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라포와 케노시스 기독론: 다큐 사진론최병학의 문화로 본 성서: 사진-신학 9
최병학 | 승인 2018.07.07 19:45

1. 표현과 재현의 사진역사(영화사, 미술사): 사실과 감성

사진이 비평적 관심을 받은 때는 1970~80년대였다. 사진의 현상학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사진의 의미와 본성에 관한 분석적인 탐구를 제공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매체의 한계에 초점을 맞추고 미디어에서 사진의 역할에 대한 조사를 지속하며 사진의 윤리적 지식을 육성한 수전 손탁(Susan Sontag), 또한 사진 이미지가 진실하거나, 객관적인 것이 있다는 생각(이는 사진에 관한 전통적인 사유인데), 그리고 사진은 독특한 의미, 문맥-불변의 의미를 수반한다는 생각을 약화시켰던 앨런 세쿨라(Allan Sekula) 등의 비평 전성기는 현재의 디지털-이미지 기술과 이미지-조작 가능성을 통해 전통적인 네거티브-포지티브 과정을 대체하고 매체의 진실성에 대한 의구심을 주장한다.

따라서 외젠 앗제(Eugene Atget), 빌 브란트(Bill Brandt),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등의 사진가들에 의한 사진 이미지들의 초현실적인 측면은 사진 이미지가 특별한 권위, 객관성 혹은 투명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앙드레 바쟁(André Bazin),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 등과는 대조되는 길로 나간다. 사진의 역사는 사실의 객관성과 이미지의 초현실적 감성으로 분화되는 것이다.

영화의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보기에) ‘영화의 아버지’ 뤼미에르 형제(Auguste and Louis Lumière)는 “영화는 현실의 단편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반면, (필자가 보기에) ‘영화의 어머니’ 멜리에스(Georges Méliès)는 “영화란 변신의 기술”이다. 영화 속에서 실제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환상적인 사건을 보여준, 그는 마술사의 제자였다. 뤼미에르가 ‘사실적 사건’을, 멜리에스가 ‘연출된 사건’을 촬영하는데 관심을 보임으로 영화를 보는 두 가지 시선이 등장한 것이다. 사진 역시 이미지의 객관성과 투명성, 그리고 초현실적 측면으로 나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영화의 프레임은 ‘세계를 향한 창문인가, 아니면 이미지로 가득 찬 공간인가’는 현실과 이미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현실을 믿는 감독’과 ‘이미지를 믿는 감독’, 리얼리즘과 구성주의(형식주의), ‘롱 테이크, 시퀀스 숏(쇼트 하나가 시퀀스를 이룰 정도로 긴 숏), 딥 포커스를 통한 미장센’과 ‘몽타주’의 대결, 바쟁(Andre Bazin)과 에이젠슈테인(Sergei Eisenstein)의 영화이론의 대결이다. 연속보다는 불연속을, 연결보다는 대립과 충돌, 인과적 진행보다는 급속한 단절과 비약을 강조하는 몽타주를 선호한 에이젠슈테인과 ‘영화의 눈’(kino-eye)을 통해 인간 시지각의 좁은 시계가 영화 기계의 눈에 의해 확장될 수 있음을 강조한 베르토프(Dziga Vertov)는 영화의 이미지가 현실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다고 한다.

영화가 현실의 내용을 반영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몽타주 기법은 반대하는, 20세기 영화비평사에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영화평론가이자, <카이에 뒤 시네마>의 공동 설립자인 바쟁은 “몽타주를 강조하는 이론가들은 현실세계의 무한한 가변성과 복잡성을 무시하고 몽타주를 통해서 관객에게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며, 리얼리즘 및 작가주의 영화이론을 펼쳐,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1945)나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등과 같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을 극찬하였다.

그러나 리얼리즘 영화가 기반하고 있는 영화의 투명성이라는 명제는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소격효과(alienation effect)’를 영화에 적용하여,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영화라는 매체와 제작 과정 자체에 대한 자기반영성을 보여준 <만사형통>(1972)을 만든 1960년대 프랑스의 누벨 바그(Nouvelle Vague)의 대표주자 고다르(Jean-Luc Godard)에 의해 무너진다. 고다르는 “정치적인 영화는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는데 그쳐서는 안 되며 영화 자체가 ‘정치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고다르는 관객을 현실로, 즉 영화가 만들어져 나온 바로 그 현실로 되돌아가게 하였다.

