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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혀야 온전하게 되고” - 曲則全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22
이병일 | 승인 2018.06.04 22:19
“굽혀야 온전하게 되고, 휘어야 바르게 되고, 우묵해야 채워지게 되고, 해져야 새롭게 되고,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케 되는 법이다. 이로써 성인은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품어 천하의 본이 된다. (성인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므로 드러나고, 스스로 옳다 하지 않으므로 나타나고, 스스로 정벌하지 않으므로 공이 있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므로 우두머리(長)가 된다. 오직 다투지 않으므로 천하에 능히 그와 더불어 다툴 자가 없다. 예전에 이르기를 ‘굽혀야 온전하게 된다.’는 말이 어찌 빈 말이겠느냐? 참으로 온전하게 되면 거기에 돌아가게 된다.”
- 노자, 『도덕경』, 22장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敝則新. 少則得. 多則惑. 是以聖人抱(執)一, 爲天下式(牧). 不自見故明 不自是故彰. 不自伐故有功. 不自矜故長.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노자가 말하는 구부리는 것(曲)은 도가 부여한 명령, 즉 자연의 한계(命)를 인간과 만물의 질서로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사물의 자연성을 온전히 하는 길은 백성을 다스리되 인위적인 예법을 쓰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정치가 인위적인 규범을 버리고 자연적 질서를 만물의 도로 받아들일 때 인간의 삶이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Getty Image

이러한 태도가 곧 하나를 잡는 것(抱一)이면 온전해져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는 분별이나 차별의 세계가 아니라 통전적, 전일적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를 잘 명상하거나 응시하면 화해와 용서와 일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성인의 길입니다. 포일의 삶은 미움과 차별의 삶이 아니라 사랑과 나눔과 사귐의 삶이요 화해와 일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참 노자의 삶의 지침은 현실에서 따르기 어렵습니다. 굽히고, 휘어지고, 우묵해지고, 해지는 일은 현실적으로 미친 짓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고, 스스로 공격하지 않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 일은 엄청난 자기 절제를 요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굴하고 그 마음을 품고 현실을 마주하면 유연할 수 있습니다. 휘어짐은 유연함의 표현입니다. 물은 어디에 담아도 자신이 그 틀에 변용이 되지만, 물 그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연못 안에서도 물이 흐른다.
흐른다는 것은
길이 있다는 것이다.

겨우내 묶여 있던 얼음
봄날에 녹으니
물 아래 검은빛의 나뭇잎
물 따라 저도 흐른다.

죽음, 그 뒤에도 길이 분명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는 건가.

나무와 꽃 짐승과 사람
누구에게 그 어떤 것도
지울 수는, 다시 물릴 수도 없는
것이다. 길은
여기저기까지만 이라는 게
없다. 길은 그냥 길이다.

힘들다.
無邊의 길 위에서 나는
- 이종암의 “길에 관한 명상”

노자가 요구하는 것은 삶의 태도이자 도를 찾는 방도입니다. 굽히고, 휘어지고, 우묵해지고, 해지는 것.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고, 스스로 공격하지 않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 것.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려면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삶에 대해서 주체적 자신감이 있거나 삶과 역사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수고를 하느님이 이루실 것이라는 희망이 있는 사람은 현실에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굽힐 줄 아는 사람은 이루려는 욕심 없이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선택을 하며 지냅니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동안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중에서 아는 것보다는 모르고 지내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또한 꼭 알아야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일들도 많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역사의 흐름을 사람이 모두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는 만들어집니다. 사람은 씨를 뿌리고 땅은 싹을 틔우고 하늘은 자라서 열매 맺게 합니다. 하느님의 일은 땅과 하늘이 하는 것처럼 하느님이 하십니다. 우리가 행하는 일의 결과를 너무 성급하게 취하려 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모든 일을 내가 책임지고 완성하려는 것은 교만입니다.
비록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땅과 하늘의 일이지만, 씨를 뿌리는 일뿐만 아니라 씨가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은 바로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씨를 뿌리고 “밤과 낮에 자고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그의 일상을 말합니다. 요즘에는 어쩔 수 없이 밤과 낮이 바뀌어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농부에게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고 일과입니다. 씨 뿌리고 가꾸는 사람의 수고와 함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뿌려 놓은 씨앗이 당장 싹이 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싹이 틀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에는 열매로 비유되는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비록 보이지 않지만 씨앗이 자라고 있습니다.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 또한 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하지만, 지금도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늘과 땅은 열매를 맺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알지 못하는 사이에” 中에서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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