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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빛, 처음의 따뜻함을 잃어버렸다영화묵상 | <굿바이, 레닌>
두더지 | 승인 2018.07.06 23:31
평화교회연구소에서 펴내는 [웹진 평:상]의 글을 에큐메니안에도 함께 게재합니다. 연구소의 필진들의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 영화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 , 볼프강 벡커 감독 작품, 121분, 독일, 2003년

올 초 평창 동계올림픽을 지켜보면서, 또 최근 이어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새삼스레 필자의 가슴 한켠을 파고들어 쉽사리 떠나지 않고 있는 명제가 있으니, 바로 ‘한반도는 여전히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만날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애증의 눈빛으로 지켜보던 두 주체가 다시 하나의 공간 속에서 미래에 대한 상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 새삼 감동적이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를 앞두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우리의 실존을 더욱 절감케 한다.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험난한 분단의 세월을 견뎌야 할까? 그리고 마침내 통일의 그 날이 왔을 때 우리는 어떠한 일상을 맞이하게 될까?

필자와 같이 우리의 분단 현실이 서글픈 이들에게, 또 통일 이후 우리가 맞이할 그 날의 아침이 궁금한 이들에게 영화<굿바이, 레닌>을 추천해 본다. 알다시피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의 처지와 비슷하게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고, 반세기만인 1990년 통일을 이루었다. 2003년에 제작된 영화<굿바이, 레닌>은 독일의 통일이 추진되었던 1989-1990년을 배경으로, 격변기를 맞이한 한 가족의 에피소드를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2003년 개봉 당시 독일에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며 국민영화로 등극할 정도였으니, 영화가 당시 사회 분위기와 사람들의 심리를 얼마나 잘 담아내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겠다.

동독의 열렬한 공산당원인 어머니 크리스티아네는 어느 날 아들 알렉스가 시위 중 경찰에게 연행되는 모습을 보고 그만 심장마비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다. 알렉스의 정성스런 간호 때문인지 어머니는 장장 8개월 만에 눈을 뜨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의사가 말하길 어머니의 병환이 심각하여 작은 충격에도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잠들어 있던 지난 8개월 동안 세상은 천지개벽을 했다. 베를린 장벽은 무너져 내렸고, 사회주의 동독은 몰락하여 자본주의 서독에게 흡수통일을 당했다. 이에 동독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는 실업상태에 빠지고, 정신적으로는 밀려드는 서구 문화에 엄청난 혼돈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알렉스 자신도 멘붕일 뿐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면 저마다 혼란스러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열렬한 공산주의자인 어머니가 받을 충격은 어떠하겠는가?

‘지상최대의 거짓말이 시작된다.’라는 본 영화의 카피가 보여주듯 알렉스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를 ‘속이기로’ 결심한다. 알렉스와 가족들은 어떻게 해서든 ‘통일’이 된 사실을 들키지 않게 어머니 주변의 모든 것을 위장하기 시작했다. 이미 사라져 버린 동독의 식료품 병을 쓰레기통 속에서 찾아내어 어머니께 동독의 피클을 맛보게 해드리고, 심지어 텔레비전 뉴스까지 조작하여 동독의 건재함을 알리면서 말이다.

영화는 소위 ‘하얀 거짓말’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있다. 하얀 거짓말은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거짓말을 뜻한다. 어머니를 위해서 어머니를 속이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던 영화는 중반 이후에 놀라운 반전을 등장시키는데, 그것은 어머니 크리스티아네가 실제로 자신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스스로 고백하는 장면이다. 과거 크리스티아네는 남편과 함께 서독으로 망명하고 싶었으나 아들을 위해 동독에 남았고, 오히려 더욱 열렬한 공산주의자인 것처럼 지난 수십 년 동안 위장된 삶을 살아 왔다는 것이다. 아들을 위해 수십 년을 거짓으로 살아온 어머니라니. 이 장면은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분단의 상황이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억압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로를 위해 감췄던 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의 꿈도 소망도 감춰버리는 결과로 작용하고 만다. 분단과 냉전은 이토록 모순적이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종반부로 향하면서 유머러스하고 따뜻했던 영화의 분위기는 점차 냉소적으로 전환된다. 이미 어머니가 세상의 변화를 어느 정도 눈치 챈 상황에서, 자신의 비밀까지 스스로 털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알렉스의 거짓말은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새 알렉스의 눈빛은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하던 처음의 따뜻함을 잃어버렸다. 어머니의 건강을 위한다는 애초의 절실한 목표 대신 어머니를 속이는 상황에 매몰되어버린 것이다. 역설적으로 알렉스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오히려 목표를 이루었다며 미소를 짓는다. ‘주객전도’라는 말로 표현하기엔 참혹하리만치 이상한 이야기 전개가 아닌가?

‘알렉스의 눈빛’을 통해 영화는 여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념대결과 체제선전이 난무했던 분단의 세월 동안, 그 속에서 고통 받았던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서 말이다.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애초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그저 맹목적으로 체제유지에 혈안이 되었던 냉전시대의 슬픈 자화상에 대해서 말이다. 아무리 좋은 사상과 체제도 애초의 목표를 잃어버리는 순간 참혹하리만치 이상한 괴물로 변해버리기 마련이다. 영화가 2003년에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통일 이후 10년 동안 독일 국민들은 점차 온몸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그 동안 저마다 더 좋은 체제라고 선전해왔던 그 실체가, 나아가 통일된 현재의 모습이 실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았음을.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주신 애초의 목적을 잊어버리는 순간, 신앙이 괴물로 변했던 사례들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라 율법주의의 허울을 유지하려는 신앙, 태초의 따뜻함을 잃어버린 신앙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괴물이 되는 것이다.

동계올림픽으로 시작하여, 영화 이야기를 거쳐, 기독교 신앙까지 두서없는 이야기를 이어왔지만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처음의 따뜻함을 잃어버린 모든 것은 거짓말이다. 당신을 위한 거짓말은 없다.”

※ 함께 보면 좋을 영화

<그곳에선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The Invention Of Lying), 릭키 제바이스 감독작품, 99분, 미국, 2009년.

영화<그곳에선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설정 상 영화<굿바이, 레닌>과 유사한 부분이 많은데, 죽음을 앞두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특히 영화는 B급 코메디를 표방하는데도 불구하고 거짓말의 발명과 종교의 탄생을 연결시키며 나름 종교에 관한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두더지  peacechurch20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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