이러한 고다르를 습득한 세대들인 동시에 할리우드 액션영화와 텔레비전 광고·만화·뮤직비디오 등을 보면서 자란 이미지 세대들이 1980년대에 등장하여 누벨 이마주를 창조하였다. 장 자크 베네(Jean-Jacques Beineix), 뤽 베송(Luc Besson), 레오 카락스(Leos Carax) 등은 아주 기교적인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세트·조명·촬영 등에 매우 인공적인 방법과 장치를 동원하였으며, 주로 실내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색채적인 화려함이나 인물의 내면을 기점으로 사건을 서술하였다. 환상적인 이미지의 부활이었다.

그렇다면, 영화의 프레임은 꼼꼼한 미장센을 통한 사실적 사건들을 보여주는 세계를 향한 창문인가?, 아니면 몽타주를 통한 새로운 이미지의 창조로, 현실을 반영하는 환상적인 이미지로 채워지는 공간인가?, 그 대답은 헤겔(G.W.F. Hegel)의 ‘진리미학’과 칸트(I. Kant)의 ‘형식미학’의 영원한 순환이다.(미주 1) 다시 근원적인 철학적 문제로 ‘재현’과 ‘구성’의 문제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어떻게 재현하고 구성하는가 하는! 따라서 영화의 역사를 표현과 구성으로, 사실적 사건(현실)과 연출적 사건(이미지)으로 나누어 보면 <표1>과 같다.

<표 1> 표현과 구성으로 바라본 영화의 역사: 사실적 사건(현실)과 연출적 사건(이미지)

사진과 회화는 사각형의 틀에서 이루어지는 시각 예술이다. 따라서 (사진은 탄생 과정에서는 문학, 특히 시와 닮은 점이 더 많긴 하지만) 표현과 재현으로 서양 미술사를 읽어도 마찬가지이다.

<표 2> 표현과 재현으로 바라본 서양 미술사

표현이 사실적이라면, 재현은 감성적이다. ‘구석기-고대 그리스-르네상스-신고전주의-사실주의’를 잇는 사실성의 회화는 <라스코 동굴벽화>처럼 사실적 이미지의 표현이다. 반면 ‘신석기-중세-바로크, 로코코-낭만주의-인상주의-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관념성의 회화는 <터키 샤탈휘이크 주신 벽화의 ‘사냥꾼’>처럼 사실성보다는 관념과 상상, 감성의 개입이다. 따라서 사실성 회화의 감성적 대척점이자 총체적인 서양 미술사의 측면에서 보면 변증법적 순환이다. 중요한 것은 사실성에서 관념성, 곧 감성으로의 복귀가 더 급해졌으며 사실주의 이후 더 길어졌다는 사실이다. 목하 감성의 시대가 등장했다.

<라스코 동굴벽화(구석기 작품)>
<터키 샤탈휘이크 주실 벽화 ‘사냥꾼’(신석기 작품)>

 

2. 감성신학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로널드 트럼프(Ronald Trump)의 당선은 많은 분석들이 있겠지만, 쉽게 정리하자면 ‘감성접근’과 ‘이슈파이팅(issue fighting)’을 들 수 있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정서를 정확히 파악한 이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위대한 미국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같은 슬로건(혹은 이슈)으로 기득권 정치를 혐오하는 유권자들의 감정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것은 트럼프가 저술한 책 『회귀의 기술(The Art of the Comeback)』(1997)에도 잘 나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거래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파악해야 한다. 상대방의 정서와 동기를 파악하지 못하면 거래가 이뤄질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 바야흐로 정치는 감성 접근이며 신학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종교감정의 본질을 ‘힘에의 복종’이라고 정의한 종교현상학자 반 델 레에우(van der Leeuw)처럼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종교감정의 기원과 본질에 관해 유아적 무력감의 ‘부모의 권위에 대한 정서적 필요’와 ‘권위에의 복종’으로 이해한다. 만약 『기독교의 본질』에서 포이에르바흐(Ludwig Feuerbach)의 ‘종교는 인간 본질의 투사’로 보는 것에 동의한다면, ‘신학의 본질은 심리학’으로까지 소급될 수 있을 것이며 심리학의 심(心), 마음, 곧 감성으로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사에 있어서 지성주의적 종교에 대한 거부는 그 역사가 길다. 터툴리안은 “예루살렘이 아테네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했으며, 파스칼(Blaise Pascal)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철학자가 아니다.”라고 단정 지었다. 종교의 본질을 “절대 의존의 감정”에서 찾은 19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슐라이에르마허(F. D. E. Schleiermacher)는 지성주의적인 계몽주의 종교관의 종말을 고했다. 헤겔의 주지주의적 종교관을 타파하려했던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는 “진리는 주체성”이라는 말로, 그리고 루돌프 오토(Rudolf Otto)는 “종교에는 합리적 요소와 비합리적 요소가 있는데, 절대 타자 앞에 선 피조물 감정이라는 비합리적 요소야말로 종교의 근원이다.”라고 말하며 기나긴 주지-주의주의의 종교 전쟁에 마침표를 찍는다. 게다가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감정은 종교의 보다 깊은 원천이며 신학적인 신조들은 부차적 산물이다.”라고 말하며 지성주의로 종교가 이해될 때 종교의 참 생명은 사라지고, 인간의 삶과 무관한 사변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종교는 ‘성찬 의례, 토템 의식, 다산과 풍요, 절대 권위에 대한 순종’ 등으로 나타나는 구체적 감정과 살아 있는 경험의 영역이 된다. 목하 감정신학이 시작된 것이다.

