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다니면서다.

서울 부모님 집은 성북구청 근처다. 5분 거리에 6호선 보문역과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이 있다. 보문역에는 승강기가 없고 성신여대입구역은 전철과 승강장 사이가 넓어 발이 빠질 염려가 있다. 보문역에는 최근 승강기가 생겼고 성신여대입구역은 1년새 별다른 변화가 없다.

두 역의 특별한 사정을 알아차린 건 작년 이맘때부터 엄마랑 다니면서부터다. 택시에 휠체어를 싣는 게 간단치 않았고 운전면허를 따려 했지만 다섯 번 시험 봐 모두 떨어졌다. 유일한 이동 수단이 전철이었다.

▲ 신길역 장애인을 위한 리프트 사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에큐메니안

작년 여름 장미축제를 보러 태릉역까지 가던 날, 보문역에 승강기가 없다는 걸 처음 알았다. 출입구 계단에 리프트가 있었지만 네 개 출입구 중 한 곳뿐이었고 그걸 이용해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가는 데 30분에서 40분이 걸렸다. - 그 과정에서 지하철공사에 전화해 항의했고 장애인단체에서 항의시위를 전개했다는 것과 그 성과로 몇달 뒤 승강기가 생길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지난 일요일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전철을 타고 한성대입구역 인근 시장을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성신여대입구역은 전체적으로 전철출입구와 승강장 사이가 넓다. 힘이 들기는 하지만 애를 쓰면 혼자서 휠체어를 밀어넣고 뺄 수 있는데 문제는 돌아올 때 생겼다. 갈 때는 10센티였던 간격이 올 때 하차한 지점에서는 그 배가 됐다.

30년 동안 그 역을 이용했지만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포를 느꼈다. 전철 문이 열리자 승강장 바닥까지 20센티의 간격이 있었고 그 사이로 보이는 검은 공간이 흡사 지옥의 구멍 같았다. 도저히 휠체어를 밀고나올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면 장애인이 된다는 생각에서부터 한때를 제외하고는 인생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간단히 말해 인간은 장애인으로 태어나 장애인으로 죽는 존재라는 것이다.

장애인들의 항의를 그들만의 문제로 생각했다. 내 문제가 아니더라도 같은 인간의 문제로 공감하고 함께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고 지금, 뒤늦게 내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미안함과 후회를 느낀다. 또한 대신 수고하고 싸워준 덕분에 이만큼이나마 누릴 수 있는 것 같아 감사하다.

임미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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