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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물을 움직인다(창세기 1장 2절)이영재 목사와 성서의 숲을 거닐다 5
이영재 | 승인 2018.05.12 23:48

우리나라에 물이 부족하다고 경종이 울린다. 수문학(hydrology)처럼 성서도 ‘물신학’(hydro-theology)를 논한다. 농업용수도 부족하고 공업용수도 부족하다. 게다가 수질은 지난 부정부패의 정권 10년 사이에 엄청나게 오염되고 나빠졌다. 사람이 부패하면 물도 나빠지는 모양이다. 성서는 물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 창1:2은 ’물신학’의 단초를 제공한다.

창1:2에서 동사 <락하프רָחַף>는 물과 영의 상호관계를 알려준다. 이 동사의 번역이 다양하다. 개정역은 <락하프רָחַף>를 “운행하시니라”, 새번역은 “움직이고 계셨다”, 공동역은 “휘돌고 있었다”, 카톨역은 “감돌고 있었다”라고 저마다 다르게 옮기고 있다. 영역본들도 다르다. NKJV는 was hovering, NRSV는 swept라고 옮겼다. BDB(Brown-Driver-Briggs Hebrew and English Lexicon)사전은 hover라고 정의한다. 이 동사의 개념을 명확히 해야 ‘영’<루악흐>와 ‘물’<마임>의 관계를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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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 <락하프רָחַף>는 구약성경에 단 세 차례만 나온다(창1:2; 신32:11; 렘23:9). 신32:11은 독수리가 둥지 위에서 날개를 펄럭이는 동작을 묘사한다. 렘23:9은 말씀에 사로잡힌 예언자의 뼈 마디 마디가 다 떨리는 심한 격정의 상태를 묘사한다. 이 두 구절에 동사 <락하프>는 공기가 진동하고 뼈가 떨리는 상태를 묘사한다. 따라서 창1:2에서 ‘영’<루악흐>이 ‘물’<마임> 위에 작용하는 상호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영이 움직이면 그 움직임에 따라 물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문장의 주어는 <루악흐רוּחַ>이고 동사는 <락하프רָחַף>의 분사형 <머락헤페트מְרַחֶפֶת>이다. 이는 자동사이므로 목적어가 없다. 대신에 ‘물 위에’란 수식어가 있는데 개정역은 ‘수면 위에’라고 옮겼다. 히브리어로 <알-퍼네이 함마임עַל־פְּנֵי הַמָּיִם>이다. 전치사구 <알-퍼네이>는 공간의 상부에 해당하는 위치를 가리킨다고 볼 수 없다. 창1:2은 빛과 궁창, 곧 삼차원의 공간이 창조되기 이전의 상태를 묘사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빛이 생겨나기 전에 ‘영’<루악흐>과 ‘물’<함마임>이 긴밀하게 연동하여 움직였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개정역은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옛 한글개역은 ‘하나님의 신(神)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새번역은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공동역은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氣運)이 휘돌고 있었다’, 카톨릭역은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라고 번역한다. ‘신(神)/영(靈)/기운(氣運)’이라고 다양하게 번역한 원어는 <루악흐>이고 ‘물/수(水)’로 번역한 것은 <함마임>이다. <마임>에 정관사 <하>가 붙어 있기에 카톨릭역은 ‘그 물’이라고 더 세심하게 번역하였다. <루악흐>를 ‘영’이라고들 번역하고 있지만, 공동역처럼 ‘기(氣)’라고 번역해도 잘못된 번역은 아니다.

<루악흐>가 <함마임>에 영향을 미친다. <루악흐>가 움직이면 <함마임>도 덩달아 움직인다. 이것이 삼(사)차원의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의 상황이다. 움직이는 모든 물질운동의 원리는 ‘기(氣)’와 ‘물(水)’의 상호작용에 달려있다는 말씀이다. ‘영’(또는 ‘기’)은 물을 움직이는 힘이다. 성서에는 성령에 따라 물이 움직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노아시대의 대홍수이야기, 홍해가 갈라진 이야기, 사막에서 물이 나온 이야기, 요단강의 물이 역류하여 멈춘 이야기, 에스겔의 성전환상에 나오는 물 등등 물과 영의 이야기로 구약성서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복음서에서도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야기,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 풍랑을 잠잠케 하신 기적, 물로 병을 고치시는 치병기적 등등이 나오며 요한계시록에도 생명수가 등장한다. 이처럼 물과 영이란 주제는 성서를 관통하는 대주제이다.

