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월 22일에 나는 결혼을 했다. 그 날은 일년중 가장 춥다는 ‘대한’ 다음날이었다. 결혼식장이었던 한신대 채플실은 방학 중이어서 난방을 하지 않다가 결혼식이라고 난로를 피워주었지만 덥혀지지 않았다. 결혼 사진 속의 빨갛게 얼어있는 신랑의 코가 그날의 추위를 나타내준다.

신랑은 한복과 청색 두루마기를 빌려입고 나는 분홍색 공단에 수놓은 한복을 입고 강대상 중앙에 계신 주례 목사님을 향하여 걸어 들어갔다. 신랑과 신부가 손을 잡고 동시에 입장을 했다. 주례자는 신랑이 존경한다며 부탁을 드린 서남동 목사님이셨다. 미리 의상을 이야기한 것은 아닌데 서남동 목사님도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나오셨다. 드레스 코드를 맞춘 셈이 되었다.

ⓒ조순실 제공

목사님은 신랑신부를 맞이하면서 “오늘 신랑신부는 동시에 함께 입장했는데 어찌 나와 생각이 같은지... 이런 신랑신부의 주례를 하게 되어 기쁘다.”고 하셨다. 이어 주례사를 시작하시면서 책을 펼쳐 드셨다. 코앞에 펼쳐진 책을 보니 여성신학을 제목으로 하는 일본어판 소책자였다. 여성신학자들의 창세기편 해설을 인용하시면서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은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에서 만드셨는데 이것은 손잡고 걸어나온 신랑신부처럼 동반자로서 동지로서 동등하게 한 방향을 보며 함께 살아가라는 말씀이예요.”

“만일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드실 때 갈비뼈가 아닌 머리뼈로 하였으면 여성이 남성을 지배했을 것입니다. 가슴뼈였으면 앞서 갔을 거예요. 등뼈였으면 뒤에서 따라갔을 것이고요. 발뼈였으면 밟히면서 살아갈 것이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남성의 갈비뼈에서 여성을 만들어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셨어요. 남성과 함께 손잡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뜻대로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주례사는 진지한 강의 수준으로 거의 40분 이상 이어졌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난방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채플실은 매우 추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코끝이 시려왔지만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머리를 맑게 하였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용기가 생겼다. 진정으로 격려받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면서 남는 가장 큰 기억은 강의시간에는 늘 졸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경황이 없던 결혼식날 머리를 맑게 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며 격려받고 있다는 느낌이 우러나는 강의를 듣게 되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에게 서남동 목사님의 그 날 주례사는 나의 삶에서 늘 잊혀지지 않는 선명한 음성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부부는 살아오는 과정에서 갈등과 난관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격려이기도 하고 채찍질이기도 하다. 성혼선언이 끝나고 뒤돌아 인사하다보니 하객석은 거의 비어있었다. 지인들께서는 추위와 강의를 못이기고 모두 식당으로 향했나보다.

신랑 김현수와의 만남은 대학 친구의 소개로 이루어졌다. 80년에 졸업하고 노동현장에 취업해있던 나는 전주교도소에 수감중이었던 그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출소하여 80년 한신대 시위사건 이후 리어카 야채장수를 하던 김현수를 만났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세계와 역사를 보는 관점과 자신들이 어떻게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였다. 말이 통한다는 점에서 끌렸다. 그렇지만 그를 알아가면서 성장배경이 정말 다르다는 것과 그와 결혼하는데는 정말 용기를 내야할 일이 많다는 사실도 알아가게 되었다. 우리 가족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정말 많은 난관을 무식하게 우리는 이겨내고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김현수는 강원도에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다. 서울 중랑천 판자촌으로 올라와 교회에서 운영하는 야학 비슷한 곳에서 검정고시를 공부해오면서 정규학교 교육과 문화의 혜택을 적게 받았다.

이것은 그의 큰 강점이자 단점이기도 한데, 한마디로 독학스타일이다. 제도권의 사이클에 적응이 어려웠지만 매우 창의성이 있어 자기 나름의 것을 고안하고 만들어내는 근성이 있다. 한마디로 일을 저지르는 스타일이다. 나는 그가 저지르고 치고 나가는 것들이 좋았다. 흔쾌하게 동의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뒤따르는 일상적인 많은 일들, 해내고 견뎌야하고 체계화해야하는 많은 몫들이 내 것이었다. 그런 것들이 서로를 결합시켜주었다. 소위 우리는 일하는데서 궁합이 맞았다. 그렇지만 이것은 모든 사소한 것들을 다 삭제한 골자에서만 맞는 말이다.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럴 때, 나는 결혼식 날 한신대 그 추웠던 채플실에서 다시 서남동 목사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겨냈다. 지금도 이겨내고 있다.

1986년 우리는 안산노동교회를 개척했다. 그 때 나이 어린 여성노동청년들과 많이 뒹굴었는데 우리 부부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많았다.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서로 돕고 어떻게 갈등을 이겨내야하는지를 이야기할 때면 서남동 목사님의 주례이야기를 했다.

지금도 그 때 여성노동청년들과는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지만 정말 끈끈한 삶을 나누고 있는데 갈수록 가족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부부와 자녀 이야기, 그 영원한 드라마의 속성은 지금도 여전한데,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고보니 서남동 목사님은 나의 삶과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주신 분이시다.

1994년 거리로 내몰린 청소년들과 만나 이제 24년이 되었다. 정말 다양한 이유들로 가정이 깨어진 청소년들, 그래서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내쳐진 청소년들, 그 중에서도 많은 여자청소년들과 만나 그룹홈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또 이러저러한 모양으로 함께 해오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우리 부부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영향을 준다. 나는 우리 부부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살아오면서 갈등을 이겨내고 봉합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게 된다. 그럴 때면 여전히 서남동 목사님의 주례사를 이야기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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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날 그 짧은, 아니 참 길었던 목사님의 주례사는 내 평생의 지침이 되고 ‘말씀’이 되어 나를 이끌어주고 있다.

자줏빛 휘장 가운데 십자가가 있는 채플실 전면에 놓인 촛불들을 배경으로 서남동 목사님이 한 가운데 계시고 젊은 신랑신부가 그 앞에 섰다. 세상을 향해 손잡고 나아가라고 외치신 주례자 서남동 목사님이 십자가 정면에 서 계시다. 결혼식 사진은 신기하게도 아직도 빛 바래지 않은채 선명하다.

아마도 내가 여지껏 살아오면서 우여곡절 속에서도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의 주례말씀이 내 뼈 속에 각인된 탓이 아닐까 오늘 글을 쓰면서 생각된다. 남편과 나는 결혼식 후 시아버님이 농사지은 현미쌀 한가마니를 들고 서남동목사님을 찾아 인사드렸다. 다시 한번 인사드리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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