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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에게 ‘민족’은 무슨 의미일까?앤서니 D. 스미스의 『민족의 인종적 기원』
이정배 | 승인 2018.06.07 23:30

한겨레신문의 신간도서 코너를 통해 위 책을 알게 되었다. 토착화 신학의 전통에서 학문했던 필자에게 ‘민족’ 혹은 ‘민족주의’ 문제는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와 같은 것이었다. 일본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선배들에게 민족은 한없이 소중한 신학적 가치를 지녔겠으나 민족주의 폐해를 접한 후배 신학자들에게 ‘민족’은 불편한 개념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B. 앤더슨 같은 학자가 민족을 서구 근대의 산물로서 상상(허구)의 공동체라 여겼으니 토착화 신학 전통은 큰 위기를 맞았다. 이런 정황에서 접한 본 책 『민족의 인종적 기원』은 토착화 신학 전통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반증해 주었다. 민족을 허구내지 상상으로 본 앤더슨을 비판하면서 저자 스미스는 민족의 인종적 기원이 있었음을 밝혔던 까닭이다. 물론 저자 역시 앤더슨의 관점 일부를 수용했다.

하지만 저자에게 뭇 인종의 신화나 역사, 문화를 떠난 민족 개념은 애시당초 불가능했다. 후기에서 본 책의 역자 역시 고유한 신화를 지닌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를 기대했다. 필자에겐 토착화 신학의 정당성이 다시 확보된 셈이다. 이런 이유로 본 책은 필자에게 아주 소중한 책이 되었다.

저자 앤서니 D. 스미스는 영국 런던대학 정경학부 교수로서 민족 및 민족주의에 연구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마지막에 밝혔으나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판문점에선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고 하나의 민족임을 밝히는 판문점 선언이 발포되었다. 본 글 말미에 『민족의 인종적 기원』이 주는 민족사적 의미를 간략하게 밝혀 놓았다)

1.

참으로 방대한 책이다. 참고문헌이 50쪽 분량에 달할 정도로 동서양의 민족개념 형성에 관한 엄청난 내용을 담았다. 두 세계에 대한 세밀한 역사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하게 쓰여 졌다. 일체 내용을 숙지하며 읽기에는 버거웠으나 논지가 분명했기에 본 글을 쓸 엄두가 생겼다.

본 책 『민족의 인종적 기원』은 1, 2부 9장으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근대 민족의 원형인 인종적 민족의 본질과 기원을 검토 했고, 2부는 서구 내의 정치, 경제적 급변 상황으로 인종적 민족의 다양한 운명에 대해 기술했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인종도 있었으나 근대적 민족으로 부활한 경우도 많았음을 적시했다.

한마디로 목하의 민족(주의)과 인종적 민족 사이의 연속성을 말한 것이다. 양자 간 정합성을 통해 저자는 민족의 지속성을 강조하였다. 민족이 근대의 산물, 곧 상상 및 허구의 공동체가 아니란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민족 형성에 있어 근대화의 충격 역시 배제하지 않았다. 전근대적 민족(인종)이 근대화 과정을 통해 새로운 민족으로 재탄생된 되었던 사례들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을 인종의 단순 확장이라 여기는 것도 저자의 논지는 아닐 것이다.

2.

그렇기에 저자가 본 책에서 많이 사용하되, 함께 비판하는 개념이 민족에 대한 ‘근본주의 시각’과 ‘원초(본질)주의 시각’ 이란 말이다. 여기에는 의당 전근대적 인종적 민족과 근대적 민족 개념 간의 유사성과 차이가 전제되었다. 원초주의 시각은 민족을 시간(역사)과 무관하게 자연적으로 소여 된 인간결사체로 여기는 입장이다. 여기서는 민족의 자연성과 보편성이 강조된다.

