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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와 방탄 그리고 핵무기(겔 17:22-24; 막 4:26-34)현실진단과 사회변화의 공감
조헌정 | 승인 2018.06.19 22:38

격세지감(隔世之感)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한 세대 곧 약 30년의 세월의 변화를 의미하는 사자성어인데, 우리는 4개월 전 그러니까 평창 동계올림픽 전(前)과 그 후(後)가 너무 달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4월 27일의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위원장 간의 판문점 회담 그리고 이어지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양 정상과 관료들 간에 주고받는 폭력적인 언사들로 인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작스레 이루어진 5월 26일 두 번째 남북정상 판문점 회담은 우리는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만남은 트럼프대통령으로 하여금 김정은위원장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압박했고, 결국 6월 12일 역사적인 조미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미국과 남한의 전쟁찬성론자들은 이 회담 성과에 대해 계속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만, 70년 동안 쳐부수어야 할 적으로만 알고 있던 두 나라의 정상이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모든 부정적인 평가를 넘어서는 역사적인 과업이었습니다.

우리말에 첫 술에 배부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제 시작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과 같이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지난 싱가폴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대통령은 한미군사훈련을 war game 전쟁놀이라고 부르고, 이는 정당한 행위가 아니라 provocative 도발행위라고 명명했습니다. 지난 70년동안 남과 미국은 북을 도발국가라고 불러왔는데, 실은 남과 미국이 그간에 하던 일이 도발이라고 자백을 한 것입니다. 저는 이 단어를 들을 때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말한 것인가 하며 의심했습니다. 아마도 너무 흥분한 나머지 발언한 말의 실수였겠지만, 그러나 그는 고집이 있는 영감이라 자기가 한 말을 지키기 위해 백악관과 국회와 군대 내부의 반대자들을 물리치고 이를 관철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다만 이전 링컨대통령이나 존 에프 케네디대통령이나 로버트케네디 대통령후보자와 같이 현실을 바꿔내려고 했던 정치인들이 암살을 당했듯이, 혹 암살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 미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미국 주류 언론과 정치지도자들의 '트럼프 흔들기'를 반박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미치광이여서 오히려 한국 상황을 순수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면서 <뉴욕타임스>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엄청난 양보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일축하면서 “수만 명의 군인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가 남한이다. 원산항을 통해 해병대를 침투시켜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훈련을 하며 평양시에 대한 모의 핵공습훈련까지 한다.”엄연히 이는 분명히 도발입니다.

수구보수의 몰락

이 평화의 기운은 다음날 이어진 전국지방선거를 통해 구시대의 보수 정치세력들을 모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서울 인천 경기의 수도권 의석이 262석인데 그중에서 자유한국당은 불과 5석만을 확보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대구경북이 남았지만, 이는 문재인정권이 자만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경고용일 따름입니다. 게다가 대구경북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의 고향 구미에서 민주당이 시장으로 당선이 되는 이변이 일어났는데 이는 앞으로 일어날 변화의 강도가 얼마나 강하게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징조라고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이번에 당선된 장세용 새 구미시장은 그냥 민주당 후보자가 아니라 <대구·경북 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으로 박정희의 역사 과오를 청산하고 그가 간첩으로 몰아 처형한 인혁당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자고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이 구미시장으로 당선이 되었다는 것은 문재인대통령의 당선 보다 더 놀라운 사실입니다. 촛불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민주당 또한 승리에 도취해 있다가는 촛불혁명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녹색당의 경우입니다. 창당 6년밖에 되지 않았고 이제 두 번째 도전이지만,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신지예 후보는 박원순·김문수·안철수에 이어 정의당과 민중당 후보를 제치고 4위를 했고, 제주도의 고은영후보는 민주당과 정의당에 이어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을 제치고 3위를 했습니다. 여성후보자들이 성평등권 등 분명한 선거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고 젊은층을 공략한 것입니다. 신지예후보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아예 현수막에 찍었고, 사진 또한 다른 여성후보들과는 달리 매우 당당한 모습으로 찍었습니다. 그래 진보적 인사를 알려진 한 변호사는 벽보 사진을 보고 "건방진 모습이라 찢어버리고 싶다"고 발언을 하여 비판을 받았고, 실제로 벽보 사진이 찢기고 눈만 도려내는 파렴치한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4만 5천명이 참여한 19세 이하의 청소년 모의투표에서는 박원순당선자보다 더 많은 표가 나와 1위를 했습니다.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모든 정당이 유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겨자씨 비유에 담긴 비의

