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말에 나는 서울구치소 (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구속되어 있었다. 박정희 독재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소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2년 형을 살고 있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이어 두 번째 감옥 생활이었다. 전자공학과를 4학년까지 다녔던 내가 하나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고백은 1977년 부활절 새벽의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었다. 그 소명 경험 이후 나는 “하나님, 제발 신학교에 갈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매일 기도했다. 정말 간절했다. 구속된 후 이미 대학에서는 제적됐다. 타 대학으로 편입학이나 재입학, 유학조차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신학을 배울 길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놀라운 방식으로 응답하셨다. 1978년 2월 말 출소 3일 만에 나는 아주 특별한 신학교가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설립한 신학교인데,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제적당한 학생들만이 입학 자격이 있다고 했다. 교수진은 서남동, 안병무, 이우정, 문익환, 김찬국, 문동환 선생님 등으로 역시 민주화 운동을 대학에서 해직된 분들이었다.

1978년 3월 초 서울 서대문 충정로에 있는 선교교육원으로 달려갔다. 긴장하고 면접장에 들어갔다. 선생님들이 다 감옥 생활을 하거나 해직된 분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귀공자 스타일의 한 분이 여러 면접관들 중에서 눈에 확 띄었다. 두툼한 갈색 양복에 입술이 도톰하고 얼굴 윤곽이 고운 분이었다. 서남동 목사님이셨다. 이 때 첫 인상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후에 뵐 때마다 ‘참으로 패션 감각이 뛰어난 분이다.’, ‘멋쟁이다.’ 하는 감탄을 계속했다. 스웨터, 조끼, 가디건, 넥타이, 안경 어느 것 하나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 늘 깔끔하고 멋진 모습을 보이셨던 서남동 목사님. ⓒ죽재 서남동 목사 100주년 기념사업회 제공

한 번은 연세대학교 교내에 있던 오래된 교수 사택에 간 적이 있었다. 연대 교수로 계시다가 해직 되었는데 학교 측에서 계속 살도록 허용한 상태이었다. 아마 지금의 상남경영원 자리일 것이다. 집이 숲 속에 있어서 아주 고즈넉 했는데 들어가자 맨 먼저 책으로 둘러싸인 벽면에 압도되었다. 좀 어둡다는 느낌이었는데 초가 몇 개 켜있었다. 집 안은 모든 것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모든 것이 제대로 있는 것 같이 정갈하고 차분했다. 그 당시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스타일이었는데 아마 서구식 정리 정돈이었을 것이다.

포도주를 주시고 이야기를 시작하셨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지금 기억에 없다. 다만 3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듣는데 어색하거나 어렵지 않고,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이었다. 용기를 내서 물었다. ‘목사님, 매일 옷은 어떻게 골라 입고 출근하세요?’ 무심하게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입지’ 대답하셨는데, 옆에 있던 사모님이 펄쩍 뛰었다. 아니라고 ‘전부 서 목사님이 스스로 다 챙긴다’고 - 서 목사님이 여기에 반박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보아 아마 사모님 말씀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직 나이가 30도 안 되었을 때이었다. 투쟁, 투옥, 도피로 점철된 그 엄혹한 시대에 생활 속에서는  ‘멋’을 누릴 여유를 가지고 사셨던 서 목사님이 부러웠다.

나는 면접장에서 서 목사님의 두 질문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 “권 군은 무엇을 위해 신학을 하려 하는가?” “권 군은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이다.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까지는 하나님 소명을 받았다고 믿었으니까 그저 목사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과정으로 신학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목사가 된 후 서 목사님의 이 질문에 스스로 대답을 해야 할 때가 생겼다. 내 생활과 인생 방향에 의심이 생길 때마다 이 질문들은 나를 비춰보는 거울이 되었다.

나는 서 목사님께서 강의한 조직신학 수업 노트를 지금도 갖고 있다. 첫 페이지에는 ‘하루 18시간 노동을 하고, 월급 3만 3550원을 받는 5인 가족의 가장인 농심 라면 임석철 씨’ 사건과 그 의미에 대해 기록돼 있다. 서 목사님은 임석철이라는 민중이 겪었던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세상 약자들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가르치셨다. 그것도 처음 신학을 대하는 1학년 1학기 학생 첫 수업에... 서 목사님의 열정이었다.

서 목사님의 가르침과 결론은 단순했다. 목사와 교회는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한 하나님의 심부름꾼, 즉 ‘한(恨)의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서 목사님의 그 열정, 사회의 약자와 소외 이웃들에 대한 열정을 누가 따라갈 수 있을까. 나는 어떤 목사가 될지에 대해 특별한 생각도 없이 그저 신학교에 입학하려 했었다. 그런데 서 목사님에게 배우면서 비로소 목회자로서의 방향을 잡았다. 나 자신 서 목사님에게서 배운 엄격한 목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늘 조바심을 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줄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늘 기도한다.

3년을 배우면서 나는 서 목사님 손에서 책이 떠나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책상 위에는 항상 손바닥 두 뼘 높이로 책들이 쌓여 있었다. 한 번은 방을 치우면서 ‘기독교사상’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시 청년이었던 나도 그냥 한 번 훑어보고 말았는데 서 목사님은 거기에 여기저기 밑줄을 가득 치셨다. 학문에는 엄청 진지하셨다. 한번은 목사님께 물었다. “평생 공부하셨는데 신학교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격인데 무슨 책을 그렇게 많이 보세요?” 목사님의 대답은 딱 한 마디였다. “내가 공부하지 않고 어떻게 남을 가르치겠나” 신학에 걸음마를 하는 초보자들을 가르치면서도 최선을 다하신 서 목사님을 기억할 때마다 나는 ‘내가 과연 목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하고 반성하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 서 목사님의 여러 모습이 오락가락 떠오른다. 교육원 학생들은 모두 준목고시를 한 번에 완전 합격해야 한다고 재촉하셨던 모습, 1980년대 초 미국문화원 사건 이후 정보부에 끌려갔다가 동료 목사의 배신을 보고 분개하셨던 모습, 저자의 이름이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800페이지가 넘는 영어 원서를 복사해서 나누어 주고 하나님 계약 공동체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가르치시던 모습, 교육원장 직책을 총회 정치 제물로 삼는 것에 낙망하셨던 모습, 보신탕을 즐겨 하시면서 데리고 다니며 나에게도 먹는 것을 알려 주셨던 모습, 캐나다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좋아 하시던 모습, 병상에서 이제 곧 나을 것이라고 기대하시던 모습, 자녀 때문에 걱정하시던 모습 - 다 그립다. 그런 어른이 어디에 또 있을까?

1984년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불과 66세의 나이셨다. 딱 지금의 내 나이다. 벌써 34년이 지났지만 목사님 생각이 난다. 성실한 가르침과 제자들에 대한 격려와 애정, 고난 받는 이웃에 대한 책임감, 무엇보다 이 시대 목사와 교회가 서야 할 자리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신 분이다. 서 목사님이 돌아가신 이듬해에 제자들이 힘을 모아 묘비를 만들어 기독교 공원묘원 세웠다. 한의 사제로 산 일생을 묘비에 적으며 잘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서 목사님의 유해가 광주 5.18 국립묘지로 이장하면서 그 묘비는 지금 선교교육원 마당에 옮겨졌다. 그 곳에 갈 때마다 그 묘비를 보며 가르쳐 주신 대로 살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올해는 서남동 목사님 탄생 100년이다. 남겨진 숙제는 후학들의 몫이다.

권오성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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