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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학자가 기억하는 죽재 서남동 목사내가 만난 서남동 목사 ㉒
최만자 | 승인 2018.07.08 21:49

죽재 서남동 목사님과 나의 인연은 내가 1962년 3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목사님께서 1961년 9월에 연대 신과대학 교수로 오셨으니 내가 입학하기 반년 전에 이미 목사님은 거기 계셨다. 학부시절 1, 2년 동안은 목사님 강의를 수강하지 않았고 목사님께서 교목실을 맡으셨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래서 개인적으로 별로 가깝게 뵙지 못했다. 학년이 차츰 높아지면서 목사님 강의를 수강도 하고 신과대학 사무실을 들락거릴 때 자주 뵙기도 하였다. 늘 인자하신 귀공자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제자들을 참 따뜻한 시선으로 늘 대하셨고 우리들의 인격을 존중하는 그 태도에 존경과 신뢰의 마음이 깊어졌다.

사실 그 때 ‘연세 신학은 신신학이다‘라는 소리를 나는 많이 들었다. 아직 설익은 사과 같았던 그때의 나는 그 말들의 함의를 깊이 깨닫지 못하였다. 소위 스스로를 정통신학, 정통을 이어받은 그리스도인이라 자칭하는 교회들이 연세신학을 비난하듯 그렇게 말한다는 느낌은 크게 가졌었다. 역사비평적 성서해석, 구약성서의 문서설 등을 배우면서 이런 내용들을 신신학이라 하는가보다 하고 그야말로 신학 초년병인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중에도 서남동 목사님은 ’한국 신학의 안테나‘라고 불렸고 세계의 다양한 새로운 신학 이론을 직수입한다고들 입들을 모았다. 그러나 나는 당시 폴 틸리히의 문화신학과 떼야르 드 샤르뎅의 과학신학을 제자들에게 이해시키려 온 몸으로 설명하시는 목사님의 열정적 강의에 존경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분이 소위 수입했다는 새로운 신학에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었었다.

세계 신학의 새로운 흐름에 이토록 민감하셨던 서 목사님의 신학을 김경재 교수는 ‘레디칼 신학’이라 이름 하는데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새롭게 대두된 신학은 언제나 기존 사고의 뿌리부터 재검토하여 급진적 논리로 발전시키기 때문이며 따라서 서 목사님의 신학은 언제나 현재의 신학적 사고에 대한 반성에 철저하고 그 극복을 위한 새로운 신학적 도전에 또한 철저하였기 때문인 것임을 깊이 깨닫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신학적 사고의 태도를 서남동 목사님으로부터 배웠고 이를 따르려 많이 노력한다.

언제인가 기억나지 않지만 한번은 목사님과 함께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준비모임인 듯한 모임에 같이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서 목사님은 민중신학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너무나 솔직하게 고백하셨다. 서 목사님이 어느 국제모임에 갔을 때 외국신학자들로부터 한국의 민중신학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자신이 잘 몰라 답을 못했고 한국에 돌아와 불철주야 민중신학을 배웠고 몰입하게 되었다면서 당시 부끄러웠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셨다. “아, 서 목사님이 이렇게 민중신학을 시작하시게 되었구나.”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민중을 성서적으로 통전하여 새롭게 읽음으로서 성서 민중과 우리자리의 민중인 ‘두 이야기의 합류’와 거기에 꼭 동원되어야 할 ‘사회과학적 성서해석 방법론’을 필수로 주장하셨다. 그래서 ‘한의 신학’, ‘민담신학’ 등 민중을 중심으로 한 신학을 발전 확장시켰다. 나에게 목사님의 민중신학적 해석의 첫 기억은 어느 날 강의 시간에 그림 하나를 소개하였는데 노동자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그 위에 성직자들과 지배자들이 유유히 올라타고 앉아 있는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나에게 충격 자체였다.

이번 탄생 100주년 기념에 준비된 걸게 그림에 쓰인 글 “복음은 원래 가난한 자들의 복음이었던 것이 부자들의 복음으로 변해버렸다...”는 것과도 연상된다. 성서를 가난한 자, 약자의 시선으로 읽고 따라야 하는 민중신학을 깊이 알기 위해 나도 열심히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내 신학의 민중신학적 지평을 넓혔다. 동시에 레디칼 신학인 민중신학적 사고와 삶을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나는 1980년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창립 이후 발전하여 온 여성신학에 몰두하면서 서남동 목사님의 민중신학이 여성신학적 관점과는 연결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가졌다. 그런데 1992년 한국신학연구소에서 펴낸 죽재 서남동 목사 기념 논문집에 ‘죽재의 두 이야기의 합류의 여성신학적 적용’이란 논문을 쓰게 되면서 그 연결의 시작점을 만들게 되었다. 이 책에는 나와 함께 김윤옥의 ‘서남동의 생태학적 여성신학’과 이현숙의 ‘분단 후 민중여성의 고난과 한국교회 여성운동’이라는 두 글들이 실리게 되어 ‘서남동과 여성신학’이란 주제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한국민중신학은 1970년대 독재정권과 경제개발 자본 논리에 착취, 억압당하던 노동자들의 경험에 눈뜬 신학자들의 인식전환으로 출현하였고 여성신학은 서구로부터 영향을 받아 한국교회여성들이 교회와 사회의 성차별과 억압경험들을 드러낼 신학적 도구를 얻어 발전하게 되었다. 두 신학이 각각 민중과 여성의 구체적 현실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신학이라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지만 그럼에도 상호 비판적 논점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민중신학이 여성의 경험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여성신학의 비판을 넘어설 수 없다. 여러 민중 신학자들이 여성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갖지 못하고 있음이다. 죽재 또한 ‘석문전설’, YH 노조 ‘김경숙의 한’ 등 여성의 한을 중심으로 민중의 한을 사회경제사적으로 풀어내지만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분석과 비판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죽재의 민중신학이 여성신학적 인식에 공헌하는 것은 ‘우리가 텍스트이고, 성서는 전거다’라는 역동적 관점이다. 성서가 절대불변의 규범적 경전으로 권위를 가진다면 여성해방의 근거를 성서에서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서가 그것을 읽는 사람의 변화, 살림, 해방을 필요로 하는 지금의 상황에 변화의 힘으로 작용할 때 성서가 권위를 가진다는 서 목사님의 성령론적-공시적 해석은 여성해방을 요청하는 모든 상황에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죽재 서남동 목사님은 전통적 성서 읽기를 넘어서서 한국적, 민중적 신학을 모색하였고 그 모색의 방향을 여성신학도 충분히 수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음이 큰 공헌이 된다.

이제 목사님 탄생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민중을 중심으로 민중을 주제로 하셨던 목사님의 신학을 다시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되짚어 보는 때 죽재의 신학을 여성신학적 영역으로 확대시키는 일이 나의 한 과제라는 생각을 한다.

목사님 생전에 베푸셨던 후학에 대한 열정과 약자에 대한 깊은 연민과 불의에 대한 저항과 온 생명, 온 만물에 대한 큰 사랑을 생생히 기억하기에 오늘 여기 계시지 않음이 더욱 아쉽다. 개인적으로 나의 결혼식 주례를 서 주셨던 사랑하는 목사님을 더욱 더 그리워한다.

최만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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