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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하르트, 프롤레타리아 가운데 계신 예수를 외치다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와 헤르만 쿠터 1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 승인 2018.08.09 15:40

“이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의 담지자 <Christusträger>, 즉 그리스도를 프롤레타리아에게 선포했던 블룸하르트이다.”(미주 119)

블룸하르트는 제1차 대전 이후 종교사회주의와 변증법적 신학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라가츠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미주 120) 라가츠는 생전에 두 번 그를 방문했는데 그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점심 식탁에서였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갑자기 계시를 통한 것처럼 우리들 가운데서 블룸하르트의 면모가 일어났다. 한순간 인간 블룸하르트가 분명하게 그리스도 자신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다만 순간적인 것이었고, 그는 다시 블룸하르트로 거기에 있었다.”(미주 121)

블룸하르트의 그리스도 체험

블룸하르트의 사상과 운동은 철저하게 ‘체험’을 바탕으로 한 “예수는 승리자”라는 확신,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에 대한 신뢰, 그리고 성서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있다. 블룸하르트는 1872년 “이상한 탄생”을 체험함으로써 새롭게 태어났다.(미주 122) 그는 이 체험을 통하여 “예수는 승리자”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Getty Image

그가 체험한 이 예수는 신학적 전제나 철학적 사변, 그리고 주관적 경험 속에서 이해한 예수가 아니라 오히려 이 모든 것을 넘어 “하나님의 직접성” 속에서 체험한 예수이다.(미주 123) 따라서 블룸하르트는 도그마적인 예수 이해와 해석을 거부했다. 그는 예수를 구약의 성취자요 이스라엘 예언의 실현자라고 이해했다.

예수는 신동도 종교적 천재도 아니다.(미주 124) 오로지 예수는 복음의 “전령자”(Der Hereld)요 모든 죄와 고통과 가난에 대해 투쟁하시는 “투쟁가”(Der Protest)요, 인간의 해방자요, 구원자이시다.(미주 125) 따라서 블룸하르트의 예수에 대한 이해는 성서가 증언하는 사실(Tatsache)과 약속의 실현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며, 지금도 살아계셔서 인간의 질병과 세계를 지배하시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로 이해해야 한다.(미주 126)

블룸하르트의 예수는 철저하게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다. “하늘이 땅이 되었다”(미주 127) 예수는 이 하늘을 땅 위에 가져 오셨다. 이제 “하늘에서의 기쁨은 이 지상에서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미주 128) 그러므로 하늘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은 불신앙이 된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 위에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지상에서의 인간들의 삻에 관심을 가지시며, 인간들의 “빵의 문제는 하나님의 문제”(미주 129)가 된다. 예수는 철저하게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다. 그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 위에 있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늘에서가 아니라 ‘땅’에서, 인간들의 삶 속에서 발견된다. “나는 구세주를 하늘이 아니라 ··· 인간들의 화의적인 삶 속에서 발견하였다 ···”(미주 130) 이제 블룸하르트의 “예수는 승리자”라는 말은 “예수가 우리 가운데 있다”라는 말이된다.(미주 131)

민중 가운데 계신 예수

블룸하르트는 우리 가운데 있는 예수를 “가난한 세상을 위한 중보자”(미주 132)로서, 민중의 예수로서, 또한 민중운동 속에서 인식되는 예수로서 이해했다. “우리는 눈으로 똑똑히 보아야 한다. 예수가 새롭게 출현했다. 그의 오심의 첫 번째 결과는 민중운동이 될 것이다. 그 운동에서 무엇이 참되고 무엇이 옳은가는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 현명한 처녀들은 이 민중들의 소생에서 예수의 오실 때를 감지한다.”(미주 133)

여기서 E. 부에스는 블룸하르트에게서 신의 역사와 세계사, 예수의 사건과 프롤레타리아의 출현이 일치한다고 보았다.(미주 134) 즉 블룸하르트는 민중사건과 그리스도의 사건을 일치시킨다. 이와 같은 인식은 라가츠에게서 다시 나타난다. 라가츠는 이 민중 사건과 그리스도 사건의 분열이 서구 기독교의 비극이라고 보았으며, 이 두 사건의 일치 속에서 새 하늘과 땅,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일치의 가능성을 보았다.(미주 135)

블룸하르트는 “예수가 우리 가운데 있다”라는 임마누엘의 신앙에서 민중의 예수를 발견하고, 이 민중의 예수 속에서 다시 그리스도교인의 ‘제자직’을 말한다. 예수가 가난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가신 것처럼 이제 “우리는 인권을 위하여 부르짖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미주 136) 이것이 기도요, 예배요, 참된 교회의 모습이다.

