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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간과 집단 전쟁성폭력 피해여성들(삿 19-21)전쟁 성폭력에 맞서는 나비들의 연대 3: 일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성성서신학적 성찰
이영미 | 승인 2018.07.05 22:26

지난 6월14일, 평화연구소가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이제홀에서 평화절기예배연구모임의 첫 번째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이날 한신대 신학부 이영미 교수(구약학)께서 “전쟁 성폭력에 맞서는 나비들의 연대: 일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성성서신학적 성찰”이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발표를 진행하셨습니다. 이 원고를 몇 번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원고를 보내주신 이영미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1. 들어가는 말

2. 첫 번째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 ‘위안부’
1) 일본군 위안소의 운영실태
2) 일본군 ‘위안부’들의 강제징집

3.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에 대한 기억과 해방을 향한 연대
1) 가해자 일본군부와 일본 정부의 대응
2) 국제사회단체의 연대
3) 한국 여성단체들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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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두 번째 이야기: 윤간과 집단 전쟁성폭력 피해여성들(삿 19-21)
1) 문밖으로 내동댕이쳐진 채 밤새도록 윤간당한 여인(삿 19)
2) 가해자의 은폐가 낳은 또 다른 폭력: 전쟁과 한 부족의 말살 (삿 20)
3) 야베스-길르앗과 실로의 처녀들에 대한 집단 전쟁성폭력의 현장(삿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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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브아에서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반응들
1)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
2) 성서편집자의 반응

6. 두 이야기의 합류

7. 끝맺는 말: 전쟁 성폭력의 불의를 고발하며 저항하는 나비들의 연대

 

4. 두 번째 이야기: 윤간과 집단 전쟁성폭력 피해여성들(삿 19-21)

사사기 19-21장은 문밖으로 내동댕이쳐진 채 밤새 윤간당한 한 여인의 비참한 성폭행사건과 이로 인해 발생한 전쟁 중에 집단으로 납치당하고 강간당한 집단 전쟁성폭력의 사례를 보여준다. 고대 이스라엘의 사사시대에 일어난 이 성폭력 사건들은 시대를 달리하면서도 남성중심의 성윤리를 바탕으로 국가권력에 의해 벌어진 성폭력이라는 점과 그 배경에 부계혈통을 기초로 한 가부장적 사회질서와 순결이데올로기가 깔려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그 사건의 전말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문밖으로 내동댕이쳐진 채 밤새도록 윤간당한 여인(삿 19)

사사기 19장은 한 레위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가 친정으로 돌아와 4개월간 머문 여인이 그의 남편을 따라 ‘야훼의 집(베트 아도나이)’으로 가는 중(19:18) 기브아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보도한다. 레위 남자와 그의 아내(미주 24)가 기브아 성에 있는 한 노인의 집에 머무를 때 그 성의 불량배(아느셰 브네-벨리야알)들이 몰려와서 그 집을 에워싸고 주인에게 레위남자를 내보내줄 것을 요구한다. “벨리야알의 아들들”이란 표현은 그들이 쓸모없고, 사악하며, 선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존재들을 의미한다.(신 13:13; 삿 19:22; 20:13; 삼상 2:12; 10:27; 왕상 21:10, 13) 이 말은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무리들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미주 25)

불량배들은 레위남자를 “알기(야다) 위해서” 그를 문밖으로 내보내줄 것을 요구한다. 이 본문에서 히브리어 야다의 뜻이 무엇으로 쓰였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주인은 그들의 요구가 ‘망령된 일’(19:23, 25)이라고 말한다. 히브리어 네발라는 세겜 사람들이 디나를 강간했을 때(창 34:7), 암몬이 공주 다말을 강간했을 때(삼하 13:12, 13),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들에 대한 행위를 가리킬 때(렘 29:23) 사용되었다.

키이페(A. Keefe)는 단순한 강간사건과 달리 네발라로 표현되는 강간은 “그 자체가 내재적으로 공동체를 향해 무질서, 혼돈 그리고 평화를 붕괴시키는 죄악”을 지칭한다고 설명한다.(미주 26) 그 ‘망령된 일’이 정확히 무엇이건 간에 주인에게는 자신의 딸과 레위남자의 아내의 안전보다는 손님인 레위 남자가 더 중요하고, 주인은 레위 남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처녀인 자기 딸과 레위남자의 아내를 내어줄 것을 제안한다.

