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프란시스홀에서 <故 육우당 15주기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추모 기도회>가 지난 2018년 4월 26일에 열렸었다. 당일 프란시스홀은 그간 혐오와 차별로 죽임당한 사람들의 사진과 국화꽃이 올려져 있었다.

▲ 프란시스홀 추모 공간 ⓒ윤성중

육우당(六友堂). 그 필명은 ‘술,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 이 6가지가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 생각해 붙인 이름이다. 그 필명에서 묻어 나오는 고독함에서 알 수 있듯이 육우당은 중학교 재학 중에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 중고등학교 내내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학생 시절부터 시와 작문을 시작했으며, 고등학생이었던 2002년 1월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다.

같은 해 동성애자인권연대에 가입하여 학생 운동가 활동을 하다가, 2003년 4월 26일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평소 동성애자로서의 삶도 힘들었는데 이제 소돔과 고모라, 하느님의 유황불 심판까지 들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슬픕니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예요.”라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죽은 지 15년째가 되는 2018년, 작년에 일어난 각계 교단의 성소수자 공격에 이어서 올해에는 보수 개신교계의 압박으로 충남인권조례가 폐지가 되었다. 성소수자 혐오가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도 육우당이 예언한 “언젠가 올 좋은 날”을 믿는 150여 명의 사람들이 기도회에 참석했다. 기도회는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생회장인 김하나 씨가 인도하였다. 잠시 고요한 침묵 뒤에 육우당이 남긴 시조를 함께 읽으며 기도회가 시작했다.

어서 오라 어서 오라 평화로운 세상이여
어두컴컴 암흑세계 잡아먹고 어서 오라
은하수가 흐르듯이 꽃잎 타고 흘러오라
평등평화 아름다운 세상이여 어서 오라
동성애자 보호받고 장애인도 존중받고
흑인 또한 사람대접 받는 세상 낙원이여
그런 날이 온다면은 모든 이가 밤낮없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할 것이다
'낙원가', 육우당

▲ "퀴어함께" 김재욱 목사가 기도를 하고 있다 ⓒ윤성중

기도회는 총 5개의 기도문으로 진행되었다. ODMCC열린문메트로폴리탄공동체교회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한 기도’를, 성공회 길찾는교회가 ‘혐오와 차별, 젠더 폭력에 희생된 이들을 위한 기도’를, 감리교 퀴어함께가 ‘HIV/AIDS 감염인을 위한 기도’를, 혁명기도원에서 ‘사회구조와 제도의 변혁을 위한 기도’를, 로뎀나무그늘교회에서 ‘더 많은 무지개를 위한 기도’를 나누었다. 기도가 끝날 때마다 무거운 침묵이 프란시스홀을 가득 메웠다. 기도 중에 참석자들은 한숨을 내뱉고, 몇몇은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다.

까마득한 그 옛날, 믿음의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집트와 로마의 번영과 권세가 그리울지라도, 그것은 누군가를 희생해서 세워진 세상이라는 것을, 거 기서 힘들고 지칠지라도 당신의 가르침을 증언하는 이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특별히 당신의 가르침을 증언하던 고 육우당님을 비롯하여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많은 이들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바라옵건대 많은 영혼들이 평안히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십시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이들이 당신의 뜻을 알 수 있도록 희망을 주십시오. 그리고 억압받는 우리의 이웃들을 지나치지 않을 수 있도록, 함께 걸을 수 있게 사랑을 주십시오. 그리고 함께 해 주소서.
- 혐오와 차별, 젠더 폭력에 희생된 이들을 위한 기도 중

당신의 정의가 무너져가는 이스라엘의 모습에서도 희망을 약속하신 하느님.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구성원이기에 사회가 구성원들의 존엄을 지킬 수 있게 하는 법과 제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군 형법 제92조 6 폐지’, ‘지역 인권조례 제정’, ‘차별금지법 제정’,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구성원들이 구성원으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지극히 기초적이고 당연한 법체계입니다. 비록 이 기본적인 것들조차 허용하지 않으려는 사회에 절망감을 느끼지만, 그 가운데서 희망을 약속하셨고, 그것이 이루어짐을 보여주신 당신을 기억합니다. 속히 이것들이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그날을 기다립니다. - 사회구조와 제도의 변혁을 위한 기도 중

▲ 길가는밴드가 노래를 하고 있다 ⓒ윤성중

특송은 기도회 중간에 예향(해금 연주와 노래)이 ‘기억해줘’라는 곡을 들려주었다. “내가 어디에 있든 기억해줘”라는 울림이 프란시스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성찬식이 끝나갈 때쯤 길가는밴드에서 ‘다시 봄’과 ‘우리는 마침내 서로의 용기가 되어’를 들려주었다.

▲ 기도 순서가 끝난 후 성찬식을 하였다. 성찬 집례는 유연희 목사, 나가오 유키 목사, 노승훈 신부가 하였다. ⓒ윤성중

성찬이 끝나고 ‘사랑이 이기네’를 함께 부른 후 서로의 손바닥을 맞잡고 공동 축도로 기도회가 마무리되었다. 기도회가 끝난 뒤에도 눈물을 터트리는 참석자, 위로하는 참석자, 국화를 헌화하는 참석자들로 프란시스홀은 한동안 북적였다.

우리는 함께 추억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작은 노랫소리에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를.
우리는 함께 기도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누군가 가꾸던 꿈들이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기를.
우리가 우리로 살아간다는 것이 더 이상 아픈 일이 아닌 세상을
우리는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를 지켜주세요,
우리를 따뜻하게 지켜봐 주세요.
어느 멋진 날에 우리는 결국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그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날 때,
머리맡에 눈부시게 서있는 당신을 만날 그날이 올 겁니다.

이런 우리들을 만드시고 아름답다고 이야기해주신 하느님/하나님의 사랑과
교회에서 쫓겨난 성소수자들과 함께 울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에 상관없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친구되심이
당신 안에, 또 우리 안에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 공동 축도문

▲ 참석자들은 손을 맞대고 공동 축도로 마무리하였다. ⓒ윤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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