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교회운동이 시작된 지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민중교회운동은 고난당하는 민중들과 함께 시대의 격랑을 헤쳐 나오며 한국교회와 기독교사회운동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그 존재 자체가 가물가물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싶을 정도로 지쳐 있다. 신학의 빈곤과 변화되는 현실에 대응하는 선교전략의 부재로 심각한 자기정체성과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가물가물…

물론 개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새로운 선교지평을 훌륭하게 열어내기도 했고, 각 지역마다 헌신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지역운동과 사회운동에 크게 공헌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민중교회운동이란 관점에서, 그리고 민중신학과 민중교회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각 영역별, 각 지역별로 분산 고립된 가운데 스스로 심겨져서 각자도생(各自圖生)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그나마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각 부문별로 지대한 역할을 해낸 면도 있지만, 여전히 역력한 피로감과 불임(?)에 가까운 재생산구조와 식어가는 열정에 더하여 열악한 재정상황 등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생존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마치 갈멜산에서 승리한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쫓겨서 로뎀나무 아래에서(왕상19:1~4) 지쳐 늘어져 있는 것처럼, 지금 민중교회운동의 처지가 그러하다 하겠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먼저 서남동과 안병무의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교회론을 다시 짚어보면서 그동안 민중교회운동의 신학적 빈곤과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민중신학과 민중교회론을 재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지금 여기’ 현장의 교회

서남동은 성령의 교회, 즉 민중의 교회란 민중의 현실과 연대하고 있는 ‘현장의 교회’로서 자연히 민중의 민담과 이야기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가톨릭교회가 성전의 종교이고, 프로테스탄트교회가 성서의 종교라면, 민중의 교회는 민담과 이야기의 교회이다. 종교개혁이 성전과 교회조직의 껍질을 벗겨내고 성서를 찾아냈다면, 민중의 교회는 성서와 신학의 껍질을 벗겨내고 예수와 민중의 이야기를 찾아내야 한다.”(미주 1)

▲ 지난 7월16일 <죽재 서남동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광주 YMCA에서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윤병희

성령론적‧공시적 해석(미주 2)은 언제나 ‘지금 여기’이기 때문에 그 해석의 매체는 그 시대의 언어, 곧 오늘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성령의 교회, 민중의 교회 관점에서 오늘날 교회 현실을 들여다보면 교회의 모순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교회는 어떠한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볼 줄 모르는 교회지도자들, 정치 경제의 제도적 모순과 상관없는 관념론적 신학, 기업과 경영능력으로 변질된 교회성장, 수구적폐의 보루가 되어버린 교회, 모든 사회적 불의를 알면서도 교회조직의 존속을 위해 말 못하는 교권,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실정인 것 같다.”

따라서 민중의 교회는 민중의 한(恨)을 풀어주고 위로하는 교회, 그리하여 한(恨)으로 인한 폭력적 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교회이다. 서남동은 민중의 교회가 한(恨)을 풀어주는 ‘한(恨)의 사제’가 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민중의 교회는 세상의 한복판에서 민중의 삶과 연대하는 현장성을 회복해야 하며,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오늘의 사회적 현실 한 가운데 현재화‧구체화‧사건화 하는 증언공동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미주 3)

그가 꿈꾸었던 민중의 교회 형태를 한국교회 초기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구한말 서양으로부터 전래된 한국교회는 민족의 역사현실과 호흡을 함께하며 민족의 개화와 반봉건운동, 민족운동에 앞장섰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초기 한국교회의 선교는 사회변혁운동과 결코 유리되지 않았다. 그 단면을 아래 이야기에서 초기 한국교회의 반봉건 개혁운동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새로 난 북도 군수 중에 어떤 유세력한 양반 한 분이 말하되,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 수 없으니, 영남 고을로 옮겨 달란다니 어찌하여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 수 없나뇨. 우리 교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도다. 교를 참 믿는 사람은 어찌 추호나 그른 일을 행하며 관장의 영을 거역하리요. 그러나 관장이 만약 무단히 백성의 재물을 뺏을 지경이면 그것은 용이히 빼앗기지 아닐 터이니, 그 양반의 갈 수 없다는 말이 이 까닭인 듯.”(미주 4)

지방 관리들은 예수교인들이 많은 고을에서 함부로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고을에 임명되는 것을 꺼려했다는 이야기이다. 뿐만 아니라 재판을 하던 법정에 교회의 집사의 증언을 중요한 정황증거로 채택한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초기 한국교회사에서 민족의 역사와 운명을 함께했던 여러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미주 5)

