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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그리스도의 비밀(골로새서 4:2~6)통념에 따른 일상적 삶을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최형묵 | 승인 2018.05.09 22:15

몇 주 전에도 골로새서의 말씀을 함께 나눴습니다만,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의 사상에 정통한 다른 어떤 사람 이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신입니다. 그 핵심적인 취지가 무엇일까요?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 신앙의 본질적인 요건인 것처럼 곡해되고 있는 풍토 가운데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길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 그 요지입니다.

2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
3 또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비밀을 전하는 일로 매여 있습니다.
4 그러니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로 이 비밀을 나타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5 외부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대하고, 기회를 선용하십시오.
6 여러분의 말은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마땅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아주 구체적인 권면의 말씀 형태로 되어 있는 오늘 본문말씀은 함께 새겨야 할 것들이 많지만, 그 취지를 간추리면 간결하게 집약됩니다. 전반부에서는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라는 것을 권고하고 있고, 후반부에서는 교회 바깥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권고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권면을 연결하는 핵심으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파하는 몫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찬찬히 본문말씀을 다시 환기해보겠습니다.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 기도하는 것이 곧 깨어 있음을 뜻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지속하는 것, 그것은 항상 깨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권면의 말씀을 따라 교회에서는 철야기도를 하기도 합니다만, 본문말씀은 단지 하나의 의례화된 계기로서 기도를 강조하는 것은 아니고 보다 근본적인 차원을 말합니다. 마치 잠자는 것과 같은 삶의 상태가 아니라 항상 깨어 있는 삶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대화, 곧 기도를 지속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묻고 구하는 태도입니다.

여기서 사도는 한 가지 더 주문합니다. 일차적으로 기도는 자신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 마땅한 전제에 더하여 사도는 각별히 부탁합니다.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중보기도에 대한 부탁입니다. 사도들을 위해 드려야 할 중보기도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열어 주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게 하시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바로 그 일,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는 일 때문에 감옥에 갇힌 처지라는 것을 밝히며 다시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그러니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로, 이 비밀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비밀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이야기입니다.

ⓒGetty Image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비밀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스도께서 정말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비의를 가르쳐주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을까요? 여기서 말하는 비밀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이 뜻하는 바를 말합니다. 의도적으로 감추어져 있어서 비밀이 된 것이 아니라, 만천하에 알려져 있음에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해 비밀처럼 되어 있던 진실을 말합니다. 이 기도의 부탁은, 사도들이 그 진실을 사람들이 충분히 알아듣고 깨우칠 수 있도록 말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비밀이 함축하는 진실이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진정한 구원의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누누이 이야기해왔던 바입니다. 다시 오늘 말씀의 후반부에서 확인하겠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 비밀이 드러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 비밀이 드러난 효과의 일단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비밀을 전하는 일로 매여 있습니다.” 이 말은 그 비밀을 전파하는 일로 감옥에 갇힌 것을 말합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의 비밀, 하나님의 비밀의 말씀이 그저 듣기 좋은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기존 통념을 뒤흔드는 말씀, 충격을 가하는 말씀으로,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갈등과 고통을 가하는 말씀으로 다가서는 위력을 지닌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는 그 말씀을 온전히 전할 수 있도록 자신들을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사도는 골로새교회 교우들에게도 그 말씀을 세상에 전하라고 권고합니다. “외부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대하고, 때를 선용하십시오. 여러분은 언제나, 소금으로 맛을 내는 것과 같이, 은혜가 넘치게 말을 하십시오. 여러분은 묻는 이들에게 적절한 대답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대화의 기술 또는 대화의 에티켓을 갖추라는 말 정도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차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통념에 사로잡힌 사람들, 통념에 따른 일상적 삶을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삶을 변화시키고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때를 선용하여, 다시 말해 늘 깨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늘 적절한 기회를 선용함으로써 그 진실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로써 하나님과 대화하는 사람이라면 똑같이 사람들 사이에서도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를 선용하여 그 과제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미 앞서 말한 대로, 중요한 하나의 초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온전히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교회 교우들에게 주는 권면으로서 본문말씀은, 먼저 사도들이 그 비밀을 온전히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나아가 스스로 그 비밀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 비밀의 말씀이 과연 어떤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전승이 있습니다. 이미 수년 전에 우리 교회에서는 도마복음서를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도마복음서는 그 첫머리에서 예수의 비밀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0 이것은 살아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디두모 유다 도마가 받아 적은 비밀의 말씀들입니다. 1 그가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올바르게 풀이한 사람은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할 것입니다.’ 2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추구하는 사람은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찾으면 혼란스러워지고, 혼란스러워지면 놀랄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왜 비밀의 말씀일까요? 앞서 말했듯이, 그것은 애초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은밀하게 전해졌기 때문에 비밀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못 알아먹기 때문에 비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통념과 가치관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은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종교의 표층세계가 아니라 심층세계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사람들의 일반적인 통념으로 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말씀은 꼭 해석을 필요로 합니다. 잘 풀어야 이해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올바르게 풀이한 사람은 결코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그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무조건 믿으라고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잘 풀어서 사람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많은 교회의 현실이 이와는 얼마나 동떨어져 있습니까? 말은 쉬울지 모르나, 진짜 말씀의 풀이는 사라지고, 말씀을 빙자하여 엉뚱한 이야기가 선포되고 있지는 않나요? 그러기에 교회가 교회다워질 수가 없습니다.

