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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붕쇠’를 아십니까?‘감자붕쇠’ 한 솥단지 가지고 행복해서 마냥 웃고 떠들던 아이들
박철 | 승인 2018.07.27 20:54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마나 하얀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마나 하얀 감자.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마나 자주 감자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마나 자주 감자.”

권태응 선생이 지으신 동시 ‘감자꽃’이다. 5·6공화국 시절 친구들이 모이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특히 나의 외우 손인선 목사가 이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가사가 단순하지만, 노래 전체의 분위기가 처연(悽然)하기만 합니다. 그 시절, ‘감자’라는 노래는 억압과 굴종의 역사의 한복판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노래에 혼을 담아 불렀습니다.

저는 고향이 강원도 철원인데 사람들이 고향이 강원도라 하면 언필칭 ‘감자바위’를 연상하고 강원도 촌사람을 비하하는 투로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감자바위’를 한번도 부끄럽게 생각해 본적도 없고, 나의 향수가 배어 있는 강원도 논미리 옛날 보릿고개를 넘어야 할 시절, 가난과 궁기로 까까머리에 부스럼을 여기저기 달고 살던 시절, 저는 ‘감자바위’ 출신답게 감자와 친숙하게 살았습니다.

▲ 감자꽃. 참 예쁘다 ⓒ박철 목사

하지(夏至)가 되면, 집집마다 감자를 캡니다. 쌀 구경이 힘든 강원도 오지에서 꽁보리 위에 감자를 얹어 밥을 지으면 그 맛이 꿀맛입니다. 하얗게 분이 난 감자에 고추장을 발라 으깨서 먹던 지 아니면, 찐 호박잎에 고추장을 발라 쌈으로 먹으면 그야말로 끝내줍니다. 같은 강원도 씨감자로 심어 나중에 수확을 해도 강원도 감자하고 생긴 것을 비슷한지 몰라도 맛이 다릅니다. 강원도에서 수확한 감자는 분이 많이 납니다. 알도 굵습니다. 기후나 토양이 감자가 자라기에 좋은 조건입니다.

밭에 돌멩이가 많고 퍽퍽해도 감자가 잘 자랍니다. 감자 꽃이 피면 장관을 이룹니다. 감자는 옛 시절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에 가난한 민중들에게 생명을 부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고마운 양식이었습니다. 30년 전 정선아리랑으로 유명한 정선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10여 년의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고향냄새 물씬 풍기는, 내 어릴 적 향수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나는 그 동네에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그 동네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목회하면서 여기저기 다녀보았지만, 강원도 사람만큼 부지런한 사람들도 없습니다. 논은 별로 없고 밭작물을 많이 하니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밭작물은 여느 작물보다 손이 많이 가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되면 딱히 할일도 없고 하루 종일 개울가에 가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투망을 갖고 나가 던지면 실한 피라미가 한 사발씩 잡힙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보니 나의 매운탕 솜씨는 날이 갈수록 수준급이 되어갔고, 첫 아이를 임신한 아내는 얼굴도 뽀얗고 살도 포동포동 쪄갔습니다.

그 시절, 아내와 나는 아이들 소꿉장난 하듯이 교우들이 가져다 준 옥수수수염을 벗겨 한 솥을 쪄서 앉은 자리에서 한 스무 자루를 먹어치우고 그래도 시간이 안가면 그 다음에는 감자를 강판에 갈아 다른 야채를 넣어 부침개를 부치는 것이었습니다. 감자 인심이 풍성했습니다. 감자를 캐다가 조금이라도 상처가 난 감자는 상품가치가 없다고 다 퇴짜입니다.

그러면 집집마다 감자갖다 잡수라고 몇 자루씩을 담아 줍니다. 감자가 흔하니까 감자 축나는 건 걱정도 안 되고, 그야말로 배가 터질 정도로 먹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면 매미소리가 얼마나 쩌렁쩌렁한지 매미소리에 잠이 깨곤 하였습니다. 한번은 동네아이들이 저녁에 장강(長江. 거기서는 개울이 크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에 가서 멱도 감고 감자붕쇠(?)도 해먹자고 졸라 대기에 아내와 나는 아이들은 따라나섰습니다.

‘감자붕쇠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이고, 또 어떻게 먹는 것일까?’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고 개울물 흐르는 소리와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적막한 한여름 밤에 수를 놓습니다. 우리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이들은 큰 돌 위에 솥단지를 걸고 물을 붓고 미리 준비해 간 장작에 불을 붙입니다. 솥에 감자를 넣고 삶습니다. 매운 연기가 사람을 따라 다니면서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장강 돌바닥에 벌렁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아내가 ‘트윈 폴리오’의 ‘저 별은 나의 별 저별은 너의 별’ 하고 선창을 하면 아이들이 따라 부릅니다.

▲ 1988년 봄. 강대상에 놓을 진달래꽃을 꺾으러 아이들과 함께. 30년 전 나의 친구들. 장강에 나가 ‘감자붕쇠’ 맛을 보여 준 아이들이다. 이 사진을 보면 연락하길 바란다. ⓒ박철 목사

어떤 녀석을 그 당시 최고 유행하던 조용필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손뼉을 치면서 같이 목이 터져라 합창을 합니다. 감자가 구수하게 익어 갑니다. 구수한 냄새에 침이 꼴깍꼴깍 넘어갑니다. 그 중에 제일 고참인 중학생 녀석이 잘 무른 감자를 주걱으로 으깨어 밀가루와 사카린을 넣고 한 번 비벼주더니 다 되었다는 겁니다. 그게 ‘감자붕쇠’였습니다. 그걸 제각기 숟가락으로 퍼먹기 시작하는데 한 솥 가득한 ‘감자붕쇠’가 금방 비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옷을 벗고 물에 뛰어 들어갑니다. 여자아이들 웃음소리가 간드러지고, 사내아이들은 서로 물싸움을 합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웃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시나브로 ‘감자붕쇠’의 추억 속에, 그 시절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환갑을 지나 곧 60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감자붕쇠’ 한 솥단지 가지고 행복해서 마냥 웃고 떠들던 그 아이들이 내 눈에 삼삼합니다. 다 시집가고 장가가고 했을 터입니다. 그 시절 ‘감자붕쇠’ 추억을 붙잡아 둘 수는 없지만, 그리움은 더욱 간절해지는 모양입니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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