반면 근대주의 혹은 도구주의 시각은 민족이 인간 본성이나 역사에 근원을 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관료제 등 근대적 발전의 산물임을 강변한다. 즉 근대적 조건과 우연히 맞아 떨어졌기에 도처에서 생기한 것을 민족이라 했다. 우연성과 근대성이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 부르는 근거인 셈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저자는 전근대 및 고대 세계에도 ‘근대적’ 개념에 필적하는 민족적 정체성이 존재했음을 밝혔다. 동시에 저자는 민족을 역사의 순수 원료이자 인간 보편적 특질로 보는 입장도 거부했다. 민족이란 원초적 유대이기에 그 속에 근대적 요소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란 것이다. 이런 두 상반된 입장을 내치며 저자는 민족의 인종적 배경에 관심했고 그것이 근대 민족의 부상을 초래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전근대적 인종과 근대적 민족 간의 단절을 말하는 도구주의는 물론 민족주의를 전근대의 양속화로만 보는 원초주의를 넘어 ‘인종적 민족’이란 새 개념을 통해 양자의 시각을 포괄한 것이다. 따라서 근대 민족과 ‘인종적 민족’간의 차별성과 유사성을 동시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했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표하는 신화, 상징의 의미와 내용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지만 특유한 표현양식은 거지반 항구적인 탓이다.

인종적 민족의 특질은 군사, 정치, 경제적 관계에서 말할 수 없고 신화, 기억, 상징 속에서 지속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런 인종적 민족의 요소가 결여되면 근대적 민족 수립에 치명적 장애를 입는다고 했다. 이점에서 근대 이후 급변하는 사회현상에 무게중심을 둔 정치 해방신학도 중요하겠으나 전통문화와 신화 및 그 상징성을 중시하는 토착화 신학의 의미 및 중요성 역시 더욱 두드러질 필요가 있겠다.

3.

이처럼 저자는 근대 민족 형성에 있어서 ‘인종적 민족’의 근원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인종적 민족은 공동체의 문화적 특징, 문화적 차이를 만들어 낸 역사적 공동체를 일컫는다. 공통된 신화, 공유된 기억이 변별된 문화의 중핵인 탓이다. 이 문화는 특정 영역(공간)에서 역할 했고 그로써 연대성(소속감)을 형성했으며 민족성을 일궜다. 공유된 조상이야기, 즉 그들 신화, 역사 그리고 문화 영역에 소속감을 느낀 인간집단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영속주의, 원초주의에 목매지 않는다. 이런 민족성을 변동과 지속의 역설 속에서 볼 뿐이다. 동시에 인종적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시킴에 있어 중요한 요소들을 살폈다. 여기서 핵심은 종교이다. 조직화된 종교가 특정한 상징력을 집단에게 부여했다. 인종적 민족 공동체가 기원신화를 말하는 종교적 신앙과 결부된 것이다. 세계 속 다양한 종교는 실상 인종적 민족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다.

또한 공동체들 간의 갈등(전쟁)은 문화적 차이를 더욱 명확히 했다. 승패에 관계없이 전쟁의 경험은 신화, 기억, 상징의 지속성을 유지시킨 것이다. 각 종교의 사제는 인종적 민족이 축적한 자산을 관리하고 전수하는 통로가 되었다. 근대 이전에도 인종적 민족 공동체에 기반 한 국가들이 각처에 존재했다고 저자는 통찰했다. 민족개념이 근대의 상상적 산물이란 견해와 맞설 목적에서다. 오히려 저자는 인종적 민족의 민족성이 오히려 근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4.

인종적 민족의 역사성을 강조할 목적으로 저자는 ‘민족성 중심주의’란 개념을 사용한다. 이것은 공동체에 활력을 주는 것으로서 ‘위신’이란 감정을 일컫는다. 집단의 중심성, 문화적 독특성, 타자에 대한 배타적 우월성 등의 태도이다. 서세동점시기에 우리가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앞세우며 주체성을 지키려 했던 것도 맥락이 같다. 일종의 토착적인 것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일 것이다.