도마복음서는 말씀을 잘 풀어서 받아들이면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비밀의 말씀을 잘 해석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육체적 죽음을 부정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치 죽음과도 같은 삶으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삶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도마복음서의 말씀을 따라 가보면, 그 다음 이야기가 충격적입니다. “추구하는 사람은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찾으면 혼란스러워지고, 혼란스러워지면 놀랄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선 우리에게 익숙한 누가복음서의 말씀을 연상시킵니다. “구하여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11:9~10)

여기서는 구하면 곧바로 얻는다는 확언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열심히 구하면 얻게 될 테니까 그 다음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도마복음서의 말씀은 그 다음이 걱정스럽게 되리라는 것을 말합니다.

앞의 말씀과 연관해서 그 뜻을 풀이하자면 비밀의 말씀을 깨달을 때까지 끝까지 그 뜻을 캐물으라는 이야기인데, 마침내 그 뜻을 깨닫고 나면 혼란을 겪고 충격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의미심장합니다. 통념을 깨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당연하고 충격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제가 종종 이야기합니다만, “진리란 우리가 싫어하는 그 무엇”이라고 하는 경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애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많은 경우 자기가 아는 것만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이 더 강합니다. 통념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고 그 통념을 재확인할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 통념에서 벗어나는 어떤 진실을 깨달을 때 혼란을 경험하고 충격에 빠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혼란에 빠진다’고 번역된 말은 ‘고통을 겪게 된다’는 의미로도 새겨질 수 있는 말입니다. 혼란에 빠진다는 것은 내면적인 갈등을 뜻하는 반면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는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알면 다친다’고 하지요? 비밀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그 두 가지를 모두 동반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비밀의 말씀을 제대로 풀이한 사람은 죽지 않을 것이라 했던 약속은, 이 대목에서 그 혼란과 충격을 겪은 후에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확언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과정은 혼란과 충격을 동반하겠지만, 마침내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는 온전한 평정심을 얻고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비밀의 말씀의 위력을 말합니다. 갈등과 혼란, 그리고 고통이 그 말씀이 지니는 최종적 효과가 아니고 마침내 사람을 살리는 것이 그 궁극적 효과라는 것을 말합니다. 바른 길이 무엇인지 깨달음으로써 마음의 자유를 얻고, 그 길을 따름으로써 세상에 평화를 이룬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골로새서가 말하는 비밀과 도마복음서가 말하는 비밀은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비밀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밀은 진리 또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비밀의 말씀을 설파했던 주인공이 비밀의 말씀의 핵심이 되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비밀을 체현했다는 점에서 볼 것 같으면 그 본질적인 의미의 차이는 없습니다. 결국 오늘 골로새서가 말하는 비밀의 말씀과 도마복음서가 말하는 비밀의 말씀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굳이 도마복음서의 말씀을 덧붙여, 오늘 본문말씀의 의미를 다시 새긴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이 함축하는 뜻, 그 뜻을 깨닫는 것이 비밀을 깨닫는 것이며, 그것을 전하는 것이 곧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됩니다. 그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사람들 가운데서 온전히 사랑을 이룬 삶,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그것을 보고 깨달은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많은 사람은 그것을 보고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게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또 하나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입니다. 그렇게 온전히 사랑을 실천했을 뿐인 분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 사건은 참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극적으로 대비시켜줬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참 생명을 따르기보다는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그 세력에 동참하고 그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사건은 일깨워주었습니다. 예수의 삶과 죽음이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삶 한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보편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출발합니다.

그 신앙을 따르는 것은 그저 내면의 차원에 한정된 것이거나, 이 세상의 삶의 현실과 무관한 어떤 차원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그 신앙을 구현해나갈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그 신앙의 의미, 오늘 성경 말씀의 의미를, 아름다운 계절의 한 복판에서, 더욱이 모처럼 평화의 기운이 넘실거리고 희망으로 가득 찬 현실 한 가운데서 새길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무엇이 사람을 살리는 길인지, 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인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 길이 오해되고 곡해되었던 그 어두웠던 시대를 뒤로 하고 사람들 앞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대가 누리는 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이은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을 맞이하는 가운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기쁨을 누리는 이 계절에, 우리는 우리의 후세대들에게 과연 무엇을 유산으로 전해줄 수 있을지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평화를 누리는 세상을 보장하는 길, 그 길을 향한 믿음입니다. 오늘 그 믿음을 더욱 굳게 다지고, 나아가 이 땅에 진실을 전하고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기를 결단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최형묵  chm189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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