철학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데카르트나 칸트가 인간의 육체보다는 정신을, 감정보다는 이성을 떠받들 때, 감정을 인간 본성의 중심에 올려놓은 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는『에티카』(Ethica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 기하학의 방법으로 증명한 윤리학)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다.” 사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좋다, 나쁘다고 느끼는 감정은 뇌와 신경계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생명체는 생존과 안녕을 위해 감정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생물학적 욕구가 만족되었을 때 행복과 기쁨을 느낀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덕의 일차적 기반은 자기 자신을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행복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즉 감정으로부터 도덕이 나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감정에 주목한 것은 인간이란 존재의 생물학적 특성을 잘 포착한 것이다. 철학자들이 외면했던 몸과 욕망, 감정을 인간 본성의 중심에 놓았던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생물학적인 인간의 욕구’로부터 출발해서 ‘다 함께 잘사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의 선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사회 전체의 이익에 연결해주는 우정에 있다.”고 말하는 스피노자의 말은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따라서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최고의 가치가 되는 것이다. 신앙이 죄에 빠진 영혼의 구원을 말하고, 신학이 공동체의 회심의 경험과 연대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 외에 다른 그 무엇이겠는가! 고통을 희망으로 바꾸는 십자가와 부활이야말로 신앙인의 삶을 관통하는 최고의 가치가 될 것이다.

3. 사진은 어떻게 감정을 담을까?: 라포와 다큐사진

사진은 세상을 담아내는 큰 그릇이다. 사진작가 주기중의 말처럼 “사진은 정지 상태의 세계를 담아내지만 시간과 공간을 더불어 품어 내며 우리 삶의 영역을 포함해 그 너머까지 아우른다.” 이를 위해 피사체와 카메라와 작가가 하나인 삼위일체가 되는 순간이 중요할 것이다. 이를 ‘교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사진에서는 ‘피사체와의 대화’를 뜻한다. 마음의 대화를 통해 피사체와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번쩍하고 떠오르는 직관을 순간적으로 담아내는데 브레송은 이를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이라고 한 바 있다. 그 순간을 위해 사진작가는 대상에 참여하며 관찰하는 것이다.

참여 관찰이란 주로 인류학자들이 수행하는 연구 방법으로 피조사자의 생활이나 활동 영역에 참여하여 그들의 삶을 관찰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현지에서 관찰과 연구가 이뤄지기 때문에 세밀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참여 관찰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라포(rapport)의 구축이다. 라포란 ‘조사 대상인 현지인들과 신뢰를 바탕으로 둔 친근한 인간관계’를 뜻한다. 따라서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 조사자가 속해 있던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현지인의 문화와 습속을 존중하여 그 사람들이 경계심을 풀고 벽을 허물도록 반드시 인간적 존중을 쌓아야 한다. 그 가운데 현장에 장기간 체류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포 구축의 대가라면 사진작가 이재갑을 빼 놓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혼혈인들은 물론이고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들, 나아가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을 비롯한 여러 식민의 흔적 등을 사진 속에 담으며 한국 근현대사의 수많은 잊혀진 이야기들을 언어가 아닌 이미지로 기록하는 그는 파주의 한 ‘형님’을 찍는 데 14년 6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사진이 감정을 담기 위해 라포와 다큐를 거쳐야만 했을까? 사진 <이재갑, 1993>은 사진 그 이상을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이재갑, 1993>

