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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仁義)와 지혜(智慧)를 내려놓아라”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18
이병일 | 승인 2018.05.07 23:02
“大道를 버리니 이에 仁義가 있게 되었다. 智慧를 드러내니 이에 큰 거짓이 있게 되었다. 六親이 不和하니 이에 孝慈가 있게 되었고, 나라가 어둡고 어지러우니 이에 忠臣이 있게 되었다.”
- 노자, 『도덕경』, 18장
(故)大道廢, (案)有仁義. 智慧出, (案)有大僞. 六親不和, (案)有孝慈. 國家昏亂, (案)有忠臣

백성이 자연의 도덕대로 살아가는 대도의 질서가 무너지고 인의와 같은 도덕이 나왔다고 노자는 탄식합니다. 大道는 자연에 비유하면 우주의 理法이고 인간에 적용하면 삶의 기본적 원리입니다. 도를 우주의 운행 원리로 본다면 그 도가 인간에게 적용될 때 덕이 됩니다. 노자는 대도가 사라지니 인의가 나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은 악을 배제하고 선을 실천하는 선택적 사랑입니다. 이미 선악의 개념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맹자는 인을 惻隱之心(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라 하고 義를 羞惡之心(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도는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신분에 따라 제 분수를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은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의 도덕을 지키는 도덕적 태도입니다. 의는 올바름이니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사람을 좋아할 수 있으며, 또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 공자는 예를 실천하기 위해 仁義, 忠, 孝, 공손함(恭), 사양함(讓), 克己 등을 배우고 익혀야 할 덕목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Getty Image

그러나 노자는 자연의 도가 무너져 나온 것이 인의와 예라고 합니다. 인의나 충효가 혼란을 해결하는 올바른 길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노자는 인간의 마음 안에 원래 도덕규범이 내재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다루지 않고 사회적인 인륜의 질서를 절대시하는 태도를 비판합니다. 인의(仁義)와 지혜(智慧)와 효자(孝慈)와 충신(忠臣)이 자기 자신에게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라면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남을 향하는 규범이 되고, 남을 가르치거나 강요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훌륭한 도덕일지라도 관계의 장애가 될 뿐입니다.

역경 가운데 영웅이 나오고, 전쟁 중에 명장이 나오고, 병이 위중해야 명의가 나옵니다. 역경과 전쟁 자체는 인간 본성의 타락과 관련이 있는 것이요, 그 자체 善은 아닙니다. 윤리 규범을 강조하게 된 사실이 벌써 도가 무너진 것을 역으로 반영합니다. 사랑과 정의를 강조하는 사회는 벌써 사랑과 정의 상태에서 벗어났거나 결핍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의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 류시화의 시 “길 위에서의 생각”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살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보편적인 가치는 이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 행위는 물론이고 정치적 행위도 이익에 결부되어 행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삶도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에게 어떤 이익이 있느냐에 따라서 관계를 맺기도 하고 끊기도 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극단적으로 자극하는 자본주의적 삶이 인간의 가치관마저 바꾸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익과 경쟁을 추구하는 것, 성공이나 제일주의는 이 사회에서 확실한 가치로 자리 잡았습니다. 더욱이 인의나 도덕이나 규범이라는 틀로 그러한 가치를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고 자연과 도의 길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물론 그 수는 소수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에도 불굴하고 예수님의 길을 진지하게 따르려는 사람들은 실패를 하더라도, 손해를 보더라도, 손실을 입더라도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고 열심히 땀 흘려 일하지만 그 결실을 하느님께 맡기듯이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그 길을 갑니다. 그 길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가치관의 혁명적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의 싹을 이번 남북 정상회담과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보았습니다. 희망의 열매가 맺기를 함께 수고합시다.

“길 위(길 가), 돌 위(돌짝 밭), 가시덤불 속, 좋은 흙. 이 네 가지는 서로 다른 곳이 아니라 한 밭에 있는 서로 다른 상황입니다. 한 밭 속에 길도 있고 돌도 있고 가시덤불도 있고 좋은 흙도 있다는 것입니다. 네 가지 밭과 같은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네 가지의 상태에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공동체 안에 네 가지의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같이 있다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 수고를 합니다. 그런데 길 위, 돌 위,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는 열매를 내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싹을 틔우기도 전에 새들이 먹고, 싹이 나오자마자 햇빛에 말라버리고, 조금 자라다가 가시덤불에 치여서 죽게 됩니다. 그것은 분명한 손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씨 뿌리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씨앗들의 결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현실과 같습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여러 가지 현실 속에 던져집니다. 평온할 때도 있고, 위험과 위기에 처할 때도 있고, 경쟁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이룬 성과로 기쁨을 나누기도 합니다. 씨를 뿌리는 행위는 우리의 삶입니다. 그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떤 씨앗을 무엇을 위해서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지만 그 결과가 모두 풍성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분명히 손실도 있습니다. 열매를 거두려는 사람은 씨 뿌릴 때에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씨 뿌리는 사람에게 손실을 위로함과 동시에 결실에 대한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씨 뿌리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씨 뿌림입니다. 그 일이 항상 잘 되어 열매를 맺거나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실패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실패할 때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고 살지 못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이 항상 기쁨으로 단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사람을 이야기하면서 손실(실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씨를 뿌리는 농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는 하느님의 일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거나 씨 뿌리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습니다. 손실이 있더라도 씨를 뿌리고 자라게 하면서 결실을 기다리는 것이 농부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씨 뿌리는 일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밟아서 굳어진 길을 갈아엎고, 돌을 주워내고, 가시덤불을 제거하는 일도 우리가 계속 해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풍년가를 부를 때까지 하느님의 사람들은 계속 씨를 뿌릴 것입니다. 실패할지라도 또 다른 결실의 희망을 품고.”
- 이병일, 『미친 예수』 (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에서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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