오늘 마가복음의 가라지 씨 비유는 매우 잘 알려진 말씀이지만, 동시에 가장 잘못 이해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가장 작은 씨앗이지만, 심어 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게 된다.”는 구절은 급속한 성장을 통한 성공 비유의 말씀으로 시장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말씀으로 오해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개척교회 목사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욥기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씀과 함께 가장 애용하는 구절입니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이는 예수님의 뜻과는 전연 반대되는 해석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탄적인 해석입니다.

저자 마가는 우리가 그렇게 잘못 해석할까 염려하여 말미에‘예수는 그들에게는 이렇게 비유로만 말하고 제자들에게는 그 숨은 설명을 따로 일일이 말하였다’고 덧붙인 것입니다. 곧 초대교회를 박해했던 로마당국의 눈길로 인해 그 뜻을 여기에 밝혀놓지 못하니까 그 숨은 뜻을 잘 헤아리라는 당부였던 것입니다.

ⓒGetty Image

이 겨자씨 비유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예수께서 사셨던 그 당시의 농부로 돌아가야 합니다. 겨자는 식용작물이 아닙니다. 매운 맛을 내는 조미료로 아주 소량만 필요합니다. 따라서 밭에 겨자씨가 크게 자라났다는 말은 불필요한 잡초가 무성해졌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게 들판에서 자란다면 잡초가 아니겠지만 농부가 재배하는 밭에서 자란다면 이는 불필요한 잡초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겨자씨 비유의 핵심은 이 불필요한 잡초가 어떻게 하느님 나라와 상관관계를 맺는 것인가를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핵심은 한 단어에 있습니다.“땅에 심을 때에는”그리고 "심어 놓으면" 이라는 단어입니다.

지금 이 농부는 실수로 겨자씨 한 알을 뿌린 것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를 갖고 심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도대체 왜 농부는 돈도 안 되고 필요한 작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겨자씨를 심었을까요? 지금 우리는 왜 그랬을까? 의문을 품지만, 당시의 농부들은 이 얘기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끄덕 했습니다. 왜요?

당시 갈릴리 농부들은 대부분이 소작농이었습니다. 땅주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건 우리나라도 불과 오십년 전 농경사회였을 때에도 그러했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작농이 거의 없습니다. 왜요? 부자들이 농촌에 투자를 하지 않고 도시의 아파트나 건물에 투자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탈농촌 도시화의 사회입니다  농촌사회의 소작농은 오늘날 도시사회에서는 자영업자들입니다. 자영업을 하는 40%가 음식점, 마트, 세탁소 등을 운영합니다. 그런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을 해도 건물세. 은행이자 등등을 내고나면 남는게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장사가 잘 되면 주인이 내어 쫓고 자기들이 합니다. 최근 서촌의 궁중족발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300만원 월세를 갑자기 1,200만원으로 올렸습니다. 5년 보호기한이 지났기에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는 법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지요. 12번이나 용역들이 몰려들어 가게에서 몰아내려 했지만, 시민학생단체들의 투쟁으로 말미암아 오늘까지 오다가 결국 언론에 등장했던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이천년 전 갈릴리의 농부들이 사정이 이와 비슷했습니다. 갖가지 세금에 시달렸습니다. 우선은 예루살렘에 사는 지주가 가져가는 마름세 30%가 있었고, 로마정부가 걷어가는 농지세 20%였고, 여기에 예루살렘 성전이 거둬가는 십일조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빚도 갚아야 합니다. 결국 농부는 추수의 약 3,40%정도만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으로는 몇 개월만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또 빚을 냅니다. 결국 농부들은 죽어라고 일하지만, 빚더미에 올라 않습니다. 빚더미에 앉은 이 농부가 빚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도망을 가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저녁 몇 개의 보따리를 들고 무작정 집을 떠나 떠돌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5천명 4천명을 먹이시는 급식기적 이야기의 사회적 배경입니다.