특정 민족의 차별적 가치를 기원신화, 역사적 기억을 근거로 설명했다. 집단을 통일시키는 공유된 요소인 탓이다. 여타 공동체와의 접촉(교류) 속에서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위기 상황에서는 공동체의 문화적 특징과 영토를 회복, 확장시키려는 저항성을 갖는다. 서구 근대화 시기 아시아 지역에서 저항적 민족주의가 생긴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영토회복을 위해 싸웠고 민족 정통성 회복 운동을 주도했으며 자(自)문화 쇄신을 시도했었다. 이를 위해 신화-상징 복합구조를 만들어 공통기원에 관한 의식을 고조시켰다. 종교적 색체를 띤 왕조신화 역시 이 시기의 산물이다. 이 경우 정치, 경제 보다 종교는 인종적 민족주의를 지속시킴에 있어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바로 여기서 뭇 인종적 민족주의 간의 차이가 생겨났다.

5.

이런 인종적 민족주의 역시 생존, 번영 그리고 해체의 과정을 겪었다. 생존하기 위해선 일차적으로 인구와 문화의 지속성을 유지시켜야만 했다. 말해왔듯이 신화. 기억 그리고 상징과 더불어 인구의 재생산이란 물적 토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인구가 부족할 경우 인종적 민족은 일차적으로 쇠퇴했다. 정복, 식민화, 이주가 그 직접적 요인이라 할 것이다.

그 결과로 주변문화에 혼합되어 해체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자기 정체성을 망각하고 이웃 문화에 의존한 까닭이다. 이처럼 인구감소와 직결된 문화와 종교의 습합과 동화가 쇠퇴의 핵심요인이었다. 이점에서 주변국이었으나 지금까지 인종적 민족을 유지 존속시킨 이 땅의 역사를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종교들도 변용되거나 사라졌다. 보았듯이 종교와 인종적 민족주의가 결코 별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시리아(앗수르)의 민족이 바빌로니아 문화(신화)에 융합되어 흔적 없이 사라졌다는 구약성서의 증언이 그 확실한 예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근대 이전에도 큰 인종적 민족국가로 발전한 경우가 있었다. 이집트가 그랬다. 국가를 꾸렸기에 생존, 번영이 가능했던 것이다.

박해를 받은 소수 민족의 경우도 살아남았다. 천년이상 이슬람 문화권에서 버텨낸 기독교적 인종 공동체(마론 종파)가 그것이다. 이산민족이 되었던 유대인도 사라지지 않았다. 흩어졌으나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종교 덕에 지금껏 생존했다.

그러나 핵심주제는 인종적 민족의 사회화와 그들이 지닌 종교의 갱신 및 쇄신이다. 근대로까지 이어진 인종적 민족의 생존비책은 급변하는 현실에 맞게 자신과 자신들 가치를 변화시킨데 있었다. 자신들 종교를 인종의 경계를 넘는 구원 종교로 발전시켰으나 그럴수록 자신들 공동체 내에서 세대 간 유대를 굳게 한 결과였다. 종교(구원)의 지평확대를 꾀했지만 실제로는 확대된 종교와 자신들 인종적 민족 감정을 더욱 밀접하게 접속시킨 것이다.

그 결과 공동체 밖과의 결혼 금지, 곧 종교적 동족 혼(婚)을 강화시켜 민족국가를 일궈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렇듯 유지, 존속된 인종적 민족주의의 토대로부터 민족주의가 생겼으며 근대적인 민족개념이 발현했다고 확신했다. 민족을 상상과 환상으로 보는 근대 도구주의자들의 입장을 역사적 실증을 통해 명백히 부정한 것이다.

6.

