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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운동가로서의 라가츠라가츠의 생애 제3기(1921~1945)
류장현 | 승인 2018.07.19 14:54

라가츠의 교수직 사퇴는 목사로서 교회에 봉사해야 하는 일과 자신의 신념 사이의 갈등 표출이었다. 그는 이 갈등을 교수직을 사퇴함으로써 해결했다.(미주 57) 라가츠는 교회와 신학교에서는 자신이 사명이라고 확신하는 임무를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미주 58) 그래서 교수직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교수직 포기를 의식적인 물질적 생활 터전의 포기, 노동계급과의 연대, 그리고 자신의 메시지를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미주 59)

라가츠 평화운동에 대한 오해

라가츠가 교수직을 사퇴하고 1945년에 영면할 때까지 제3기에 해당하는 기간은, 평화를 위한 투쟁과 성서연구에 몰두했던 시기이다. 그의 평화를 위한 투쟁은 구체적으로 국제연맹 가입 운동, 군비철폐 투쟁, 파시즘과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투쟁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K. 바르트를 비롯한 변증법적 신학자들로부터 하나님의 메시지를 이데올로기화 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타당치 않았고 사태의 내적 연관성을 오해한 것이었다.”(미주 60) 이것은 라가츠와 ‘국제민간봉사단’의 모태인 ‘국제화해연맹’과의 관계에서 정확히 드러난다.

▲ 스위스 사회민주주의당 당기 ⓒGetty Image

이 연맹에서 라가츠는 복음을 추상적인 평화와 사회적 도식으로 환원시키고 이념화하는 신학적 적대자들 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라가츠는 이 연맹의 기본 자세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과 복음적 가난이 사회적 변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혁명의 원동력이라는 인식, 폭력에 대해 반대할 것을 주장했다.(미주 61) 이런 주장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라가츠는 결코 복음을 이데올로기화하지 않았다.

라가츠와 그의 친구들은 국제연맹 가입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사회민주당은 국제연맹을 자본주의적 승리자들의 연맹으로 규정하고 국제연맹 가입을 반대했다.(미주 62) 라가츠의 국제연맹 가입 주장은 그의 평화에 대한 개념, 역사신학적 전제, 마르크시즘과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 속에서 규명되어야 한다.

실제로 국제연맹 가입 문제에 대한 대립의 배후에는, 라가츠와 당시 사회민주주의의 대표적 지도자 간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론투쟁이 있었다.(미주 63) 라가츠는 윌슨의 주장은 비사회주의적인 민주주의요, 레닌의 사회주의는 비민주적인 사회주의라고 양자를 비판했을 뿐 만 아니라, 국제정치를 통한 평화추구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미주 64)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가츠가 국제연맹 가입을 주장한 것은 이 연맹이 국제적 · 비폭력적 · 법질서의 시작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라가츠의 군비철폐 투쟁의 의미

라가츠는 스위스 사회민주당이 군대의 필요성과 군복무 제안을 결의했을 때 이들과 결연히 투쟁하였다. 그는 군복무제를 전 “국민정신의 군사화”요 “거짓 평화주의”인 군국주의로의 이행으로 규정하고, 군비철폐를 주장했다.(미주 65) 라가츠는 이 투쟁을 자신의 고유한 사명으로 인식했다.(미주 66)

이같은 라가츠의 군비철폐 주장은 점증하는 히틀러의 파시즘 앞에서 백기를 드는 스위스의 무장해제나 톨스토이식의 무조건적인 비폭력의 주장은 아니었다. 즉 스위스가 부르조아적인 군사적 애국심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며, 나치에 대항하여 유럽에서 진정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개 나라의 힘이 아닌 범국가적인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미주 67) 따라서 라가츠의 군비철폐 주장은 단순히 비폭력 평화운동의 차원만이 아니라, 자국 내에서 군국주의화 되어가는 부르조아에 대한 투쟁이요 국제적 연대성을 통한 집단적 방어를 위한 정치적 행동이었다.

