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계속되어야 한다

최근 남북정상의 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을 깨고 남북정상이 손을 잡고 휴전선을 넘는 모습은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다. 예술 공연단 교류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라고 하는 큰 틀 속에서 서로가 교감할 수 있는 중매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상반된 체제 내에서 꽃 핀 문화이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함께 어울려져 분단의 벽을 허물고 하나 될 수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문화라는 것이 정치적 이념을 뛰어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줌을 알게 되었다.

이주와 관련해서도 그런 경험을 했었다. 꽤 오래 전 일이지만 기억에 깊이 남아 있는 일화이다. 매년 경기문화재단을 통해 지원금을 받아 나름 이주문화사업을 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해에는 공모에서 떨어졌다.

낙심이 큰 상황에서 지원대상자를 보다보니, 공단 내 방글라데시 커뮤니티에서 구성한 연극단이 지원을 받게 되었다. 내심 질투도 났고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연극을 전혀 해 본 적도 없는 이주노동자들이 무슨 연극 공연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우라고나 할까! 이후, 이주노동자들은 일과 후 센터 강당에 모여 연극 공연을 위해 쉼 없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공장에서 일을 하고 피곤할 텐데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었다. 때로는 이를 지켜보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 방글레데시 이주노동자들의 연극의 한 장면 ⓒ이영 신부 제공

그러던 중 연극단 대표들이 찾아왔다. 연극 공연을 해야 하는데 장소를 찾지 못해 성당에서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협의하는 과정 중에 무대 설치 및 음향과 관련한 사항에서 “무대를 성당 내에 설치하려면 이곳 저곳에 못 자국이 남게 되어 허락하기 어렵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알게 모르게 심술이 작용한 측면도 있었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 대표들은 “절대 성당 내에 못 자국 같은 것을 남기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그들의 간곡한 부탁에 마지못해 허락을 해 주었다. 그날 저녁 트럭 한 대가 나무들을 싣고 성당 마당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주노동자 몇 명이 내려 성당 마당에서 무대를 만들기 위한 작업들을 하였다.

잠시 후 성당 안에는 무대가 설치되었다. 이를 지켜보면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정말 거짓말처럼 성당 벽면에는 못 자국 하나 없었다. 나무와 나무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설치하였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 이 친구들은 가구공장에서 10년 넘게 일을 해오고 있었음을...

드디어 연극 공연 날이 되었다. 삼삼오오 모여든 많은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이 성당 안에 가득 찼다. 연극의 제목은 ‘빼앗긴 깃발’이었다. 연극이 시작되면서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글라데시어로 연극을 하다 보니, 초청받은 한국 사람들을 위해 벽면에 영화관에서나 볼 수 있는 자막을 내 보내주고 있었다.

연극의 내용은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을 얻고 난 이후 독립을 위해 처절하게 투쟁한 민중들은 피폐해졌고, 투쟁 당시 이권에 눈이 멀었던 반역자들은 독립 후에 오히려 정권을 잡아 권력을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진정한 독립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연극이었다. ‘빼앗긴 깃발’이라는 제목이 이를 상징해 주는 듯 했다. 어쩌면 우리 한국의 현대사와도 흡사한 면이 있음을 알고 가슴이 뭉클했다. 연극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연극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영국의 속담처럼 연극은 역사 속에서,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계속되고 있다. 지난 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공유할 수 있는 식민지의 아픔, 그리고 이주의 아픔 등. 아마도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은 이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주노동자를 유입하고 있는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이 이것이 아닐까 싶다. 지난 현대사 과정에서 한국은 너무나도 폐쇄적이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성장했을지 모르지만, 아시아 공동체성에 대한 인식과 역할은 부족하다. 다분히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도 확인될 수 있다.

모처럼 한반도 평화 모드가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전초가 되기를 바란다. 이주노동자들이 준 교훈을 깊이 되새기고, 아시아 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영 eotjdekd@hanmail.net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