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읍내를 거쳐 고인돌 관광지를 지나 민통선 통제선을 통과해서 산길을 따라 찾아기면 일벗교회가 있다. 그곳에 교회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할 만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천연 농사꾼같이 검은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이지만 넉넉한 웃음으로 서정훈 목사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한 방송국 기자가 먼저 와서 교회와 사회적 기업 ‘콩세알’ 일터를 취재하고 있었다. 서정훈 목사의 ‘콩세알’은 이미 농촌형 사회적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 서정훈 목사

일벗교회 서정훈 목사는 강화가 고향이다. 서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농촌목회를 꿈꾸며 감리교 내 농목운동을 했다. 농목운동은 1980년대 중반, 비교적 젊은 목사를 주축으로 한 농촌 목회자들이 농촌을 지키고 농민들과 함께 하는 농촌선교를 꿈꾸며 결성한 목회자 모임이다. 당시 감리교 농목, 예장통합 농목, 기장 농목 등 400여 목회자들이 농촌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자는 진보적인 색채로 농촌교회를 살리기를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농촌에 맞는 예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친환경 농사도 짓고, 도시와 농촌 간 농산물을 직거래하기도 하며 농촌 지키기 운동을 전개했다. 더 나아가 농목 소속 목사들과 함께 농촌을 지키기 위해 수입개방에 맞선 반외세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로 오면서 사회적 이슈보다는 감리교 내 농도운동으로 유기농 운동, 농산물 직거래, 공동농장 운영, 정주운동(定住運動) 등을 전개하면서 더욱더 농촌생활 속에서 운동의 주제를 찾게 되었다.

서정훈 목사는 한 때 목회지를 찾았었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고 전도사가 되었으니, 늦깍이 전도사를 받아 줄만한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서 목사는 농촌 목회의 핵심은 생산자 운동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예 목사가 되는 꿈을 접고 2001년에 고향인 강화도로 돌아왔다. 아예 농사꾼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주운동(定住運動)이다. 서 목사에게 강화도는 가족 내력으로 10대째 농사를 지어 온 고향이다. 서 목사는 농촌으로 돌아와 오리농법으로 친환경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아버지부터 반대했다. 그러나 서 목사는 미래사회는 생산과 소비 모두가 친환경적 가치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줄기차게 밀고 나갔다. 처음에 반대하던 주민들도 그의 뜻에 공감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갔다. 남들은 고향을 등지는데 젊은 청년이 고향을 찾아 이 일 저일 가리지 않고 너무나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지역에서 이런 가치와 신앙고백을 공감하는 이들이 하나 둘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기 시작했다. 교회를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서 목사가 지역에서 일하면서 그의 삶의 철학과 신앙에서 우러나온 신앙적 섬김이 만들어낸 신앙공동체였다. 몇 년 후에 교회의 이름을 ‘일벗교회’라 지었다. 일벗교회는 예수님이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일했듯이 신앙으로 일을 벗 삼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마침내 2005년에 일벗교회는 설립 교회가 되었고, 서 목사가 목사 안수도 받게 되었다. 그 때 나이가 41살이었다. 올해가 일벗교회 10주년이었다.

이 무렵 일벗 생산공동체가 결성되었다. 일벗교회의 창립 멤버들을 포함해서 “신성한 노동!, 신명난 일벗!”을 모토로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약속하며 출범했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양돈 폐축사를 허물고, 농협에서 5천만 원을 대출하여 40평 규모의 두부공장을 만들었다. 두부공장의 이름은 ‘콩세알’이다. ‘콩세알’이라는 이름은 옛날 우리 조상들의 너그러움을 닮은 이름이다. 옛날 농부들은 콩을 심을 때 한 자리에 세 알씩 넣었는데, 한 알은 벌레나 새가 먹고 한 알은 이웃이 먹고 한 알은 심은 사람이 먹기 위해서란다. 더불어 사는 모두에게 정직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서로를 살리면서 지켜가는 ‘생명’이라는 가치, 여기서 배어나오는 기쁨이 넘치는 ‘나눔’이라는 가치, 어우러져 지속되는 ‘순환’이라는 가치가 콩 한 알 한 알에 깃들어 열매로 나타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생명·나눔·순환이라는 3박자다.