라가츠는 스위스 사회민주당이 군복무 제안을 가결하였을 때, 이에 반대하여 1935년에 사회민주당을 탈당하였다. 사실 라가츠가 스위스 사회민주당에 가입한 것은 ‘블룸하르트’처럼 ‘정당’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 사회민주당이 대변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편에 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라가츠가 사회민주당에서 탈당 한것도 부르조아적 군국주의에 대한 거부였던 것이지 사회주의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라가츠는 일찍이 파시즘과 나치즘의 위험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파시즘을 부 르조아적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을 억압하기 위하여 형성한 폭력집단으로, 나치즘을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규정했으며, 이들의 동일성을 인식했다. 1930년 11월 국제종교사회주의 연맹은 제3차 대회에서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선언문을 유럽의 기독교에 배포했다.

“민족주의는 민족적 · 인종적 · 자기 우상화의 광신적 종교가 되었다. 이 종교는 본질상 그리스도와는 전혀 무관하며, 모든 민족이 한 하나님과 한 아버지로부터 극단적으로 사악한 형태의 수많은 이교적 민족신들로 되돌아가, 결국 몰록신의 악마적 제의로 타락하게 되었다.”(미주 68)

이 선언문은 라가츠가 작성한 것인데 바르멘 선언의 첫 부분과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바르멘 선언이 1934년에 나온 것을 고려해 볼 때, 정치적 사건에 대한 종교사회주의자들의 선구적 기능을 다시 한번 입증한 것이었다. 라가츠는 ‘새로운 길들’(Neue Wegen)을 통해서 나치즘에 대항했으며 나치즘의 멸망을 예견했다. 또한 1933년 5월 국제종교사회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나치의 십자가’라는  선언문을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그들은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는 심판을 받아야 하며 나치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항하여 적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규정했다.(미주 69)

성서를 민중에게로

라가츠는 그의 말년에 성서연구에 몰두했다. 그의 성서연구는 교회의 강단에서 혹은 신학교의 강의실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우서실’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라가츠에게 있어서 성서는 민중의 책이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강한 자와 지배자들에게는 대항하시고, 약하고 억눌린 자는 용납하신다는 진술이다.(미주 70)

그러므로 “성서를 적들의 손에서 돌려받아” 민중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미주 71) 또한 하나님 나라의 투쟁의 역사로서의 “혁명적 성격”을 드러내야 한다. 이 두 요소, 즉 성서의 혁명적 성격과 민중적 성격을 찾아내는 것이 라가츠의 성서해석의 목적이다.

라가츠의 성서해설을 바르트가 ‘교회교의학’을 저술한 당시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또한 라가츠는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을 큰 관심을 가지고 읽었는데 특히 ‘교회교의학’ Ⅱ/2권 이후에 바르트의 신학의 전환을 인식하고 바르트가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이것은 20세기의 위대한 두 신학자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미주 72)

1948년 12월 6일 마침내 위대한 예언자의 외침은 침묵했다. 그가 죽은 후, 종교 사회주의 운동은 서구지향적인 사람과 동구지향적인 사람으로 분열되었다. 그러나 라가츠의 사상은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곳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미주

(미주 57) A. Lindt, s. 90.
(미주 58) 위의 책, 우리는 라가츠가 하이젠베르크 시절에 교회를 떠나 2년 간 고등학교 교사로서 생활했던 것을 기억한다. 라가츠의 교회에 대한 회의는 그의 첫 목회지에서 이미 싹텄다.
(미주 59) 위의 책, s. 91. 각주 35를 참조하라.
(미주 60) E. 부에스/M. 마트뮐러, 앞의 책, s. 191.
(미주 61) 위의 책, s. 191. 또는 s. 193.
(미주 62) 위의 책, s. 201.
(미주 63) 위의 책, ss. 201-202.
(미주 64) M. Mattmüller., Leonhard Ragaz und der Religiöse Sodzialismus. Ein Biographie, Bd. Ⅱ: ein Zeit des Ersten Weltkrieges und der Revolutionen (Zürich, 1968), s. 498. (이하 M.     Mattmüller, Bd.Ⅱ.라고 쓴다.)
(미주 65) A. Lindt, ss. 96~97.
(미주 66) 위의 책, 같은 곳.
(미주 67) E. 부에스/M. 마트뮐러, 앞의 책, s. 203.
(미주 68) 위의 책, s. 208.
(미주 69) 위의 책, s. 209-212.
(미주 70) 위의 책, s. 231, 또는 s. 236.
(미주 71) 위의 책, 또는 s. 230.
(미주 72) 위의 책, ss. 240~241.

류장현  jena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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