그런데 빚더미 위에 앉아 있는 어떤 농부가 달리 생각합니다. 내가 도망을 간다고 해서 살 길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이 국가폭력이 저지르는 세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든 이 잘못된 세상 구조를 바꿔내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반로마 게릴라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일은 가족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때 그가 저항의 수단으로 할 수 있는 건 겨자씨를 심어 밭을 잡초로 덮는 것입니다. 일종의 폭력에 저항하는 비폭력 사보타지 저항의 방식입니다.

결국 이렇게 되어 추수할 곡식이 나오지 않으면 로마 당국이나 예루살렘의 지주들이나 매우 곤란해집니다. 이게 한두 명이면 소작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되지만, 이게 만약 집단적으로 일어나면 결국 로마당국이나 지주들은 세금을 대폭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농부가 먼저 살아가야만 자신들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겨자나무에 공중의 새들이 머문다는 말은 곧 이런 저항의 연대를 통해 힘없는 약자들이 살아갈 공간을 확보한다는 말입니다. 겨자씨를 통한 농부의 저항 그리고 그 저항에 함께 하는 민중들, 이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세워지는 방식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가가 말하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만 따로 알려준 비밀이었습니다.

성서와 제국 비판

저는 지난 몇 년 전부터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서의 가장 큰 핵심은 국가폭력 당시로 말하면 제국에 대한 비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창세기 1장은 바빌론포로기에 쓰인 글로 바빌론 제국의 주장에 대한 비판과 고발을 담고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주장은 사람은 신의 형상을 띠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을 처음 배울 때에는 신학자 바르트와 부르너 사이에 이런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 신의 형상이 선악과 타락과 에덴동산에서 추방 이후 곧 오늘의 인간 안에 그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느냐 남아 있지 않느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는 탁상공론에 불과한 신학 논쟁이었습니다. 창세기 저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장이 주장하는 것은 바빌론제국이 가르치는 바, 제국의 통치자 한 사람에게만 신의 형상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공히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해방선언 이것이 창세기 1장의 첫 번째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어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창조됩니다. 이는 신의 이름이 조금 다르게 표현된 창세기 2장의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다는 주장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남녀의 성차별이 분명했던 그 시절에 차별이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게 두 번째 핵심 주장이고, 세 번째는 안식일입니다. 하느님이 7일째 쉬셨다는 얘기입니다. 신이 피곤해서 쉬었겠습니까? 이 말의 의미는 신이 쉬었으니 신의 형상을 따라 지 받은 우리 또한 쉬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빌론 포로시기에 끌려간 유대인들은 노예였습니다. 쉼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짐승과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포로이자 노예로 살았던 저들 또한 인간이라고 외친 것입니다. 인간해방선언이자 동시에 노동해방선언이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역사의 주인이라고 하는 공산당 선언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맑스가 창세기 1장의 주장을 허락 없이 도용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여러분 누구나가 다 알 듯이 로마제국의 폭력과 타락을 고발하고 그 종말을 선언한 글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 전체가 바로 제국 비판입니다. 제국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제국은 어떻게 형성됩니까? 제국은 작은 것들이 뭉쳐 하나가 되어 자기 뜻에 반대하는 이웃의 작은 것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파괴하고 흡수하는 확장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한 곳에 모여야 합니다. 그냥 모이기만 해서는 안 되고 하나의 통치이념을 중심으로 상하구조의 체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전제 혹은 독재정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인 힘으로 그 중앙에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어 내어 사람을 현혹시킵니다. 그게 바빌론제국이 자랑하는 바벨탑이고 오늘날로 말하면 도시 안에 이루어진 초고층건물들입니다. 인간의 가진 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시에 기초한 제국의 폭력을 고발하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광야이고 유목민의 삶입니다. 땅에 집착하지 않고,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작은 공동체로 계속 이주하며 하늘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노아홍수의 심판이 하늘의 아들과 땅의 딸이 결혼하여 생겨난 거대한 족속으로 인한 타락으로 인한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거대한 족속이라는 것도 제국을 뜻하는 것이고, 가인과 아벨의 살해 또한 도시에 기초한 제국이 유목에 기초한 작은 공동체들을 파괴하였다는 의미이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다는 말 또한 아브라함이 멸망한 우르제국의 왕족 후예로서 그가 가졌던 왕국 회복의 꿈을 버리고 유목의 삶에 진정한 하느님의 뜻이 있음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받은 축복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소유하는 땅과 자손이 많아졌다는 말이 아니라 탈 소유, 탈 정주(定住)에서 나오는 진정한 삶의 기쁨과 행복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아내가 죽었을 때에 묻을 땅도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무슨 땅이 있었으며 백세가 지난 이삭 하나 겨우 얻었는데, 무슨 자손이 많았습니까?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자손 축복은 곧 할례를 통한 유대족속이 많아졌다는 말이 아니라, 탈 소유, 탈 정주의 인생 축복을 깨달은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입니다.

