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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통합일상생활이야말로 하나님이 계신 곳
데이비드 프레네츠 | 승인 2018.07.04 21:47

기도와 활동은 종종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기도하는 내적 평화의 순간은 일상생활의 외적 분주함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관상 여정은 “세속의” 삶과 다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관상 수련이 성장하면 이런 외견상 분리는 줄어들며 사라진다. 성숙한 관상 수련은 기도와 활동 같이 영적으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통합한다.

당신의 하나님 관념은 향심기도(미주 1) 수련과 관상적 깨달음에 영향을 준다. 만일 하나님을 당신 바깥에 있는 하나의 존재나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당신은 자신과 분리된 어떤 것을 향해 더욱 가까이 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당신은 마치 당신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서 생명의 물을 찾으려는 물고기와 같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하나의 대상으로 여겨질 때 당신의 영적 여정은 언제나 분리감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내면에 계시다는 관념도, 물론 이것은 진실하고 가치 있는 관념이지만, 하나님을 하나의 장소에 위치시킨다. 장소적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대상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기도하면서 어떤 목표(대상)를 추구하도록 자극한다.

가장 심오한 관상적 직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나의 장소를 점하고 있는 존재라기보다 생명으로 늘 흘러넘치는(life is always emerging) 어떤 “역동적 신비”(dynamic mystery)라는 것이다. 물고기가 생명의 물이 하늘에서 빗방울로 떨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라. 이뿐 아니라 물고기가 자신의 몸 대부분이 물로 이루어졌으며, 심지어 자신이 늘 대양 속에서 살며 움직이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어떻겠는가? 당신의 하나님 관념이 물에 대한 물고기의 관념처럼 확장되었다면 어떻겠는가? 하나님 관념이 확장되면 관상 수련을 통해 당신은 생명의 파도와 물결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것이며, 마침내 당신도 신성의 대양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령이라는 생명의 물의 흐름 속에서 당신은 생명의 신비에 깨어나며, 당신도 언제나 생명 속에 있음을 깨닫는다. 가장 셈세한 관상 수련은 하나님의 존재(대상)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당신이 늘 하나님의 역동적이며 보편적인 생명 속에 있음을 깨닫는 것과 관련된다. 이 생명은 당신 주변에서 언제 흘러넘친다. 하나님은 비 보다는 물에 가깝다. 하나님은 당신 위에, 당신 안에 계시며, 당신은 하나님 안에 있다.

통합과 (생명의) 흘러넘침은 다른 관상적 “성품들”(dispositions)을 완성할 뿐 아니라, 그것들에 더 큰 일치의 관을 씌워주는 마지막 관상적 태도이다. 영적으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통합하고, 삶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출현(emergence)하시는 하나님을 감지하는 훈련을 하면, 당신은 일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분리

매 주일 오후에 하던 도보 여행을 내 오랜 친구 짐과 하고 있었는데, 짐은 피정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짐은 저소득층 가정을 위해 임대주택을 지어주는 일을 했고, 아내와 함께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아이를 입양해서 돌보고 있었다. 그는 매우 분주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으므로 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짐은 25년 동안 관상기도를 해오고 있었으며, 피정에 참여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수도원에 가는 대신 이번에는 사막에서 일중일 동안 야영을 할 계획이었다. 짐이 그런 계획을 나에게 말했을 때 나는 그의 목소리에서 침묵과 고독에 대한 갈망을 느낄 수 있었다.

사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나는 짐을 만났다. 함께 걸으면서 그는 야영을 겸한 이번 피정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주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경이로울 정도로 평화로웠다고 했다. 그토록 바랐던 내적·외적 쉼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나흘 째 되던 날 오후 그는 큰 바위 위에 앉아 사막의 협곡을 바라보면서 명상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내적 평화가 그에게 흘러넘쳤다. 그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 이렇게 외쳤다. “나에게는 평화가 충분하다! 다시 그런 평화를 가질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런 강렬한 통찰이 그를 사로잡자 그는 바위에서 일어나 그 평화의 장소를 떠났던 것이다. 그는 사막을 떠나기 전 두 가지 경험과 씨름하면서 며칠을 지냈다. 하나님의 평화 속에서 쉬는 경험과 평화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험이 그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짐이 위대한 관상적 깨달음(contemplative breakthrough)의 경지에 도달했으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나님 안에서 쉬는 것과 내적 평화를 경험하는 것은 중요하다. 짐의 일상은 매우 분주했고, 스트레스로 가득했기 때문에 짐은 고요함을 필요로 했다. 영적 여정에 오랫동안 헌신한 후에 매우 활동적인 삶을 살면서 어떻게 평화가 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겠는가? 짐은 어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는가?

