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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호모 데우스(Homo Deus)’를 꿈꾸다생명공학 또 다른 바벨탑이 되지 않기를
김광연 교수(숭실대,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코디) | 승인 2018.08.17 21:57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 마지막 작품으로 완성됐다. 인간은 모든 만물 가운데서 가장 완벽한 존재이자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입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세상의 모든 피조물보다 존엄한 존재이고 생명의 우선성을 가질 수 있었다. 하나님이 창조한 생태 정원에는 자연적으로 출생한 동식물들이 가득했고 이들이 생명의 뜰을 장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명공학 시대에 인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맞게 됐다. 생명공학자들은 생태계 정원 속에 그 동안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화려한 꽃을 하나씩 심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적 욕망

지난 세기동안 과학자들은 ‘치료’ 목적에 제한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의료 기술을 발전시켜왔지만 이제 생명공학 기술은 치료가 아닌 ‘신체 개량’을 목적으로 새로운 생태계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만든 생명공학의 정원에는 언제부터인가 복제된 한 송이의 꽃이 피기 시작했고 그 꽃은 점점 여러 색깔의 개체수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름답게 핀 복제된 꽃은 개화 시기 조절이 자유로웠고 생태계 질서와 상관없이 피고 지게 되었다. 꽃 색깔도 화려해서 사람들의 손길을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자연스레 그 꽃의 가격도 시장에서 높게 책정되었다.

▲ 그리스신화의 프로메테우스 ⓒGetty Image

생명을 복제하는 기술은 동물 복제 기술을 넘어선지 오래되었고 심지어 중국의 과학자들은 영장류 복제 기술까지 성공하면서 영화에서 나오는 손오공이 자신과 같은 분신을 만드는 것처럼 생명공학자들은 영화의 소제를 현실로 만들었다. 과학 기술의 놀라움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이미 영국에서는 유전병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치료용 맞춤아기’가 합법화됐다. 생명공학 기술은 이제 아이의 유전자를 편집하여 질병을 가진 유전자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건강한 유전자를 집어넣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유전자 편집 기술이 자칫 질병 ‘치료용’이 아닌 신체 ‘개량’을 목적으로 사용될 경우 부모의 선택에 따라 태어날 아이의 유전자를 선별하여 아이를 ‘만들 수 있는’ 맞춤아기가 태어날 수 있게 된다. 미래에 인류는 생명공학 기술을 통해 유전자를 선별하여 ‘제작’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인류는 생명공학 기술의 화려한 조명을 받아 생명의 신비로운 탄생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맞출 수 있는 ‘신놀이(playing God)’를 할 수 있게 된다.

마이클 샌델(M. Sandel)은 생명공학 시대에 “유전자 및 신체 증강 기술은 인간의 ‘프로메테우스적 욕망’에서 빚어진다”며 이를 비판했다. 그는 생명공학자들이 유전학적으로 완벽해 지려는 위험한 인간의 욕망에 대해 경고했다. 샌델은 출생의 신비를 정복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비판하고 인간의 본성을 포함한 자연을 인간의 목적과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시 제작하려는 프로메테우스적 욕망을 경계했다.

하버마스(J. Habermas)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나친 욕망은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필요로 하고, 인격체의 자기이해를 변화시킬 윤리적 문제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인간의 생명이 태어나고 그 생명은 다른 어떤 것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인류는 존엄한 존재라고 가르친다.

유전자 선별 기술은 양면성을 가진다. 이 기술은 유전질환이나 난치병과 같은 질병을 고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을 가진다. 하지만 이 기술이 인간의 욕심에서 그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날 경우, 유전자를 개량하여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슈퍼 베이비’를 태어나게 할 수도 있다.

구약성서에 인류는 지나친 욕심으로 바벨탑을 쌓았다. 지나친 우리들의 욕심으로 생명공학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영화 아일랜드(Island)는 인간 복제를 주제로 다룬다. 영화에 등장하는 복제 인간은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고객을 위해 복제된 존재들이다. 이들은 고객이 만약 아프거나 장애가 생길 경우 기계의 부속품처럼 치료 목적으로 사용된 후 ‘폐기’된다. 이들 복제인간은 단순히 기계의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복제인간은 고객의 필요에 따라 하나의 부속품처럼 사용되고 처리된다. 이들은 존엄한 존재로 대접받지 못하고 하나의 도구나 수단으로 취급된다.

개와 늑대의 시간

칸트(I. Kant)는 “인간은 결코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목적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 생명의 가치는 존재하는 모든 것 위에 있으며 결코 다른 존재를 위해 심지어 인간을 위해서도 하나의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공학 기술이 미끄러운 경사길을 달리는 것처럼 발달하고 있다. 이미 세계 많은 생명공학자들이 복제 기술을 앞 다투어 연구하고 있다. 생명공학자들이 영장류 복제에 완벽한 성공을 하게 된다면 이후 연구자들은 또 어떤 실험을 해서 세계의 이목을 끌지 우리는 우려와 두려움 속에 기다리고 있다. 만약 생명공학자들이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인간복제 실현을 앞당기거나 가능하게 할 경우, 인간은 ‘호모 데우스’가 되어 스스로가 신이 되려고 할 수도 있다. 인류가 호모 데우스를 꿈꾼다면 언젠가 자신들은 신이 되어 하나님(God)을 외면하게 될 지도 모른다.

프랑스 속담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은 어두컴컴한 새벽 미명 나를 향해 희미하게 다가오는 저 대상이 나를 좋아하는 개인지 아니면 나를 헤치려는 늑대인지 구분하지 못할 때를 일컫는 말이다. 지금 생명공학의 미래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 기술이 우리에게 유익이 될지 해가 될지 우리는 개와 늑대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인류 공동체에게 걸어본다. 인류는 인문학적 반성과 성찰을 통해 호모 데우스를 꿈꾸는 욕심을 버리고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지혜를 가진 우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라고.

* 글쓴이 김광연 님은 숭실대 교수로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의 살림코디로서 ‘살림’을 알리고 좋은 생각을 나누는 일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김광연 교수(숭실대,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코디)  ecomi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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