▲ 서정훈 목사의 작업실

그래서 ‘콩세알’은 절대로 수입콩을 쓰지 않는다. 무농약 유기농 콩만 사용한다. ‘콩세알’ 두부공장은 소포제나 유화제, 보존제 등 화학첨가물이 전혀 없다. 생산 방식도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 콩은 토양 좋은 강화도에서 자란 콩을 전량 수매한다. 그리고 부족한 콩은 생협을 통해서 구매하고, 감리교 농도생협을 통해 구입한다. 무농약 콩을 엄선하여 강화 지하수로 몇 번을 세척하여 불린 뒤 콩물 농도 10% 이상으로 진하게 만들어진 두유를 가마솥에 저어가면서 끓인다. 가마솥은 스팀보다 더 고온으로 끓일 수 있기 때문에 콩 특유의 비릿함을 없애주고 고소한 맛을 낸다.

서 목사는 필요한 기계나 설비도 직접 연구해서 제작한다. 서 목사가 만든 작업장을 보니 웬만한 공작기구가 다 모여 있다. 결국 농군인 서 목사의 이런 노력의 결과, ‘콩세알’은 2008년에 ‘사회적 기업 콩세알’로 재탄생했다. ‘콩세알’ 제품은 두부에서 유부류, 장류, 묵류 등으로 확대되었다. 올해에는 강화도 특산품인 노랑고구마를 활용하여 고구마 묵을 신제품으로 개발하여 출시했다. 이제 ‘콩세알’은 사회적 기업 가운데서는 연 매출 18억 원을 웃도는 중견기업이 되었다. 올해 ‘콩세알’은 일벗교회가 위치한 강화도 양사면 일대 5만 평에 콩을 파종하고, 이 일에 작목반만 50여 명을 우선 일자리로 제공했다. ‘콩세알’은 이처럼 지역사회와 함께 소통하면서 끊임없이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지역사회발전을 위한 아이템을 찾아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었다.

이후 ‘일벗 생산 공동체’는 생명과 지역을 살리기 위해 다채로운 사업들을 진행했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해 식당을 만들기도 하고, 청소년을 위한 농촌 체험 캠프도 열고, 두부를 활용한 요리체험 교실도 열었다. 이 일의 중심에는 아내 오애란 사모가 있다. 아내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역자다. 처음에는 피아노 학원을 경영했다. 그러나 지금은 청국장도 만들고, 요리도 가르치고, 친환경 농촌체험을 원하는 어린이집 등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사업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당일에도 오애란 사모는 한 유치원 원장과 함께 체험 일정과 프로그램을 체크하고 있었다. 농촌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장 담그기, 두부 만들기, 농사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교회의 소규모 수련회도 가능하다.

사회적 기업가로 성공한 서정훈 목사는 일벗들과 더불어 살아갈 대안적인 생활경제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그래서 세계 공동체에 대해서 매 주일 학습을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벗 교우들 7명과 더불어 일본 스즈까의 애즈원 커뮤니티에 다녀왔다. 서정훈 목사의 마음속에는 천국 같은 공동체를 일구어 보고 싶은 욕망이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루더호프 공동체, 떼제 공동체 등 수많은 디아코니아의 신앙과 경제생활을 함께 풀어가는 다양한 공동체가 머리에서 아른거린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귀히 존중받으며 자유롭게 살아가고, 서로 친밀하여 노후나 후세에 대한 걱정이 없고, 적게 가졌어도 더 가질 필요가 없는 늘 풍족한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 사회적 기업 <콩세알>

이준모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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