따라서 본 책 『민족의 인종적 기원』 2부는 인종적 민족과 근대적 민족(민족주의)과의 연관성을 서술했다. 근대에 있어 민족의 인종적 차원을 논할 목적에서다. 저자는 근대 이후 지금까지 국가를 갖지 못했기에 완전한 민족이 되지 못한 쿠르드족을 언급한다. 지금껏 인종적 민족으로 머물고 있는 실체이다.

탈현대로 불리는 지금도 인종적 민족과 민족이 공존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인종적 민족이 민족주의를 열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조건에서 민족으로 탄생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오히려 근대 민족주의가 인종적 민족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근대 서구가 민족주의에 기초한 국가를 탄생시킨 것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저자는 국가형성을 가능토록 한 세 가지 원인을 말한다. 분업을 통한 혁명, 행정통제력 그리고 문화적 협동이 그것이다. 경제와 정치(군사) 그리고 문화라 간략히 말할 수 있다. 분업을 통한 생산력의 팽창, 군사력을 통한 관리능력, 인쇄술의 발달로 인한 교육혁명, 이 세 조건이 근대이전의 종교를 대신하여 주권국가의 구조를 가시화시켰다는 것이다.

시간적 진행의 편차 탓에 민족주의에도 여려 유형이 존재했다. 크게는 종교적 민족주의와 세속적 민족주의를 비롯하여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 민족주의, 보수적/사회적 민족주의 그리고 관료적/민중적 민족주의(국가)가 그 모습들이다. 대략적으로 유럽서부는 영토민족주의가 성행했고, 동부 쪽은 민족성(인종적 민족)을 우선시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인종적 민족들 간의 연대가 근대에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물론 영토와 민족이 혼합된 형태로서 말이다. 이를 위해서 문화적 동질성이 다시 중요해졌다. 새로운 신화, 상징 그리고 역사적 기억, 즉 종교적 시각이 요청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종적 민족이 지녔던 종교성이 쇄신,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통일적인 신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제국 로마가 다신교 상황을 접고 기독교만을 국가 종교로 채택한 정황을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근대 도구주의자들은 이점을 강조하여 민족을 허구와 상상이라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본래 인종적 민족이 소유했던 종교적 시각이 없었다면 통일된 기억도 만들 수 없었고 민족국가의 성립도 어려웠을 것으로 여겼다. 어떤 민족도 공통된 기원과 신화 없이 존속할 수 없는 까닭이다. 힘 있는 세력이 인종적 민족이 지닌 신화를 차용해 다른 기억과 상징에 동화시키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렇듯 근대 민족주의는 자신들 정치적 미래를 위해 문화적 과거를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영토와 신화(종교)가 근대 민족 개념 형성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작은 인종적 민족주의가 큰 단위 속에서 흡수, 통합된 것이 근대적 민족(국가)의 출발이다. 이로써 인종적 민족도 경제, 정치 그리고 문화영역에서 근대 이익사회의 특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이전 성직자 역할이 지식인들이 몫이 된 것도 특징 중 하나이다. 과거 전통에 대한 확대된 재해석이 이들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사원과 성직자의 중요성을 대학과 학문공동체가 대신한 결과였다.

7.

이런 민족 개념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시민권이었다. 이것은 국가의 강제력과 포용성, 양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의무와 권리 시민권의 중핵이란 뜻이다. 국가의 보호 속에 있으나 법적 강제력을 감수할 책무가 있다. 인종적 민족 역시 근대이후 이런 시민권을 지녀야만 했다. 이로써 근대는 수동적 민족을 능동적, 주관적 민족으로 탈바꿈시켰고 저자는 이것을 근대 민족주의의 공헌이라 했다. 이 과정에서 민족은 거듭 새롭게 상상 했고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앤더슨이 말하듯 민족을 온갖 종류의 고안물로 여길 정도로 말이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금 앞 전 논거를 반복, 제시한다. 오늘의 상상은 허구가 아니라 고고학,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을 통한 탐구와 해석의 대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과거, 곧 근대 이전 역사가 허구가 아니라는 확신이 전제되었다. 저자에게 과거는 생각이상으로 충만한 내용을 담은 용기였다. 그렇기에 언제든 재구성되어 보존될 가치가 있다. 교훈적일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해 극적인 내용도 담겼다.