서남동의 민중교회론은 한국교회 초창기 형성시기의 ‘처음처럼’ 믿음의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충분히 수용되고 납득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 그는 교회를 이해할 때 교회가 실재(實在)하는 현장을 주요하게 생각한다. 교회만이 아니라 그 사회와 그곳에 사는 사람 전체의 문제에 예수 사건을 증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교회 밖에서 서성이는 자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계시를 인정하며, 성령의 숨겨진 사역을 향해 열어놓고 있다. ‘지금 여기서’의 역사적 사건으로 체험하는 인간해방운동에 초점을 겨냥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말한다. 반봉건 사회변혁, 민족운동에 앞장섰던 초기 한국교회를 주목했던 바와 같이, 서남동은 말년에 달동네 빈민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빈곤의 사회학, 빈민의 신학]을 주제로 연구하면서 당시 막 시작하던 ‘민중교회운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기대감을 나타내었다.

그러면서 “특별한 교회라는 생각보다는 평범한 개척교회로 출발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조언한 바 있다.(미주 6) 이는 민중교회가 운동이론에 표류하지 말고 민중들 삶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평범함에 깃들어 있는 ‘예수와 민중의 이야기’를 증언해야 한다는 교회의 본질을 붙잡으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십자가를 지는 종말론적 공동체

안병무는 교회의 출발점인 오순절 사건을 ‘갈릴리 민중이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는 일대 변혁의 사건’으로 본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공동체)와 갈릴리 민중의 교회(공동체)라는 두 공동체 중에서 갈릴리 민중공동체의 역할을 교회의 출발점으로 본다.(미주 7) 안병무는 부활사건의 증언 가운데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 “너희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머물러 있으라”고 당부하신 말씀과, 마가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갈릴리로 먼저 가실 것이니 거기서 그를 보자”는 부분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두 부분이 서로 상충되는 것에 착안하여 예루살렘 교회와 이에 맞서는 갈릴리 민중의 공동체를 그의 신학의 주요한 주제로 삼는다.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교 전통에 충실하고 율법을 중시하며 할례를 필요로 한다. 안병무는 그들이 스스로를 유대교의 계승자라 여기고 유대교의 조직, 직제, 체계 등을 따르고자 했다고 말한다. 예루살렘 교회는 점차 교권화 되고, 성례전화 되고, 교리화 되어갔다.

안병무는 그 같은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민중의 저항으로서 마가공동체가 갈릴리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본다. 그는 마가공동체가 예수를 다시 민중의 현장, 역사의 현장으로 끌어내는 작업을 했다는 데 주목한다. 그는 마가공동체가 제자들과는 거리를 유지했지만, 갈릴리 민중과 여인들과는 함께한 민중의 공동체이고, 예루살렘 교회에 대항하는 역사 현장의 공동체였다는 것을 논한다.(미주 8)

그는 교회를 민중과 예수가 만나는 장의 기점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교회는 예수와 민중이 직접 마주하는 현장이다.(미주 9) 그는 교회를 민중의 현장, 역사의 현장에서 기동성 있게 움직이는 공동체로 보았다. 또한 교회의 규모면에서도 큰 교회는 기동성 있게 움직이지 못하기에 작은 교회를 선호했다.

그가 말하는 교회는 예수의 현장인 민중이 그 공동체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교회는 하나님나라백성의 평등공동체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계층성이 극복된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리스도의 현존 앞에 모인 공동체이다. 따라서 교회 안에 모인 공동체 일원 모두가 동일한 존재로서 주인과 종, 유대인과 비유대인, 남과 여의 구별이 없어지고 모든 차별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미주 10)

그는 1893년에 나왔던 선교사협의회 선교정책 10개조를 토대로 한국그리스도교가 민중을 위한 민중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선교정책은 상류계급보다는 먼저 노동자 계급에게, 남자들보다는 먼저 부녀자에게로, 그리고 도시보다는 지방에서부터 전도할 것을 골자로 한다. 그는 이것이 선교 가능성의 측면에서 본 계층의 구분으로 선교전략상 잘 짜여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선교정책으로 평생 사람대접 못 받고 가난과 박해에 신음하던 민중이 교회로 몰려들게 되었고, 한국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지 불과 20년이 지난 1905년에 그리스도인이 25만 명이나 되었다고 그는 지적한다.(미주 11)

