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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동 목사, 나의 신학과 목회의 스승이었다내가 만난 서남동 목사 ⑳
조헌정 | 승인 2018.06.17 21:54

사실 나는 서 목사님에 관련하여 특별히 말할게 없다. 왜냐하면 한 번도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70년대 초반 현 한신대의 전신인 한국신학대학을 다닐 때에는 연세신학대학에 계셨기 때문이고, 또 그때는 박정희 유신독재가 그 마각을 드러내던 시기라 학내 사정이 매우 혼란스러워 학문에 그다지 열중할 수 없는 시기였다. 그저 서목사님이 한신대에 오시어 강연이나 설교를 하실 때에 먼발치에서 얼굴을 뵈었을 따름이다. 졸업 후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곧 바로 미국으로 갔기에 개인적으로 목사님을 만날 기회가 전연 없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것은 첫째는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신학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고, 둘째는 돌아가시기 두 달 전 미국 방문 중 뉴욕 유니온신학대학에서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민중신학 특별강연을 하시고 이어 저녁에는 교포들을 대상으로 시국강연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점심을 잡수시고 나서 피곤하니 조금 눕겠다고 하여 나의 기숙사 침대에서 두세 시간 누워 계셨던 적이 있다. 그런데 내게 그런 부탁을 하게 된 이유는 서 목사님과 나의 어머님은 외가 친척으로 어렸을 때 ‘오빠’라고 불렀던 가족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처음으로 내 소개를 하자 서 목사님께서는 특별한 친근감을 드러내시었고 내 좁은 방에 오시어 누어계셨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때 몸에 이상이 왔었던 것인데, 목사님은 그냥 여행으로 인해 피곤하셔서 그렇다고 생각하시고 계셨었다. 그때 내가 강권하여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도록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죄송하다. 「민중신학의 탐구」라는 책을 펴니 <조헌정군 혜존>이라는 목사님의 서명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신학도로서 서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학문의 영향이 크다.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시기인지라 「전환시대의 신학」은 새로운 신학사상에 목말라 있던 우리들에게는 일종의 샘물과 같은 역할을 했다. 소개한 신학자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학자는 떼이야르 드 샤르뎅이었던 같고, <신 죽음의 신학> 또한 매우 충격적이었다.

80년대 초 뉴욕 유니온신학대학에 입학하여 M.Div. 과정을 밟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민중신학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 난 역사적 예수에 관심이 많았기에 안병무 교수님의 글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지만, 사고의 바닥에 있어서는 서남동 교수님의 영향이 어쩌면 더 컸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성서는 참고서(reference book)’라는 서 목사님의 발언이다.

사실 난 성서신학도로서 불트만을 비롯한 고등비평에 상당히 열려 있었고 제3세계 해방신학도로서 성서 해석에 있어 매우 진보적이었지만, 성서가 참고서라니! 참으로 충격적인 언표(言表)였다. 이후 지금까지 역사적 예수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다 보니 서 목사님의 이 언사는 참으로 적확(的確)한 언표였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돌이켜보면 성서신학자들이 자칫 매이기 쉬운 언어의 함정을 벗어나도록 이끌어 주신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의 말씀(Text)은 성서 말씀(texts)과 오늘의 현실(con-Text) 사이에서 손가락은 신(神)이지만, 그러나 달은 ‘사람됨’임을 깨우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한(恨)의 사제(司祭)라는 말이다. 물론 한때 서 목사님께서는 민중신학을 연구하시는 가운데, 동학(東學)과 무교(巫敎)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를 신학화 작업을 주도하셨지만, 목사가 한의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 30년이 넘는 교회 목회를 통해 나의 초심(初心)을 사로잡는 또 다른 언표(言表)가 되었다.

셋째는 사회·경제사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신학연구 방식이었다. 하늘만 쳐다보고 뜬 구름 잡는 얘기를 하는 것이 신학의 학문 방식으로 알고 있던 나에게 신학이란 바로 땅의 이야기를 그것도 경제 수치에 근거한 민중 현실의 아픔을 고발하고 치유하는 살아 있는 작업임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상부구조가 아닌 하부구조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 주신 것이다.

그러한 선생님의 가르침이 오늘도 나로 하여금 역사 현실에서 계속하여 머물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민중 아픔의 현장을 찾아 거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목요촛불교회>나 진보교회 개혁운동인 <예수살기>에 앞장을 서고 민족문제에 천착하여 활동하는 이유가 그러하다. 앞으로 하고 싶은 학문 분야가 있다면 서목사님이 살아계셨다면 앞장서서 연구하셨을 <기독교(민중신학)와 주체사상과의 대화>이다.

조헌정  choshal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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