무엇보다 운명공동체란 의식의 보고(寶庫)라 할 것이다. 그래서 과거는 현재를 초월하도록 도울 수 있다. 그럴수록 저자는 파편화된 근대적 소외를 벗고 공동체의 미래적 운명을 환기하는 것을 민족적 상상의 방향이자 목표라 했다. 따라서 인종적 민족과 결합된 근대(민족)는 개인을 지속적인 공동체와 연결시킬 지난한 책무가 있다. 개인과 집단에게 정체성과 안정성을 부여할 책임 말이다.

8.

이런 민족형성은 단번에 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재구성, 재해석을 통해 가능하다. 함석헌 역시 ‘역사란 처음이 있어 마지막이 있지 않고 마지막이 있어 처음이 있다.’고 말했다. 학문의 도움을 받아 우리들 과거를 재구성, 재해석 하는 것이 근대의 산물이자 과제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원초주의적 시각도 단연코 거부했다. 새 세대는 의당 앞선 시대의 가치, 신화, 상징에 의문을 던질 수 있는 까닭이다.

새로움을 위해 과감하게 과거를 취사선택할 수도 있다. 특정한 인종적 민족의 신화-상징 복합체를 벗기는 일도 가능하다. 우리의 역사적 과거 뿐 아니라 성서 역시 이런 시각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이 땅에서의 기독교 역할 역시 이런 선상에서 이해될 일이다. 그럴수록 두 인종적 민족의 역사에 더욱 정통해야 옳다. 그것을 원초적으로 부정하거나 제거하는 것은 어리석다.

어느 하나만을 절대시 하는 태도도 전근대적이다. 이점에서 토착화 신학은 신학을 근대적으로 하는 방편이겠다. 우리들 과거와 성서적 기억을 해체, 재구성하여 합류시키는 과정을 통해 ‘민족’은 거듭 새로워 져야만 한다. 역사는 후대를 통해서 되살아 날 수 있을 뿐이다.

9.

이제 본 책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민족의 계보학’이라 이름이 붙여져 있다. 인종적 민족이 지닌 신화는 조금씩 변경되나 새로운 의미를 담을 수 있는 형식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근대 민족이 과거 인종적 민족의 신화를 재구성했다는 뜻이다. 인종적 민족과 근대적 민족 개념 모두를 불변적 실체가 아님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근대 도구주의자들은 신화가 지닌 영향력을 놓쳤다. 신화 속에 담긴 운명공동체의 의식이 근대에서도 여전히 필요했음에도 말이다. 근대는 자신 속의 인종적 민족의 뿌리를 인정하는 것이 옳았다. 사람을 결합시키는 신화-상징 복합 복합체에서 다양함 속에서도 한 민족성의 단서를 찾을 수 있는 탓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인종적 민족을 변할 수도, 지구적일 수도 있다고 했다.

▲ 이정배(顯藏아카데미)

민족은 오랜 시간에 걸친 역사적 과정으로서 구체적 제약(고통)속에서 재구성되는 것으로서 반듯이 과거에 대한 고안(考案)과 재발견을 요청한다. 동시에 민족에겐 자신들 조상이 살았던 역사적 영토와 그들이 일궜던 역사적 황금시대가 소중하다. 모국이란 환경적 토대와 과거의 민족성이 민족 재발견, 재구성의 모체인 까닭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만주를 동경했고 영웅사관에 근거, 저항적 민족주의를 표방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일 수 있겠다. 어느 민족이 미래를 갖고자 한다면 반드시 신화와 과거 역사를 등에 걸머져야 한다. 이점에서 인종적 역사는 신화와 과거의 보고(寶庫)인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이 남아있다. 과연 민족이 인종적 민족(성)을 초월한 것일까? 주지하듯 근대 민족은 인종적 민족보다 훨씬 정치적이고 포용적이었다. 시민권을 부여했고 소통방식의 합리화에 근거하여 민족을 역사의 능동적 참여자로 개조한 까닭이다. 이런 방식으로 근대(민족)는 과거(인종적 민족)를 재구성했다.