사진 속 혼혈인은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또 하나의 한국인’이며 이재갑은 1992년 2월부터 15년간 이들과 라포를 구축하며 다큐 사진을 찍었다. 혼혈인인 이들은 주류 사회로부터의 멸시와 그 때문에 생긴 주류에 대한 불신은 정상/비정상, 순종/잡종, 도덕/부도덕의 이분법과 둘로 나뉜 세상에서 항상 후자로 분류되었다. 둘로 갈려진 세상,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세상, 그 안에 엄연한 현실로 존재하는 불의한 구조를 이재갑은 사진 이미지로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사진으로 역사나 이데올로기 혹은 민족의 이름이나 인권 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구원을 바라는 사람이 있고 공동체와의 연대를 요구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를 통해 ‘소리의 이미지화’가 실현된다. 따라서 이 땅에 치열한 현장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들이 있다. 이상엽, 한금선, 노순택, 정택용, 장영식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여전히 근대의 거대 서사를 붙들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사진에는 ‘가진 자/갖지 못한 자, 소외시키는 자/소외당하는 자’의 이항적 분류가 존재한다. 이들의 사진에는 가변적인 허상 이미지들의 혼종성과 복합성은 삭제된다. 용산 참사 현장과 4대강, 강정 마을에서 밀양 송전탑까지, 그리고 진도 앞바다에서 소외당하는 자와 핍박받는 자와 함께함으로(라포) 사진의 진실한 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때 사진은 다큐를 넘어 감성을 일깨운다.

<이상엽 용산참사-1>
<이상엽 용산참사-2>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상엽은 “사진이야말로, 다른 자기표현 수단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시아인의 감성으로 아시아와 아시아 사람들을 찍어보자는 생각으로 11년 동안 아시아를 발로 찾아 다녔다. 그의 사진 속에 담긴 아시아는 서구의 시각으로 재단된 여느 아시아 사진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큐멘터리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나누는 공간’이라고 말하는 이상엽은 이렇게 절규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점점 인쇄매체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험한 현실을 폭로하는 사진, 고통스런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을 회피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사는 게 바쁘고 고달픈데, 사진까지 고통스러워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죠. 오직 행복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사진만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에게 나오기도 전에 불편한 사진들은 아예 편집과정에서 배제되어 버립니다. 약자의 편에 선 다큐멘터리가 외면당한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한편, 다큐멘터리 사진은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순수예술로서 아트갤러리에 걸릴 것을 요구받는 것입니다. 이런 사진들을 찾는 소수를 위해 아트갤러리에 걸면 사진을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이런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제 남의 고통에 점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미주 2)

따라서 이상엽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 다큐멘터리 사진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용산참사는 그러한 기본을 잘 보여준다. 동시에 다큐 사진에 라포라는 기본이 있다면 기독교 신학에는 성육신이라는 기초가 있다.

4. 라포와 케노시스 기독론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억압된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으로 잠복할 뿐이다. 이러한 잠복된 억압은 에너지를 축적하여 밀도가 심해지고 이렇게 강화된 억압은 화산처럼 의식의 표면으로 폭발한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증상으로 표출되는 이러한 억압은 개인적으로는 ‘강박신경증’으로, 집단적으로는 ‘종교’라는 집단 신경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신경증이 개인 종교라면 종교는 집단 신경증”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의 말을 들어보자.