평화와 분주함의 통합

일상생활의 활동과 시련들 한복판에서 관상적 여정을 걷기 위해 짐이 내적 평화와 자유를 필요로 했던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다. 이따금 마음의 혼란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영적 여정을 촉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짐의 반복되는 문제들 중 하나는 하나님의 평화에 집착하는 것과 초탈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진리”(God’s divine Truth)를 추구하는 동안 짐은 자기 앞에 명백하게 펼쳐지고 있는 “인간의 진실들”(human truths) 역시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결혼과 그의 일과 그의 가정생활은 관상의 길과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일상생활의 기쁨과 고통은 물론 분주함마저도 영적 여정의 일부인 것이다. 기독교 관상 여정의 본질-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당신 자신의 삶에 있어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은 분리될 수 없다는-을 발견하려면 초월적 평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초월적 평화를 지나치게 추구함으로써 짐은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고 그의 일상 속에 내재해 있는 더 큰 진실을 놓치고 있었다.

어떤 점에서 보면 관상 여정은 자연스럽게 발전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상이라는 가면을 쓰고 규칙적으로 나타나시곤 하는 것이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 짐의 영적 여정은 이러한 깨달음의 입구에 도달했다. 그것은 관상의 열매인 하나님 안에서의 일치라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나는 짐이 이런 일치를 실현하는 문턱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통합 연습은 기도와 삶의 분리, 평화와 산만함의 차이, 내면과 외면의 이분법, 신성한 것과 인간적인 것의 분열을 결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나님 안에는 당신이 배제한 일상의 산만함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기도와 삶 사이의 외적 분리는 하나님 안에서 통합된다. 이것이 협곡 위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아 있었을 때 짐이 발견한 것이다. 짐의 태도의 변화는 삶의 현실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은 배제한 채 하나님의 평화로운 현존을 주로 추구했던 오랜 기간의 향심기도 수련 이후에 찾아온 것이다. 분주하고 어수선하고 때로는 터무니없기까지 한 인간적인 것은 신적인 것을 향한 긴 여정에서 제외될 수 없다.

삶속에서의 통합과 출현

짐이 사막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관상 수련은 일치의 직관을 향해 발전하고 있었다. 그는 생각들의 흐름과 매순간 새롭게 출현하시는 하나님의 행위 안에서 더욱 자유를 느꼈다. 같은 시기에 짐의 일은 더욱 바빠지고 있었다. 그는 짓고 있었던 집을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크게 시달리고 있었으며, 마감일을 지킬 수 있는 물자와 일꾼도 부족하였다. 나는 짐의 사막에서의 깨달음이 그의 건축 일을 끝내도록 도왔으며, 가족과 관련해서도 새로운 책임을 맡을 수 있게 했다고 믿는다. 물론 일의 스트레스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이를 입양하는 과정이나 아버지 노릇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짐의 사막에서의 깨달음과 현실에 반영된 그의 태도의 변화는 그의 일상과 삶과 그의 일과 그의 가족 부양 의무를 하나님 안에서 이해하고, 하나님 안에서 경험하는 것을 도왔다고 하는 믿는다.

사막에서 돌아온 지 6개월이 지났을 때, 짐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데이브, 일상생활이야말로 하나님이 계신 곳일세. 그리고 내 가정이야말로 영성 수련의 최적의 장소일세.” 짐은 삶의 시련을 통해 더욱 깊은 관상 수련으로 초대되었던 것이다.

미주

(미주 1) 향심 기도는 우리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열어 드리고, 내어 맡겨 드리는 기도이다. 향심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하나님을 향한 지향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 지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을 향한 지향을 나타내는 거룩한 단어를 사용한다. 거룩한 단어는 기도하는 사람이 선택을 하는데, 주로 3음절 이하의 짧은 단어로 하나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단어이다. 기도 가운데 올라오는 생각(잡념, 혹은 분심이라고 한다)은 어떤 것이든지 다 흘려보내면서 원래의 지향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향심 기도는 끊임없이 생각을 내려놓음을 통해 예수님의 자기 비움을 실천하는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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