▲ 레위인의 첩이 강간당해 사망했다. ⓒGetty Image

여성은 대체 가능한 존재로 여겨지는 남성중심적 세계관이 이 내용에는 함축적으로 들어있다(창 19 참조). 주인 노인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레위 남자는 자신의 아내를 강제로 잡아(하짜크) 밖으로 내보낸다. 그들이 그녀를 밤새도록 “욕보이고(야다),” “능욕하다(알랄)”가 새벽 미명에 “놓아주었다.” 레위 남자는 공범의 수준을 넘어 아내가 기브아 성의 불량배들에게 윤간을 당하게 한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이다.

밤새 윤간을 당한 레위 남자의 아내는 남편이 있는 집의 문에 이르러 새벽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었다. 남편은 그녀를 문 안으로 데리고 가 상태를 살펴보는 대신, 아무 대답이 없자 그녀를 나귀에 싣고 문 밖으로 나가 길을 떠난다. 희랍어 번역본에는 “그녀가 죽었기 때문이다”라는 문구가 첨가되어있지만, 히브리어 본문(MT)은 그 여자가 아무 대답이 없다고 말할 뿐이어서 아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고향에 도착한 레위 남자는 곧바로 기브아의 불량배들에게 당한 폭력을 응징해줄 것을 호소하는 수단으로 아내의 시체를 12토막 내어 이스라엘 온 지역에 보낸다(19:29). 그러나 이처럼 정의를 부르짖으며 죄에 대한 응징을 요구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토록 이기적인 모습으로 아내를 바깥으로 내동댕이쳤던 레위 남자이다.

2) 가해자의 은폐가 낳은 또 다른 폭력: 전쟁과 한 부족의 말살 (삿 20)

배달된 시체토막은 성폭력의 잔혹함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는지 모든 백성이 곧바로 미스바에 모여 총회를 연다. 병사만으로도 사십만 명이었다(20:2). 총회는 레위 남자에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해줄 것을 요구하였고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내가 내 아내와 함께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아내를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내가 내 아내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찌마)과 망령된 일(네발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삿 20:4b-7)

레위남자의 증언은 사사기 19장이 들려주는 사건의 전말과 다르다. 우선 19장에서는 기브아 성에 있는 불량배들(아느셰 브네-벨리야알)이 몰려와서 레위남자와 그의 아내가 묶고 있는 집을 에워쌌지만(19:22) 여기서는 기브아의 주인들(바알레 학기브아)이 집을 에워쌌다고 말한다. 둘째로, 그들은 레위인을 죽이려한 것이 아니라 레위인을 ‘알기 위해서(야다)’ 집주인에게 그를 내보내 줄 것을 요구했었다(19:22) 셋째로, 레위남자의 아내가 불량배들에게 윤간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되도록 그 여인을 밖으로 강제로 내동댕이친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다. 그의 침묵은 사건을 왜곡, 확장시키는 원인이 된다. 끝으로 밤새 윤간을 당한 그 여인이 죽었는지의 여부는 19장에서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레위인은 자신이 시체를 거두었다고 말한다. 그 여자는 동틀 때에 남편이 머무는 집의 문(페타흐)에 이르러 쓰려져있었다. 만일 그녀가 죽었었다면 레위사람은 시체를 만지는 부정을 저지른 셈이 된다.

자신의 죄책고백이 빠진 레위 남자의 왜곡된 진술은 곧바로 이스라엘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여과 없이 받아들여지고 그들은 한 마음으로 굳게 단결하여(하베림) 그 응징의 대가로 기브아 사람과 베냐민 지파를 향한 전쟁선포와 베냐민 사람에게 딸을 아내로 주지 않을 것을 맹세하기에 이른다. 이제껏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권능을 주었던 사사들 중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온 지파의 일치단결을 에브라임 산지에서 온 이름 없는 레위 남자가 이끌어낸 것은 정말로 놀랍다.

