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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내가 당신 생명의 은인이야!”자연의 소리를 겸손히 듣게 하는 삶의 도장
박철 | 승인 2018.07.20 21:55

밤늦은 시간까지 아내와 텐트 안에서 속닥속닥 얘기를 나누었다. 33년 전 일이니 그때 아내와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노래를 많이 불렀던 것 같다. 아내 노래 레퍼토리는 다양했다. 뽕짝, 흘러간 노래, 팝송, 운동가요 등등…. 주로 아내가 노래를 부르면 나는 듣는 편이었다.

텐트 밖은 어둠뿐이었고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손바닥만 한 트랜지스터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며 음악방송을 찾는다. 소리가 잘 나오는가 싶으면 금새 ‘지지직~’거려 들을 수가 없었다. 텐트 안에 켜놓은 촛불이 따뜻하다. 기분이 삼삼해 진다. 누운 채로 아내와 소곤거리며 얘기를 나누다가 스르르 잠이 밀려온다. 조용하다. 계곡 물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여보! 자요?”
“…아니.”
“당신은?”
“나도.”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아내는 추운지 곰처럼 웅크린 채 자고 있다. 시계를 보니 아침 8시가 지났다. 이른 아침 시간인데도 매미가 쩌렁쩌렁 울어댄다. 텐트 밖으로 나와 간단히 맨손체조를 했다. 축령산 중간허리까지 물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다.

어제 먹은 게 부실해서인가 아침부터 시장기가 돈다. 텐트 안에서 곤히 자는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무슨 마누라가 늦잠을 자느라 남편 아침밥도 안 주냐? 배고파 죽겠는데….”
“산에 까지 와서 부지런을 떨고 그래요? 캠핑 와서까지 하루 3끼를 꼬박 해먹어야 해요? 밥하기 귀찮은데 오늘 아침은 라면을 끓여 먹는 게 어때요?”
“라면? 좋지!”

그런데 하필이면 라면이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준비물 목록에는 라면이 적혀 있는데 빠트린 것이다. 하는 수없이 내가 아랫동네 구멍가게 까지 걸어가서 사오기로 했다. 아내는 텐트에서 좀 더 자라고 남겨두고 나 혼자 터벅터벅 걸어서 라면을 사러 버스 종점인 동네 구멍가게 까지 내려갔다. 그런데 계곡을 가로질러 건널 때부터 ‘후두둑’하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구멍가게에 가서 라면과 필요한 물품을 사가지고 돌아오는데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텐트에 도착해서 석유버너에 불을 붙이고 라면을 끓여 텐트 안에서 먹었다. 맛이 기가 막혔다. 텐트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낭만적으로 들린다.

비가 오니까 오늘은 텐트 안에서 지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심심하면 화투놀이를 할 생각으로 화투도 준비해 왔다. 그 넓은 축령산 계곡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라면을 먹고 아내와 나는 그 시절 유행하는 ‘바위섬’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물에 못 들어가서 그렇지 기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어제 축령산 계곡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지냈으니 앞으로 휴가가 이틀이 더 남아 있었다. 한참 텐트 안에서 떠들고 노는데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더 요란해진다. 조금 걱정이 되어 밖으로 나와 보니 장대같은 비가 쏟아진다. 우리가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기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 사이 계곡물이 많이 불어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불과 10분에서 20분 사이였다. 계곡 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아무래도 철수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았다. 어느새 물이 텐트를 친 곳 까지 불어 올랐다. 맑았던 물이 흙탕물로 변했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내는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이었다.

텐트를 제대로 접지도 못하고 둘둘 말았다. 대충 짐을 꾸리고 우선 높은 곳으로 대피했다. 우리가 피한 쪽은 축령산 자락이었고 숲이 우거지고 급경사여서 더 이상 올라갈 수도 없었다. 계곡물을 건너야 집으로 갈 수 있는데 물이 불어나 건너기에는 매우 위험했다. 우리가 지금 위급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빨리 결단을 내려야했다.

나는 용기를 내서 계곡을 건너기로 했다. 일단 짐을 머리에 이고 계곡을 건넜다. 가장 물살이 약한 곳을 택해서 건너는데 물이 허리까지 차오른다. 몸의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지만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짐을 계곡 반대편에 내려놓고 다시 빈 몸으로 계곡을 건너는데 다행이 빗줄기가 약해졌다. 비를 온몸으로 맞고 있던 아내는 겁에 질려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아내를 안심시켰다.

“여보! 걱정 말아. 나만 믿어. 조금 위험하지만 건널만해. 내가 당신을 업고 건널 테니 당신은 기도해. 조금도 걱정 할 것 없어!”

나는 키가 크고 아내는 작은 편이라 내가 아내를 업고 건너는 것이 더 안전할 것 같았다. 한발 한발 중심을 잡으며 다시 계곡을 건넜다. 그때처럼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던 순간이 있었을까? 나도 모르게 무사히 건널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계곡을 건너 아내를 땅에 내려놓자 아내가 막 운다.

여름휴가는 산산조각이 났지만 목숨은 구한 것이다. 옷도 다 젖어서 생쥐가 물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고 서울 잠실 신혼집까지 돌아왔다. 바로 그날부터 비가 잠시도 쉬지 않고 쏟아졌다. 태풍이 우리나라 전 지역을 할퀴고 지나갔다. 한강이 범람하여 마포일대가 물난리가 났다. 그해 북한에서 남한의 수재민들을 위해 쌀을 보내기까지 했었다.

나는 아내에게 내가 생명의 은인임을 강조했다. 그때가 33년 전, 아내와 결혼한 해였고 여름 첫 휴가였다. 아내와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름휴가는 인적이 드문 산이나 계곡을 찾아 야영을 했다. 아이들도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여 셋으로 늘어났고 텐트도 처음에는 2-3인용 작은 것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대형텐트로 바꾸었다.

야영을 하다보면 가족 구성원끼리 더욱 결속하게 된다. 밥을 짓는 일이나 설거지하는 일도 분담해서 한다. 아이들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내가 시켜서 압력솥으로 밥을 짓고 설거지하는 일도 군말 없이 척척 한다. 휴가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어떻게 다 자란 아이들과 야영이 가능할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여름휴가 때마다 야영을 했기에 가능한 것 같다. 바쁘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미안한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는 여름휴가는 열심히 사는 것만큼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는 여행은 내게 많은 의미를 가져다준다. 삶은 장난이 아니다. 엄숙하고 진지하고 신성한 것이다. 야영생활은 내가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또 다른 삶의 모색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지금도 나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내의 작은 몸에서 새로운 생명을 셋이나 지금까지 낳아 길렀으니 최고의 보상이 아니겠는가?

야영(Camping)은 내 몸을 자연에 맡기고 자연의 소리를 겸손히 듣게 하는 삶의 도장(道場)이다. 그 기쁨은 그 무엇에도 비할 수가 없다. 나의 아이들이 일년에 한번 야영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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