌금이 어쩔 수 없이 필요에 의해서 모으고 사용되는 헌금입니까? 오히려 굳이 필요없음에도 교회 건물이 커야 전도가 잘 된다던지, 건축이라는 목적이 있어야 성도님들이 힘을 모은다던지 하는 잘못된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목회자의 복지에 관해서, 저도 목회자로서 일정 부분 누리고 있는 면도 있고,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문제는 그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강조된다는 점입니다.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하고 있는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자신들은 너무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공부하기 위해서 힘들게 노력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제 선배 중 한 명은 보스턴 대학에서 석사를 하던 시절, 학교 내 아르바이트, 일반 아르바이트, 전도사, 이렇게 쓰리잡을 뛰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유학생들 중에 정말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장학금도 안받고 그냥 돈 다 내고 들어온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미국 아이비리그에 있는 대학들에 학비 전액 다 내겠다고 하면 들어가기 어렵지 않습니다. 영어 못해도 됩니다. 1년이나 2년 정도 어학연수 코스 밟은 다음에 입학하면 어지간해서는 다 받아줍니다. 다만 그 대학에서 어학연수하는 것도 비용이 들어가니까 문제가 되는 것뿐입니다.

2016년 예일대에서 공식적으로 나온 1년 학비가 등록금, 기숙사비, 보험비, 평균적인 개인 생활비를 합쳐서 7만 달러, 지금은 환율이 많이 떨어졌지만 당시 환율이 1200원이었으니까 우리 돈으로 바꿔보면 8400만원입니다. 생활비가 기본 생활비로 잡혀있기 때문에 더 쓰면서 산다고 치면 대충 1년에 1억이 드는데, 이 돈 다 내고 미국 와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신학 전공자 이외에는 엄청 많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약간의 부러움에 대한, 돈 많은 부모 만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 친구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대부분의 신학 전공자들은 생활이 어려운 편인데, 그 중에도 편하게 유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알고 보면 대부분 대형교회 목사님들 자녀들이라고 합니다. 그 친구의 개인적 판단에 의한 이야기입니다만, 공부를 못해서 한국에 있는 좋은 대학을 가긴 어려우니까 미국에 있는 좋은 대학에 돈 내고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돈을 다 교회에서 내줍니다. 성도님들의 헌금이 담임목사님 아들을 구제하는데 사용되고 있으니까 선교헌금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요?

나가는 말

누가교회는 구제를 자신들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도 구제를 더욱 강조하였고, 그 말씀을 바탕으로 극단적인 헌금 생활을 강조하는 신앙 체계를 이루어갔습니다. 지금 시대에 누가교회의 신앙을 그대로 따른다는 것은 어려움이 있어 보이고, 또한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가교회를 통해서 배워야 할 점이 있습니다. 교회가 헌금을 다루는 데에 분명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분명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말씀을 왜곡시켜서 잘못된 목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는 바른 말씀을 해석해서 전해야 하고, 성도님들은 그 말씀을 듣고 깨달아 함께 합심하여 교회의 바른 방향성을 다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선한 목적을 향해서 헌금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앞서 지금의 교회들이 헌금을 잘못 다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드렸습니다만, 그런 교회들도 사실은 선교에 많은 재정을 사용합니다. 대형교회일수록 선교에 사용되는 재정의 절대적 금액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재정의 50%를 선교에 사용한다고 해서, 나머지 50% 중에서 10%, 아니 1%라도 잘못된 곳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교회들은 어디에 목적을 두고 교회의 재정을 운용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저 역시도 당회 때마다, 제직회 때마다 성도님들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만,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하며 기도해야 할 주제입니다. 교회 자체를 위한 헌금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위한 헌금,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헌금이 이루어질 때, 우리 교회들이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욕먹는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전하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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