빛이 창조되기 이전에 물이 있었고 그 물은 성령과 함께 연동하였다. 이 말은 창2:6로 통한다. 땅 밑 곧 궁창 아래쪽에서 물이 솟구쳐서 온 땅을 적셨다. 이 젖은 흙으로 사람과 동물이 빚어졌다(창2:7, 19). 사람의 몸에는 물이 75%나 들어 있고 세포의 원형질에는 물이 95%나 차 있다. 사람의 몸에 물을 채워 넣은 까닭은 사람이 성령의 감동에 따라 살도록 만들기 위해서이다. 우주에 편만한 <루악흐>가 천제를 움직일 때 사람 속에 있는 물도 그 천체의 기운에 따라서 감응하고 활동한다. 우리말의 ‘농’(農)이란 글자의 뜻이 그렇다. 별 ‘진’(辰) 자 위에 노래 ‘곡’(曲) 자가 있으니 ‘별들의 노래’란 뜻이다. 천체운행의 기운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농자’(農者)가 아닌가? 사람은 ‘도시인’(zoon politikon)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농자’(農者)로 창조되었다.

<루악흐>는 천체를 움직이는 우주론에 해당하지만 또한 인간을 움직이는 인간론을 구성하기도 한다. 빅뱅을 일으킨 물질이 수소 내지는 헬륨이다. 우주 공간에는 수소가 가득 차 있고 행성을 구성한 원초적 물질은 물이다. 총알 보다 20배나 빠른 속도로 우주공간을 날아가고 있는 보이저2호가 2003년에 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별을 발견했다. 그 행성은 얼음덩어리이다. 천왕성과 혜왕성도 얼음덩어리이다. 지구에 물이 있는 것은 대기권으로 인해 수소가 우주공간으로 날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의 원형은 얼음이고 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이 물을 움직이는 힘이 <루악흐> 곧 ‘영/성령’이다.

사람이 흙과 물이라는 두 가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흙은 땅과 교감하고 물은 성령과 교감한다. 또 사람은 하나님의 ‘숨’<너샤마נְשָׁמָה>을 쉬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코에 자신의 ‘숨’<너샤마>를 불어넣으셨다(창2:7). 한글개역은 <너샤마נְשָׁמָה>를 ‘생기’라고 번역했으나 다른 구절에서는 ‘숨’, ‘기식’ 따위로 옮겼다(창7:22, 너샤마-루악흐 하임 = ‘생명의 기운의 숨’). 사람이 쉬는 숨은 하나님의 숨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숨을 불어넣으셨기에 사람이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성서의 인간론에 의하면 사람은 헬레니즘의 인간관이 제시하듯이 육(flesh)과 영혼(soul)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물과 흙과 숨으로 구성된 존재자이다. 성령이 물과 연동하고 성부께서 숨을 함께 쉬신다. 요한복음서는 우리가 물과 영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요3:3~5). 사람에게 성부와 성령이 함께 역사하고 있다. 이것이 원인간이며 이 원인간의 회복이 예수의 성육신 사건에서 이루어졌다.

우주에 가득 차있는 하나님의 '기운'<루악흐>이 사람을 감동시켜 움직인다. 그 통로는 사람이 코로 쉬는 ‘숨’<너샤마>이다. 또한 성령은 사람의 몸 속에 있는 물을 통하여 사람을 움직인다. 특히 성령과 함께 일하여야 하는 기독도가 숨을 깊게 쉬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기독도는 천지운행의 기운을 따라 사는 ‘농자’(農者)이다. 하늘기운에 겨워 덩실 춤추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농자는 성령을 따라 산다. 역천자는 망하나 순천자는 흥한다.

빛이 창조되기 이전에 물이 성령의 감동에 따라 운동하고 있었다는 창1:2의 말씀은 우주론과 인간론을 설파한다. 기후변화는 <루악흐>의 영역이며 죄는 기상이변을 초래한다. 죄는 물을 오염시킨다. 사람이 거듭나야 자연이 회복된다. 우리 내부의 물과 외부의 물이 깨끗하게 회복되어야 성령의 움직임을 감응할 수 있다. 성령을 받으면 우리 속에 있는 물이 회복된다. 죄의 문명으로 파괴된 자연은 사람의 중생과 거듭남을 통하여 회복되고 복구될 것이다. 이 점을 단초로 ‘물신학’을 더욱 발전시키면 어떨까 싶다.

이영재  rheeyjae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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