방탄과 사회 비판

요즘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인 밴드로 뜨고 있습니다. 그 인기의 원인으로 좋은 음악, 파워풀한 칼 군무, 수준 높은 뮤직비디오, 트렌디한 패션 감각과 외모,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가사, SNS를 통한 활발한 커뮤니케이션 등입니다. 제가 보기에 가장 핵심은 사회비판적 가사에 있다고 봅니다. 자신들의 삶에서 느끼는 시련과 아픔, 절망, 두려움 그리고 희망을 얘기합니다.

방탄은 남한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 억압, 불평등, 편견 등의 문제를 자기 세대의 눈으로 읽어내고 이로 인한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힘을 모아 정의롭지 않은 현실을 바꾸자고 외칩니다. 이것이 음악에 담겨 전 세계 청년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입니다. 이들 팬 클럽의 이름이 ARMY입니다. 그냥 읽으면 군대인데, 이는 Adorable Representative M C for Youth로 “청춘의 사랑스러운 대변자” 란 뜻의 첫글자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세계의 젊은이들은 방탄이 부르는 노래를 그대로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냥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언어로 '뱁새' '황새' '몇 포 세대' ‘똑같은 꼭두각시 인생’ ‘우린 다 개돼지’ ‘장래 희망 넘버원 공무원’이라는 한국어 가사가 무슨 뜻인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 방탄소년단 ⓒGetty Image

방탄의 현실진단과 그에 기초에 희구하는 사회변화의 공감이 한반도를 넘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방탄과 아미는 인간다움의 실현을 억누르는 구조적 요소들을 떨쳐내고 잠재력을 끄집어내어 인간 해방을 지향합니다. 현재의 세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필요성, 그리고 그 변화가 더 큰 자유와 해방, 더 나은 세상을 향해야 한다는데 대한 감응과 공명, 이것이야 말로 방탄이 글로벌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근본적인 요인 중 하나입니다.([BTS 방탄혁명: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이지영 파레시아 2018 15쪽) 이는 제 얘기가 아니라 들뢰즈 철학을 전공하는 이지영 박사의 주장입니다.

저는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저는 이게 바로 이천년 전 마가의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성령강림절 방언 역사의 재현이라고 생각합니다. 120명의 사도가 자신들의 언어로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을 외쳤고 거기에 모여든 순례자들은 곧 이러한 자유와 해방의 복음을 자신들의 언어로 이해했던 것인데, 곧 방탄소년단은 사도들이 되고 순례자들은 아미 광팬들이 되는 것입니다.

저들이 내놓은 앨범의 제목이 Love Yourself입니다. 지난 목요일이 방탄 5주년이 되는 날인데, 세계 곳곳의 아미들이 저마다의 기념행사를 펼쳤는데, 타일랜드 방콕의 아미들이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헌혈운동을 펼쳤습니다. Love Yourself는 달리 말하면 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지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라는 곧  Love Myself 운동인데, 젊은이들은 이 단어 속에 숨겨져 있는 연대의 함의를 이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이웃 사랑으로 환원하였고, 그래 헌혈운동을 펼쳤고, 본래 10만cc를 목표로 했는데, 20만cc가 모인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우리 세대의 로망이었던 비틀즈보다 지금의 방탄이 훨씬 더 거센 변혁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들은 오늘 이 시대의 음악의 겨자씨들인 것입니다.