안병무에게 바람직한 교회관이란 개인이 이룰 수 없는 것을 교회가 이루어가는 것이다. 개인이 좋은 뜻을 가져도 그가 가진 조건이 허락하지 않고 개인의 상황이나 의지, 능력으로 접을 수밖에 없는 일들을 교회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집단의 인격을 갖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개인으로서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역사의 몫을 집단의 인격, 집단의 의지, 집단의 실행을 통해서 다할 수 있다. 바로 의로운 마음을 가진 개인들이 자기 삶에서 이루지 못한 부채의식을 동기로 삼아 새로운 교회의 선교로 엮어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예수공동체의 고백이 십자가라는 한 단어로 집약된 것이라고 말한다. 십자가 고백은 불의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고난을 당하거나 죽으면서도, 마침내는 그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여 이 땅 위에서 악을 제거해버리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고야 만다는 신앙고백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독교는 십자가의 고난을 회피하기 위해 십자가 상징을 하나의 주술로 사용하게 되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아무 노력도 없이 앉아서 생각하고 고백하는 것에 따라 존재와 세상과 하늘이 움직이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주술이다. 십자가를 주술적으로 여길 때 예수의 십자가와 고난, 그의 삶의 역사성은 송두리째 날아간다.

“부활은 패배 자체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안병무는 ‘정의가 반드시 이긴다’라는 소리를 거짓말이라고 했다. 현실에서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의가 반드시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실의 불의한 곤봉을 몇 차례 얻어맞으면 체념하게 마련이다. 부활이란 ‘정의는 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긴다’의 신앙이다.”(미주 12)

“부활사건은 여기서 저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저쪽에서 이쪽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현재가 미래를 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현재를 삼켜버리는 그런 미래를 말한다. … 부활신앙은 비관주의를 낙관주의로 바꾼 것이 아니다. 부활신앙은 지금의 어떤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믿는다. 이 말은 결국 지금, 또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다.”(미주 13)

철저한 죽음, 그것만이 부활을 가능케 한다. 어떻게 새로운 역사가 우리 앞에 펼쳐지는가? 십자가 없이는 새로움이 없다. 우리의 모든 희망이 막을 내리는 철저한 절망과 죽음의 십자가 없이 새 것은 없다.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인데 십자가는 우리 편에서 보는 관점이고 부활은 하나님 편에서 보는 것이다. 부활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그것은 믿음 안에 있는 영역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철저히 십자가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그는 이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한다.

“이른바 사회참여, 사회정의, 인권을 내세우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문제가 있다. 그것은 그런 것들이 바로 사회현상의 사회과학적인 관찰에서만 알고 배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세 이야기에서 배울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라는 말씀을 듣는 현실이다. 나는 이것을 ‘지성소의 경험’이라고 한다. 지성소, 내 발에서 신을 벗어야 하는 엄숙한 장소와 때,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고, 침범할 수도 없는 지고의 자리. 이런 절대의 경지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것에 빠지지 않는다.”(미주 14)

안병무의 ‘지성소’(미주 15) 발견은, 이제까지 역사 속에서 사건을 만들어갔던 내면적 사건, 실존적 깊이의 사건으로 출발하는 민중신학의 역사가 전통신학의 신앙과 만나게 되는 지점으로 보인다.

그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개인으로 부르지 않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불렀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개인의 구령이라는 말에 소외되어 이기주의자가 되었지만, 성서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부르셨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교회론은 철저하게 종말적이기 때문에 분명 교회는 십자가를 지는 공동체여야 한다.

교회는 스스로를 위해 있지 않고 세계를 위해 존재한다. 교회가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며 자기 조직이나 소유, 자기울타리 안에 있는 청중의 숫자를 목표로 삼거나, 그것을 힘의 근원으로 삼기 위해 존재할 때 교회는 교회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교회 스스로 자기완결적인 목표로 삼을 때 그 교회는 이미 예수와 상관없게 된다.

그래서 그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준 사건이듯이, 하나님께 부름 받은 개인이나 교회는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주는 존재여야 한다고 본다. 그의 교회론은 성장주의 교회론과 질적으로 다르다. 눈앞의 영광이나 성과를 기대하지 않고 의로운 죽음, 십자가의 죽음을 기대하며 그 열매는 하나님의 몫으로 여기는 교회론이다.

이렇듯 십자가를 지는 교회는 그 당시에는 쓰라린 고통을 겪지만, 오히려 새로운 사건의 창조자, 형성자, 담지자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민중의 자각을 일깨워가며 그들의 해방적 의사소통의 장이 되는 새로운 해방사건의 증언자가 될 것이다.(미주 16)

한기양  ecoh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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