그러나 양자 간의 연속(지속)성은 여전하다. 안/밖의 변별을 위해 인종적 민족의 신화와 전통을 전승하고 있다. 내부적 연대와 재생산이 이들의 공통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 묻는다. 민족이 수단으로는 인종적 민족을 초월하나 목표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했던 가를 말이다.

서구 근대에서 작은 규모의 민족은 언제나 수탈의 대상이었다. 큰 민족은 항시 작은 민족을 식민화 했고 강제로 동화시켰다. 하지만 목하 세계는 작은 규모의 민족이 다수이다. 이런 작은 민족국가가 인종적 민족주의를 활성화시켰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다. 그러나 이들 역시 연대와 재생산을 목표로 하기에 민족주의는 불헹히도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문화적 다원주의가 정치적 다원주의로 변화된 결과이다.

저자는 이를 문화적 바벨탑이라 했다. 그럴수록 저자는 이들 간의 갈등을 인종적 민족의 신화와 상징에서 이해할 것을 촉구했다. 그래야 민족 간의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서구 민족주의에게 인종적 민족주의의 정체성, 곧 신화, 기억 그리고 상징의 내적 의미를 충족히 이해, 수용하는 ‘시민적 민족주의’로의 발전을 요구한 것이다.

여기서 ‘시민적’이란 개념은 이들 간의 갈등을 감소, 포용하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승인을 일컫는 말이겠다. 이런 수준의 각성이 반드시 이뤄지길 기대하나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래도 소망하며 노력하는 것이 우리들 몫일 것이다.

10.

필자가 이글을 마무리 할 무렵 판문점에서 남북 두 정상이 38선을 넘나드는 예기치 못한 퍼포먼스를 했다. 결코 넘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던 분단 경계선을 두 지도자가 손을 맞잡고 넘나들은 것이다. 자신들 뒤이어 남북 모든 사람들이 그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 했다. 비록 하루 12시간의 짧은 여정이었으나 이들은 판문점 선언을 이루기까지 수없이 같은 민족, 같은 언어, 동일 핏줄을 강조했다. 작은 규모의 민족의 생존을 위해 상호 연대와 유대를 강화시킨 결과였다.

아직도 이 땅에서는 서구 강대국에 의존하여 분단체제를 고착화하려는 세력들이 애국을 앞세우며 활동하나 실상 이들은 이민족을 강대국 먹잇감으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근대 국가들이 합종하며 자신들 신화체계를 재구성, 재발견하고 있는 마당에 항존 하는 우리들 신화-상징 체제를 홀대하고 성서라는 이름하에 이스라엘의 고대사를 맹종하는 것은 신학적으로도 옳지 않다. 이곳의 신화체계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기독교가 한반도에 존재하는 이유여야 할 것이다.

이점에서 토착화 신학 전통은 전적으로 정당치는 않겠으나 여전히 유용한 신학의 패러다임으로서 존재가치가 있다. 강대국 틈새에서 생존하길 몸부림치는 남북 두 정권이 이 땅의 신화-상징체계를 바르게 해석하여 항차 연합과 통일을 이루기 바라며 그 일에 민족을 중시했던 토착화 신학은 통일신학으로 지경을 넓혀야 할 것이다. 본 책 역자가 한국 민족주의를 제대로 연구하는데 이 책이 유용한 분석틀이 될 것이란 말도 이를 염두에 둔 발상일 듯싶다.
   

이정배  ljbae@m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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