뜻으로 본 역사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4천년 한반도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정리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역사는 두 가지로 남는다. 하나는 뒤에 남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속에 남는 것이다. 보통 일반적으로 역사라 할 때는 뒤에 남는 역사를 말한다... 그러나 역사는 기록으로 남거나 유물로 전하게 되는 그것만이 아니다. 살아 있는 생명 속에 남아 있는 것이 또 있다. 그것은 마치 소화된 음식 같아 원형 그대로를 볼 수는 없으나, 산 생명으로 민족 안에 남아 있어 그 체격이 되고, 얼굴이 되고, 마음씨와 성격이 되고 풍속과 신앙이 되는 것이다. 한반도는 천년 고난으로 인해 그 생명이 망가지고 말았다.”(444쪽)

“그러나 장차 올 날을 누가 아느냐?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눈을 들어 보아라. 거칠고 쓸쓸한 들판이 끝나는 곳에 한 줄기 요단강이 가로누웠고, 거리를 건너면 새 가나안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서 싸울 때는 칼이 소용없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었다. 거기서 이 수난의 비렁뱅이는 거지 나사로와 같이 과거의 모든 고통과 업신여김에서 벗어나 위로와 존경을 받을 것이다. 지난날 길가의 여인은 그 받은 고난으로 정화되어 여왕이 될 것이다. 젊은 혼들아 일어나라. 이 고난의 짐을 지자. 위대한 사명을 믿으면서 거룩한 사랑에 불타면서 죄악으로 더럽혀진 이 지구를 메고 순교자의 걸음으로 고난의 연옥을 걷자. 그 불길에 이 살이 다 타고 이 뼈가 녹아서 다하는 날 생명은 새로운 성장을 할 것이다. 진리는 새로운 광명을 더할 것이다. 역사는 새로운 단계에 오를 것이다.(486쪽)

지난 70년 동안 분단이 우리 안에 만들어 놓은 미움과 저주는 이 민족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집어넣고 말았습니다. 민족혼이 말살되었을 뿐더러 개개인의 영혼이 병들고 말았습니다. 외세의 꼭두각시 노릇으로 인해 우리는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세계는 한반도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지구는 전쟁의 시대를 마감하고 진정 평화의 시대로 진입할 것인지 아니면 또 다시 전쟁으로 치달을 것인지.

겨자씨와 핵무기

저는 한반도 전체 곧 남과 북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이 세계에 평화의 기운을 불러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그 시발점은 분명히 북조선에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북조선의 핵무기개발이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는 저항의 겨자씨가 된 것입니다. 미국은 만발에 가까운 핵무기를 갖고 있는데, 십여 발의 핵무기로 무슨 상대가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조선은 70년간의 경제봉쇄로 인해 극도의 어려움에 처해 있었기에 일종의 ‘벼랑 끝 전술’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국을 압박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중국과 러시아를 맞대고 있는 북조선을 이라크나 아프칸 마냥 공격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세계3차대전을 불러올 위험성이 높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남한과 일본 그리고 이 두 나라에 주둔해 있는 미군들의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이 핵무기 기술이 중동의 아이시스와 같은 테러집단에 전수된다면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고 맙니다. 결국 미국은 로마제국이 농부들의 겨자씨의 저항에 부딪혀 폭압을 중지하듯이 북조선의 겨자씨 저항에 굴복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은 북조선을 적국으로  삼아서는 안 되고 공존하는 길만이 최선의 길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미국과 남한은 전쟁놀이를 중지하고 남과 북은 DMZ를 평화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중화기를 철수하고 북의 장사포 또한 뒤로 물리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제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남과 북은 군축협상을 진행하게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미군은 철수하고 남북의 젊은이들은 강제징집에서 해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내전 중인 시리아도 휴전을 협상 중에 있고 아프칸은 탈리반과 휴전 직전에 있습니다. 저는 판문점남북회담과 싱가폴조미회담을 통해 세계 곳곳에 평화의 기운이 전달되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오늘 에스겔 예언자는 말합니다. “주 야훼가 말한다. 높은 나무는 쓰러뜨리고, 낮은 나무는 키워 주면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마른 나무는 다시 푸르게 하는 이가 나 야훼임을 알게 하리라.”예수께서는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되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십니다. 내 안에 숨겨진 하느님 나라의 씨앗 겨자씨를 발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조헌정  choshal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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