블룸하르트에게 있어서 믿음은 성서의 사건을 뒤돌아 보고 단순히 신앙고백을 암송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본회퍼의 말처럼 십자가를 지는 고통의 삶을 살라고 요구한다. 즉 예수가 한 알의 밀알로 사신 것처럼 하나님과 인간을 위해 죽은 자로 살아야 한다.(미주 137) “죽어라, 그래야 예수가 산다.”

블룸하르트의 제자직의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의 실천이다.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 속에서 블룸하르트는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신앙인과 무신론자를 구별하지 않고 오직 ‘인간’ 그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다.(미주 138) 블룸하르트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이 모든 세계와 모든 인간에게 유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사회운동에 관여하게 되었다.(미주 139)

블룸하르트는 “교도소 법률안” 반대 투쟁에 동참했으며, 1899년 10월 24일 사회 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이러한 그의 입당은 투르나이젠의 말처럼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었으며, 이것은 하나님 나라와 사회주의를 동일시하는 문화적 낙관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의 연대를 통한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의 실천이요 사회주의 원리에 대한 인정이었다.(미주 140) 또한 스퇴거와 나우만, 그리고 영국의 기독교 사회주의자들과는 달리 살아계신 하나님과 현재의 변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블룸하르트의 확고한 믿음의 표현이었다.(미주 141)

그러나 블룸하르트의 정당생활을 오래가지 못하였다. 1906년 그는 지방의회의 새로운 후보자 자격을 거절하고 탈당하였다. 그 원인은 교조적 사회민주주의 체제와 폭력적인 혁명주의 때문이었다. 블룸하르트는 이같은 폭력적인 혁명은 예수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비폭력의 혁명과,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그의 확고한 신앙에 상반되기 때문에 폭력적인 혁명주의를 반대했다.

이같은 블룸하르트의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상은 라가츠에게서 더욱 구체화 되어 하나님의 자녀됨과 형제됨이라는 라가츠 윤리의  핵심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비폭력 사상은 라가츠의 평화운동에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미주

(미주 119) E. 부에스 /M. 마트뮐러, 『예언자적 사회주의』, 손규태 옮김(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87), s. 40.
(미주 120) K. 바르트, E. 투르나이젠, L. 라가츠, H. 쿠터, E. 부르너 등이 있다. (손규태 편저, 『혁명적 신앙인들』[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87], s.14.) 벤틀리는  K.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뿐 아니라 종말론에까지 영향을 주었으며, 몰트만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제임스 벤틀리, 『기독교와 마르크시즘』, 김쾌상 옮김[서울: 일월서각, 1987], s.45을 참조하라.)
(미주 121) 손규태 편저, 위의 책, s. 13. 재인용.
(미주 122) 블룸하르트는 고트리빈 디투스(Gottliebin Dittus)의 죽음을 통해서 이상한 체험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손규태 편저, 『혁명적 신앙인들』, s. 18을 참조하라.
(미주 123) 이 하나님의 직접성의 강조는 쿠터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쿠터는 이것을 ‘Das Unmittelbare’라는 책에서 철학적으로 정리했다.
(미주 124) Johannes Harder, “Christoph Blumhardt”, in: “Religiöser Sozialismus”, Günter Ewald (Hrsg) (Stuttgart: W. Kohlhammer verlag, 1977), s. 27.재인용.
(미주 125) 위의 책, s. 34. 재인용.
(미주 126) A. Lindt, ss. 159-160.
(미주 127) J. Harder, 앞의 책, s. 26. 재인용.
(미주 128) 위의 책, s. 34. 재인용.
(미주 129) 위의 책, s. 35. 재인용.
(미주 130) 로버트 프릭, 황정구 역, “블룸하르트의 예언자적 선교”, 현존 112호, (1980년 6월), s. 44. 재인용.
(미주 131) 위의 책, ss. 49-50. 재인용.
(미주 132) J. Harder, 앞의 책, s. 38. 재인용.
(미주 133) E. 부에스 / M. 마트뮐러, 앞의 책, s. 47. 재인용.
(미주 134) 위의 책, s. 147.
(미주 135) 라가츠의 민중 사건과 그리스도 사건의 일치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어질 “사회적 그리스도”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미주 136) 손규태 편저, 앞의 책, s. 23.
(미주 137) J. Harder, 앞의 책, s. 30.
(미주 138) 로버트 프릭, 앞의 책, s. 42.
(미주 139) A. Lindt, s. 229.
(미주 140) 블룸하르트는 사회민주당의 인간의 가치고양, 평등사상, 자유에 대한 의지, 특권 배제 등이 예수의 복음에 낯설지 않다고 보았다. (J. Harder, 앞의 책, s. 31.) A. Lindt는 블룸하르트의 사회민주당 입당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생겼다고 했다.(A. Lindt, s. 229.)
(미주 141) A. Lindt, s. 230.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jena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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