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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에 관한 물리신학(物理神學)새로운 신학의 지평을 향해
이영재 | 승인 2018.06.10 00:52

말씀의 뜻을 바르게 깨달아 자기 시대에 바르게 적용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말씀의 뜻을 바르게 깨달은 다음 그 뜻을 현대인의 생활에 잘 적용하는 일은 설교자의 위대한 과업이다. 창조기사를 잘 이해한 후에 현대의 물리학적 연구 성과들에 대한 신앙적 해석을 제공하는 일은 책임성 있는 기독인의 자세이다.

현대의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 그리고 평행우주론이나 초끈이론 같은 물리학의 연구동향을 귀담아 들으면서 각각의 연구성과들에 대해서 성서의 뜻을 제시해 주는 일은 신학의 지대한 과업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퀀텀 물리학에 대해서는 퀀텀 신학을 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빛과 시간의 물리학에 대해서도 신학은 빛의 창조신학으로 응답하면 좋을 것이다. 몰트만의 조언처럼, 신학은 시대적 유관성(relevance)를 상실하면 안 된다.

성서에 의하면, ‘빛’이 있기 전에는 ‘어둠’이 있었다. 창1:2 히브리어 본문은 <웍호쉐크 알-퍼네 터홈  וְחֹשֶׁךְ עַל־פְּנֵי תְהוֹם>이다. 이 본문을 한글역본들은 다양하게 번역한다. 개정역은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새번역은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공동역은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카톨릭역은 “어둠이 심연을 덮고”라고 옮겼다. 히브리어 <호쉐크>를 “흑암”, “어둠”으로 옮겼고, <터홈>을 “깊음”, “깊은 물”, “심연”로 옮겼다. ‘어둠’은 창1:3에서 창조된 “빛”의 전제가 된다.

<호쉐크>는 빛이 없는 상태를 지시한다. 현대의 천체물리학에 의하면, 빛을 처음으로 발생시킨 사건은 빅뱅이라고 한다. 히브리어 <터홈>도 6절의 “궁창”이 창조되기 이전의 상태를 묘사한다. “빛”의 창조로써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고 현상계가 드러났다면, “궁창”의 창조로써 공간이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빛과 궁창의 창조는 삼사차원의 창조이며 삼사차원의 세계는 시공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우주이다. 어둠은 현상이 없기에 인식의 그물에 잡히지 않다. ‘어둠’이 물질인지 다른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처럼 알지 못하는 어둠이 우주에 가득 차 있다.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에 대한 현대물리학의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블랙홀도 어둠의 세계이지만 또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는 연결통로일 수가 있다.

빛의 창조는 시간의 창조를 의미한다. 빛이 생기자 현상계가 나타났고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빛이 흐르기 때문에 시간도 흐른다. ‘빛’이 없는 ‘어둠’은 시간이 없는 차원이며 ‘궁창’이 없는 ‘깊음’은 공간이 없는 차원이다. 그러므로 창조의 사건이 있기 이전에 창조주가 일하시고 있던 시공간이 아닌 그 차원은 어떤 상태였는지 우리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인지할 수가 없기 때문에, 성서는 창조 이전의 상태를 창1:2로써 아주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갈 뿐이다.

처음에 우주가 생겨났을 때 에너지의 대폭발이 있었다. 창1:2이 언급하는 “하나님의 영”이 창조의원동력이다. 빅뱅이 에너지의 대폭발이라면 “하나님의 영”은 에너지를 주관하는 힘이다. 히브리어로 <루악흐 엘로힘 רוּחַ אֱלֹהִים>이라 한다. <루악흐>는 ‘영”(영)이라기 보다는 실제로 작용하는 기운을 가리며 성서에서 ‘바람’, ‘기운’ 따위로 다양하게 번역한다. 처음에 생긴 빛이 어떻게 운동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시간이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 말씀을 <루악흐>가 실행하는 것이다.