3) 야베스-길르앗과 실로의 처녀들에 대한 집단 전쟁성폭력의 현장(삿 21)

전쟁은 이스라엘 지파의 승리로 끝나고 림몬으로 도망친 600명의 군사를 제외한 베냐민 지파는 전멸 당한다. 총회 참석자들이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않기로 한 맹세 때문에, 광야로 피신한 베냐민 남자 600명은 아내를 구할 수 없게 되었고 베냐민지파는 멸종의 위기를 맞는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말하였다 (삿 21:3)

부족 간의 동맹으로 형성된 공동체에서 한 부족의 혈통이 끊어지게 될 상황은 절대 절명의 조직의 위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위기가 마치 하나님 탓인 양 탄원하지만 이는 이스라엘 지파동맹체의 자업자득의 결과이다.

바로 앞에 나오는 20장 48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베냐민 지파와의 내전에서 베냐민의 모든 성읍과 가축과 사람을 죽이고 불사른 후, 미스바에 모여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않겠다고 맹세한다.(21:1) 이스라엘 남자들은 미스바에 모여 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맹세를 했는지 성서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전쟁의 광기에서 충동된 바보들의 맹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지파조직의 위협과 한 부족의 멸종 위기를 자초한 폭력적인 권력은 또 다른 아니 더 심각한 폭력으로 그 문제를 덮는 결정을 멋대로 내린다. 한부족의 말살을 다른 한 성읍의 말살과 여자들의 납치로 해결하려는 미스바 총회의 결정은 독자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이스라엘 지파조직의 우두머리들이 고안해 낸 해결책이란 야베스-길르앗 주민이 미스바 총회에 나오지 않았던 사실을 떠올리고 병사 만 이천 명을 야베스-길르앗에 보내 그 주민과 부녀와 어린아이를 몰살하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 400명을 포로로 잡아와 림몬 바위에 숨어있던 베냐민 남자들에게 아내로 주고, 그래도 못채우는 200명의 남자들이 아내를 얻지 못하자 지도자들은 두 번째 묘책을 내어 이번에는 실로에 매년 야훼의 명절이 있는데 거기에 명절을 지키기 위해 춤추러 나오는 여자들을 강제로 납치해 아내로 주는것이었다.(21:20-21) 여기서 베냐민 지파의 남자들의 후계를 잇기 위한 아내사냥이므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란 순결이 강조되고 있다.

가해자의 왜곡된 기억(증언)과 가부장적 체제(부계혈통계승)를 지키려는 가부장의 세력의 독단적인 결정들은 베냐민지파의 멸종, 무고한 야베스-길르앗 주민들의 몰살과 그 지역의 400명의 처녀들에 대한 집단 납치와 강간, 실로에서의 200명의 처녀들의 집단 납치와 강간 등 비극이 비극을 낳는 연속적인 참사를 보여준다. 특별히 성폭력 피해여성들의 희생은 12지파를 근간으로 한 부족연맹체의 체제/조직 유지와 부계혈통의 계승의 가부장적 구조를 존속하기 위해 여성이 사회구성원을 재생산하는 도구로 타자화시킨 대표적인 일화이다. 나이디취(Niditch)는 이 이야기가 ‘하나의 동맹체로 묶인 지파 연합이 연합체로서 어떤 일을 실제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패러디“라고 비판한다.(미주 27)

미주

(미주 25) 트렌트 버틀러, 『사사기』, 조호진 옮김 (WBC 주석 8; 서울: 솔로몬, 2011), 955.
(미주 26) A. Keefe, “Rapes of Women/ Wars of Men,” Semeia 61(1993), 82; Koala Jones-Warsaw,  “Toward a Womanist Hermeneutic: A Reading of Judges 19-21,” in A. Brenner Ed. A Feminist Companion to Judges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3), 178.
(미주 27) S. Niditch, “The ‘Sodomite’ Theme in Judges 19-20: Family, Community, and Social Disintegration.” Catholic Biblical Quarterly 44(1982), 374.

이영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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