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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평화박물관과 강정마을-‘고난함께’ 제주 평화기행 2
최근규 | 승인 2018.05.11 23:23

자유와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평화박물관

오전에 4・3평화공원 일정을 마치고, 방문한 곳은 가마오름이 있는 제주평화박물관이었다. 제주평화 박물관은 개인이 세운 박물관이다. 박물관 설립자 이영근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군에 강제징용 당한 사실을 듣고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박물관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 이영근씨는 박물관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다. 일본군의 강제노역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 재산과 삶을 바쳤지만, 박물관 운영을 한 개인이 감당하기엔 무리였다. 박물관 측에선 정부가 강제징용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박물관을 구입해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 오름 입구 ⓒ백현빈

부끄럽지만 제주에 이러한 아픔이 있는지 모르고 살아왔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들은 제주도민들을 강제동원해 오름과 해안절벽에 굴을 파게했다. 어린이 청년 할 것 없었다. 땅굴을 파기위해 노역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곤 곡괭이 삽과 같은 원시적 도구뿐이었다. 종일토록 일한 노역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삼각 김밥 크기의 주먹밥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건장한 청년이라 할지라도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었고, 몸이 망가진 이들은 용도처분 당해야만 했다.

오름에 땅굴을 만든 이유는 일본군의 지하군사기지로 사용하기 위함이었고, 해안가에 굴을 만든 이유는 미군함대를 향해 자살공격을 감행할 일본군 보트를 숨기기 위함이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의 최후 결전지로 제주도를 선택한 것이다. 자신들의 본토에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한 속셈이었다.

다행히 일본군의 생각대로 제주도는 전쟁터가 되지 않았다. 미군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일본은 항복하며 전쟁은 종결 되었다. 하지만 미군이 일본의 생각대로 제주도 상륙을 시행했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나라 잃은 것도 서러 운데, 나라를 빼앗은 이들을 위해 삶의 터전을 전쟁터로 만들어야 했을 이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그 고난을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자유와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제주평화 박물관 입구 쪽 건물에 큼지막하게 표기된 글귀다. 이 글귀에 박물관 설립자 이영근씨의 삶이 녹아있는 듯하다. 자유와 평등은 지나간 고난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 노력할 때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민족의 아픔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소중한 박물관이 많은 이들에게 기억 되었으면 좋겠다.

▲ 평화박물관에서 ⓒ백현빈

강정마을, 제주의 숨비소리

평화기행의 마지막 일정인 강정마을에 도착했다. 강정마을 평화센터에 우리를 처음 맞이하는 것은 센터 앞에 우뚝 서있는 정승이었다. 그 정승엔 이사야 말씀이 적혀있다.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이 말씀 속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의 간절함을 볼 수 있었다.

현장증언은 정선녀 강정 공소회장님이 해주셨다. 공소는 신부나 수녀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뜻한다. 그 분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4천일이 넘는 투쟁의 과정 속에서 생겨날 법한 분노와 억울함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신보고 ‘니 말 장시(말 장수)하면 아주 잘하겠다’고 칭찬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분이 나누어 주신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기억을 떠나지 않는다.

▲ 정선녀 강정 공소회장 ⓒ백현빈

지금은 물때라 예전에는 이 시기에 바다로 나가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상한 취급을 했다고 한다. 물때가 되어 바다로 나가면 바구니가 넘칠 정도로 톳이며 해삼을 주워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강정은 풍성한 마을이었다.

나이를 많이 먹어 뭍에서는 휠체어 끓고 다니던 할망(할머니의 제주도 방언)도 물에 들어가면 날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나이 드신 해녀들은 물질하다 숨비소리 내지 못하고, 물숨 먹고 바다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종종 계셨다고 한다. 해녀들은 물숨 먹고 돌아가시는 분들을 보면 무섭고 놀라기보다, 물질하는 해녀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현재 강정바다는 군사기지가 들어온 이후로 해초가 싹 사라졌다고 한다. 전에는 소라가 많이 있었는데 해초가 없으니 소라들이 먹을 것이 없어 영양실조에 걸렸고, 결국 소라껍데기를 등에 지고 살아갈 수가 없어 가제들에게 집을 몽땅 빼앗긴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제주사람들은 ‘노미집살이(남의 집 살이)’라고 부른단다. 공소회장님은 현재 제주도 상황이 노미집살이하는 모습과 비슷하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삼촌(이웃을 부르는 호칭)이 물질하러 나가면 이웃집 삼촌이 아기들 젖 물려주던 동네였는데, 노미집살이 하는 것들 때문에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싸워야만 했다. 이 분쟁은 점점 안 좋은 쪽으로 기울고 있다. 강정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마을 회장이 뽑혔고, 연대하는 지킴이들이 마을에 거주하는 것 또한 반대하는 것이다. 연대하기 위해 온 이들이 마을회관에서 지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찬성하는 쪽 사람이 마을회장이 되었기에 사용이 어려워진 상태라고 한다.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강정주민들의 찬성과 반대가 나뉘는 이유는 지역개발과 관련되어있다. 찬성하는 쪽은 미군기지가 들어와야 마을 살림살이가 나아진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해군기지 건설에 끝까지 싸우고 저항하는 이유는 이 땅이 내 땅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물려줄 땅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군사기지로 전락했던 제주도는 이제는 미군의 군사기지(화)로 또다시 큰 아픔을 겪고 있다.

▲ 해군기지 앞에서 ⓒ백현빈

최근규  gonanwit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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