ⓒGetty Image

창조 이전에는 완전히 깜깜하였다. 빅뱅과 더불어 빛이 생겨났고 빛은 ‘흑암물질’(dark matter)로 인하여 운동할 수 있었다. 에너지를 흡수하는 흑암물질로 인하여 에너지의 불균형이 생겼다. 이 불균형 때문에 빛의 운동이 가능했다. 이러한 물리학의 연구에 대응하는 기독교인의 사상을 위하여 빛과 어둠의 신학이 제출되어야 한다. 종래의 성령론에 의하면 에너지는 성령이라 할 수 없다고 성령을 좁게 한정하였다. 그러나 성령 <루악흐>는 말씀을 실현하는 에너지임을 부인할 수 없다. 퀀텀물리학에 대해서는 퀀덤신학이 제출되어야 마땅하다.

기독교인들 중에 과학을 적대시하고 부정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또는 성서를 과학으로 간주하면서 현대의 물리학에 대립되는 책으로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 나의 생각으로는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성경의 진리는 더 밝히 드러난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이성을 주셨고 탐구능력을 주셨기에 과학하는 동물인 인간 곧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모든 피조계를 탐구하게 되었다. 이것이 물리학이며 자연과학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명철을 가진 인간이기에 그가 세계를 탐구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이 더욱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다. 이 점은 진화론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1517년에 비텐베르그 선언문을 발표하였고, 칼뱅은 1536년에 기독교강요를 출간하였다. 로마 카톨릭 소속 사제였던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에 <천구의 회전>이란 책을 출간하고 죽었다. 그의 제자 브루노는 1576년에 칼뱅파로 개종하여 지동설을 강연하고 다니다가 1591년에 체포되어 구금된 후 갖은 고문을 당하다가 1600년에 화형에 처해졌다. 그 후 갈릴레오는 1613년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성을 옹호하는 편지를 출간하였고, 1632년에 두 개의 우주론을 인정하는 책을 냈으며, 1933년에 재판에 회부되어 평생연금을 당하다가 불행하게 죽었다. 카톨릭교회가 과학자를 박해하였는데 개혁교회는 과학자들을 옹호하지 못했다.

그 후 1654년에 아지작 뉴턴은 프리즘으로 빛을 연구하여 빛의 일곱 가지 성분을 밝혀내고 분광기로 빛의 본질을 탐구했다. 데마크의 천문학자 올레 뢰머는1672년에 파리왕립천문대에서 목성을 연구하고 평생 4,000여 개의 별들을 관찰하였다. 빛의 속도가 초속 30만킬이란 사실도 알아냈다.

그로부터 150년 후 바티칸 천문대의 안젤로 세키는 1854년 성이냐시오 성당에 천문대를 건설하고 분광기를 설치하여 별빛을 분석함으로써 별들의 본질을 연구했다. 그는 <레 스텔레>란 책을 내고 초신성과 베텔기우스 같은 늙은 별을 발견했다. 1860년대에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은 전기파와 자기파의 진동을 연구하였고 빛은 전자기파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20세기에 들어서 로버트 윌슨은 1964년 빛으로 볼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하였다. 그는 1978년에 7센티의 은하계 파장을 감지하여 모든 방향에서 ‘우주배경복사’가 날아온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런 연구결과 2013년 초에는 우주배경복사로 이루어진 타원형 우주모양을 그림으로 공개하였다. 우주가 식으면서 플라스마는 최초의 원자를 생성했고, 최초의 빛이 우주로 방출될 때의 그 우주배경복사가 우주의 대부분에 퍼져있다. 이 복사는 대부분 어둠 속에 있는데 우주의 99%가 어둠에 쌓여 있다.

이처럼 물리학의 역사를 이해하는 신학이 이 시대에 가장 긴급히 요청된다. 물리학에 성서의 말씀으로 응답하는 신학이 나와서 창조과학회 같은 근본주의자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다. “모든 현상은 운동으로 이해된다”는 물리학의 법칙은 ‘모든 물질은 성령의 감동으로 운동한다’는 신학과 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신학의 지평을 한국교회는 과감히 열어가야 한다.

이영재  rheeyjae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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