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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을 알고 모욕을 당하면” - 知其榮守其辱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28
이병일 | 승인 2018.07.16 18:36
“수컷을 알고 암컷을 지키면(머무르면) 천하의 (물이 모여 흐르는) 시내가 된다. 천하의 시내가 되면 항상 덕이 떠나지 않아 갓난아기로 돌아간다. 흼(밝음)을 알고 검음(어두움)을 지키면 천하의 법(규범, 본)이 된다. 천하의 법이 되면 항상 덕에 어긋남 없이 다함 없음으로 돌아간다. 영화로움을 알고 욕됨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항상 덕이 곧 충만하여 통나무 상태로 돌아가고, 통나무가 쪼개져서 그릇이 된다. 성인이 그것을 쓰면 벼슬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러므로 큰 다스림은 나뉘지 않는다(끝나지 않는다).”
- 노자, 『도덕경』, 28장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于(於)嬰兒.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于(於)無極.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于(於)樸.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수컷은 강하지만 암컷이 없으면 새끼를 낳을 수 없습니다. 암컷은 유순하고 고요하지만 능히 수컷을 찾아오게 합니다. 그러므로 강한 나라를 알되 약한 나라를 버리지 않고 지키면 다스림의 덕이 넘쳐 아기와 같이 서로 해치지 않습니다.

흑백은 명분이 바르지 못한 것과 바른 것을 뜻합니다. 예법을 기준으로 명분이 바름을 알되 바르지 않은 것을 벌주지 않으면 천하가 의지하는 기준이 됩니다. 이렇게 정치를 하면 덕이 막히지 않아 끝이 없습니다.

ⓒGetty Image

국가나 사직이 번영하는 것을 영화롭다고 말하고 사직이 망하는 것은 욕된 일입니다. 영화로움을 알지만 나라가 망하는 욕됨을 받아들이면 천하가 모두 돌아가는 계곡이 됩니다. 사직을 지키기 위해 백성을 전쟁터로 보내지 않고 오히려 사직의 욕됨을 받아들일 때 백성이 모두 모여들 것입니다. 그래서 천하의 물이 모여드는 계곡이 됩니다.

강약, 흑백, 영욕은 인간과 사회의 조화와 혼란을 의미합니다. 국가나 사람에게는 강과 약, 흑과 백, 영화로움과 욕됨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성인은 약함과 흑(예법에 어긋남)과 욕됨을 지켜주고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두의 우두머리가 되어 보살핍니다. 나무를 가지고 크게 집을 지을 때에는 함부로 나무를 자르지 않습니다. 그래야 큰 집을 지을 수 있듯이 이 길이 천하를 얻는 길입니다.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어 튼실한 꽃은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을 절반으로 줄이며
떨어져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
그렇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 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 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 도종환의 “민들레 뿌리”

영화로움을 알고 욕됨을 지킨다는 말은 영광을 알고 모욕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궁극적인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예수님의 길을 함께 걷는 것입니다. 수치와 욕됨을 감수하는 것은 영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 고난을 감수하며 수모와 핍박을 견디겠다는 정신입니다.

그러한 사람만이 하나의 계곡을 이룰 수 있고 비로소 통나무 같이 소박한 정신으로 돌아갑니다. 통나무는 쪼개져 그릇이 됩니다. 그릇은 하나의 제도일 수도 있고, 하나의 개체적 인격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근본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세상으로 보냄 받은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죽임의 현실에서 모두가 함께 해방될 수 있는 길은 그 현실적 모욕을 견디며 영광의 꿈을 품는 사람들이 걸어갈 수 있습니다. 노자가 말하는 성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고 그 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과 같기 때문입니다.

“고향에서 어쩔 수 없이 기피인물이 되고 달갑지 않은 존재로 배척당한 예수님은 그렇다고 해서 자기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칩니다. 더 적극적으로 이제는 전에 함께 하자고 뽑은 열둘을 세상으로 보냅니다. 마가는 그들이 보내진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세례자 요한의 죽음으로 보여줍니다. 열둘이 활동한 공간과 시간은 의로운 예언자가 죽임을 당하는 현실입니다. 죽이는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이면서 의로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 사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는 운명의 동일시로 묶여집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은 모두 동일한 예언자의 운명을 맞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자기의 생명과 권력을 연장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수많은 예언자들이 권력자들에 의해서 탄압과 죽임을 당했습니다. 의를 위한 죽음과 안타까운 죽음은 그 자체가 다른 생명을 위한 봉헌이고 대속입니다. 누군가의 그러한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은 다른 생명으로 자기의 생명을 연장합니다. 우리는 자기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언제나 죽임의 밥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를 위해 희생한 그 생명들에 감사하거나 나만을 위해 산다면 그 밥상은 말 그대로 죽임의 밥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죽임의 밥상을 살림의 밥상으로 바꾸는 일은 내가 나를 위해서만 생명을 희생하지 않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들이 나를 위해서 살았던 것처럼 다른 사람 다른 생명들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몫을 가지고 세상에 보내지듯이 항상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열둘을 따로 선택한 목적이 바로 그 일을 함께 하고 앞으로도 그 일을 위해 보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선포와 귀신축출과 치유는 예수님이 도래를 선포한 하느님 나라를 몸으로 실천하는 일입니다. 열둘의 활동은 예수님이 하던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공간과 시간 속으로 보내지는 목적은 생명을 살리는 일과 건강하게 하는 일, 삶의 의미를 제대로 누릴 수 있게 하는 일을 위한 것입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죽임의 생일잔치” 중에서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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