“형제들은 아버지의 자리에 특수한 동물을 토템으로 세웠다. 이 토템동물은 형제들의 조상이자 수호령신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다치게 하거나 죽여서는 안 되었다. 모듬살이의 남성들은 일 년에 한 번씩 한자리에 모여 의례적인 향연을 벌였는데, 그들은 바로 이 자리에서 토템동물(평소에는 숭배의 대상이던)을 죽이고는 모두 그 고기를 찢어 나누어 먹었다. 모둠살이의 남성이면 어느 누구도 빠질 수 없는 이 향연은 아버지 살해의 의례적인 반복이었다. 바로 여기에서 사회적인 질서, 윤리적인 규범, 그리고 종교가 시작되었다(『인간 모세와 유일신교』).”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세계의 모든 위대한 종교들은 오이디푸스 혁명이 승리한 결과 탄생되었다. 고대종교와 조로아스터교, 힌두교와 불교, 다신교와 모세, 유대교와 기독교, 가톨릭과 개신교 등 부친 종교에 대한 오이디푸스의 반역 승리이자 아들이 아버지가 되는(혹은 동일시되는) 새로운 종교의 탄생인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기독교는 ‘근원적 죄의식(프로이트식으로는 부친살해)’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의 종교’,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기독교는 아들을 통한 신과의 화해, 부친과의 화해를 주장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핵심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화해, 하나님에게 저질렀던 죄업을 예수를 통해 속죄 보상하는 행위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의 기독교는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고 원죄를 씻어주는 예수를 구세주요, 해방자로 고백한다. 케노시스 기독론은 그 선포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빌립보서 2:5~8).”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고백록』에서 “기독교에는 플라톤 철학에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육신”이라고 말한바와 같이, 유대교가 부친살해의 억압된 기억에 근거한 부친의 종교라면 기독교는 이를 인정하면서 부친과의 화해를 말한다. 그리고 그 화해의 다큐는 라포인 케노시스인 것이다. 유대교의 부유하는 해석학적 기표를 성육신의 기의로 종결지은 성육신 사건은 프로이트가 유대교를 발생학적 오이디푸스 반역에서 해석한 것과는 달리, 기독교에는 헤겔식의 목적론적 화해로 신이 인간이 되신 사건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리쾨르(Paul Ricoeur)의 말처럼 프로이트의 해석학이 과거를 향하는 고고학(archeology)이라면, 기독교는 헤겔식으로 미래를 향하는 목적론(teleology)이 되는 것이다.

헤겔은 종교철학 강의에서 그리스 종교와 로마 종교를 각기 ‘미의 종교’와 ‘유용성의 종교’로 지칭한 반면, 유대교를 ‘장엄의 종교’로 규정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기독교는 유용성의 장엄을 넘어 사랑을 통해 미를 구현하는 ‘구원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의 놀라운 의미를 깨닫고 다큐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과 라포를 형성하는 것, 이를 위해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것! 이것이 진정 신앙의 길이자 다큐 사진의 길인 것도 깨달을 것이다.

<2016년 11월 5일 부산역에서 서면까지 두 딸과 행진하며>

미주

(미주 1) 플라톤에 의하면 철학과 예술은 적대적이다. 그러나 “시(詩)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는 역사보다 보편적인 것으로 보편적 지식인 철학에 가깝다.”라는 말로 예술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제 위치를 찾는다. 다만 “시가 허구를 통해 진리를 말한다.”고 예술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미학(aesthetics)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18세기 독일의 바움가르텐은 이러한 맥락에서 미학을 ‘저급한 인식의 학’으로 규정하지만, 헤겔에 이르러 ‘미는 이념의 감각적 현현’으로 규정함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19세기까지 서구 미학의 ‘진리미학’을 구축한다. 정리하자면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진리미학은 본질적으로 예술적 고전주의를 대표한다. 예술에 인식적(眞,) 윤리적(善) 가치를 부여하기를 거부하며 예술 고유의 미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미학의 흐름이 있다. 바로 칸트의 미학이다. 그의 미학 이론에 따르면 예술은 개념적 규정의 구애를 받지 않는 ‘순수형식 요소’와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가 된다. 따라서 고전주의의 진리미학의 대립물로 시작한 칸트의 미학은 18, 19세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예술적 실천의 영역에서 자기를 관철하기 시작하다가, 20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주도적인 미적 관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오늘날 예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칸트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낭만주의적 관념의 영향 아래 고전주의적 진리미학에 대항하며 등장한 이 미학을 ‘형식미학’이라 부른다. 따라서 미학의 역사(근대에 국한되지만, 이를 넘어 보편성을 가질 것인데)는 ‘고전주의적 진리미학’과 ‘낭만주의적 형식미학’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미주 2) 다큐멘터리 사진을 처음 찍은 사람은 프랑스의 사진작사 외젠 앗제이다. 그는 파리 시의 모습을 그대로 찍어 화가들에게 팔던 사람이었다. 이처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 왔던 다큐멘터리 사진은 현대에 와서는 폭로와 고발의 주된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나누었던 다큐멘터리는 점차 사양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넘은 관념적 이미지의 등장은 사진사의 변증법적 발전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씁쓸한 발전이 되는 것이다.

최병학  hak-9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병학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55(충정로 2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 생명의집 204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8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