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미주 1)

전쟁이나 국가적 위기상황 속에서 대체로 남성들은 징집되어 전쟁에 참여하며, 여성들은 가정과 지역에서 그 사회의 유지를 위해 각처에서의 삶을 지켜낸다. 필요한 경우 간호병이나 보조 인력으로 전쟁에 참여하거나 산업전선에서 일하기도 한다. 공동체의 위기 속에서 성별에 상관없이 그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헌신과 희생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이 구성원들의 인권유린과 생존권 침탈을 정당화시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인류의 전쟁역사는 국가의 혼란기나 전쟁 시 구성원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이에 침묵하거나 심지어 정당화시킨 경우도 많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오늘 다루는 전쟁성노예에 관한 문제이다. 전쟁 중 여성이 남성들의 성욕해소나 집단성폭력의 희생자로 피해를 본 사례는 한국의 역사와 성서의 역사를 포함한 모든 인간 역사의 전쟁이야기 속에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최악의 여성인권유린 피해사건으로 일본군에 의해 운영된 성노예제인 ‘위안부’(미주 2) 제도가, 가해사건으로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동안 한국군에 의한 성폭행과 군 위안부제도 운영이 있다. 성서에서는 사사기 19-21장의 기브아에서의 한 여성의 윤간, 야베스-길르앗 처녀들과 실로 여성들의 집단 납치와 강간 후 결혼을 강요당한 사건이 있다.

▲ 힌신대 신학부 이영미 교수 ⓒ윤병희

오늘의 강연은 극단적인 여성인권유린의 현장을 보여주는 두 이야기(한국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사사기 19-21장의 이야기)의 합류를 통해 전쟁 속에서 성폭행을 당했던 여성들의 참혹한 경험을 회고하고 이를 기억하고자 한다. 잊혀진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는 이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러한 불의가 자행되지 않도록 저항해야 한다. 결국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연대하는 나비들의 연대만이 가해자의 회개를 이끌어내고 이러한 비극적 역사의 고리를 끊어낼 힘을 마련해줄 수 있음을 공감하며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기를 바라면서 강연을 시작한다. 

2. 첫 번째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72년 오키나와에서 배봉기가 최초로 폭로하였지만(미주 3)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여성단체의 적극적인 노력과 계속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통해서였다. 1988년 당시 교회여성연합회 위원이던 윤정옥 교수가 종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고 난 뒤 교회여성연합회 교회와 사회위원회 안에 정신대 연구위원회가 신설되고 이를 모체로 1990년 11월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결성되었다. 이후 1991년 8월 14일 67세의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과거에 ‘위안부’였음을 밝히고 자신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증언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들의 참혹한 추방과 학살의 경험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미주 4) 2018년 6월 1일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은 238명이며 그 중 생존자는 30명이다. 해외에 잔류한 피해자의 경우는 20여 명의 생존이 확인되고 있다.(미주 5)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미주 6)과 제한된 사료들을 통해 재구성해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태는 다음과 같다.

1) 일본군 위안소의 운영실태

위안소가 개설되기 시작하는 것은 1931-2년 경, 중국 상해 등의 일본군 주둔지에서이지만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군위안소 설치가 급증하였다. 위안소를 개설한 취지는 일본군대의 사기 진작을 위해 일본군의 성욕을 해소하고, 점령지역에서 일본군이 현지 여성에 대한 강간을 막아 치안을 유지하고 황군의 위엄을 손상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며, 성병으로부터 안전한 여성을 제공해 성병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미주 7) 위안소의 형태는 대체로 1. 군 직영, 2. 군이 감독 통제하는 군(군인, 군속) 전용 위안소, 3. 일정 시기 군이 민간의 매매음업 등을 병사용으로 지정하는 군 이용 위안소로 나누어진다.(미주 8)

1942년 당시 위안소는 중국에 280개 이상, 동남아지역에 120개 이상의 설치된 것으로 보이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92명의 증언을 근거로 그들이 연행되었던 지역을 정리하여 일본군 위안소가 배치된 지역 및 인원수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미주 9)

일본군부가 직접 개입한 사실을 부인함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위안부’ 운영을 직접 담당 혹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기록들이 있다. 예를 들어 1942년 9월 3일자 육군성 중앙 과장회보에는 중앙의 직접 지도로 “장교이하 위안시설 복지 100개소, 중지 140개소, 남지 40개소, 남방 100, 南海 10, 樺太10개소를 설치”했다는 기사가 있고 1942년 육군성 경리국 건축과에서는 해외 파견군에 총 32,103,700개의 콘돔을 보낸 기록이 확인되었다. ‘위안부’ 제도와 관련한 육해군이나 정부관련 자료가 32건 공개되었다. 그 가운데 만주중앙은행 안산 지점이 관동군과 제4과의 승인을 거쳐 공적인 군용비로 일본군 ‘위안부’ 조달전용자금 입금을 했던 기록이 발견되는 등 일본군의 ‘위안부’ 알선업자의 비용지불에 대한 증거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문서자료들은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 계획입안, 업자의 선정, 의뢰, 증명서 발급, 자금알선, 징집할 여성들의 숫자 산정, 여성모집, 여성 수송 및 운반, 감독과 통제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을 증명해준다.(미주 10)

2) 일본군 ‘위안부’들의 강제징집

‘위안부’ 피해여성들이 일본군의 성노예였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들에게는 행동의 자유가 없었으며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고, 자유인의 징표인 거절할 자유가 없었던 점 뿐 아니라 동원자체도 강제적이었다는 점이다.(미주 11) 일본정부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공창제의 자발적인 참여자로 왜곡함으로써 ‘위안부’ 피해 여성의 동원에 일제 행정부/군부의 개입을 회피하고, 동원의 강제성을 무마시키고 국가적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 책임을 자본으로 환원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정진성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연행에 관한 연구”를 통해 당시 군 ‘위안부’ 동원은 민간인과 군관이 모두 나서서 사기와 폭력의 방법을 닥치는 대로 사용하여 식민지 조선의 전 여성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행한 강제연행이었다고 단언한다.(미주 12) 한국정부의 ‘위안부’ 피해신고 자료를 보면, 조선인 ‘위안부’ 동원에 있어 취업사기에 의한 연행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폭력과 협박에 의한 연행인 것으로 나타난다.(미주 13)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의 나이는 대부분 10대 소녀들로 증언한 피해자 중 가장 어린 나이가 11세에 끌려간 경우이다. 이들은 위안소의 조그만 방에 갇혀 하루에 20-30명, 심지어 50여 명에 달하는 일본군들의 성노예를 강요당하였다. 도망하거나 성행위를 거부하면 일본군인의 고문, 구타로 살해되거나 상해를 입기 일쑤였다.(미주 14)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강제 연행을 부정하면서 일본군 위안소 제도는 공창제도 하에서 이루어졌던 관리매춘에 해당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영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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