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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인당수에서 남북합작 [심청가] 선상공연이 열리면신상옥 영화 [효녀 심청], 황석영 장편소설 [심청, 연꽃의 길]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 승인 2018.08.19 21:10

최근 인천시 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백령도와 중국 간 직항로 개설 공약이 제시되기도 하는 등 서해 5도 평화수역 개발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와 시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이 정책은 십수 년 전부터 거론되었던 것인데 요즘 조성되기 시작하는 남북 교류 국면에 따라 실현 가능성이 부쩍 커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황해도 산둥반도 항로는 선사시대 때부터 활발하게 이용된 해양 교통로였다는 게 여러 유적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형상화한 문학 작품으로는 [심청가]가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일 것이다.

▲ 백령도 심청각 앞 인당수

심청전의 근원설화가 아시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것을 보면 고대 사회 한민족의 교류 양상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설화로는 눈먼 어머니를 위해 종으로 몸을 판 ‘효녀 지은 설화’와 바다에 희생 재물로 바쳐졌다가 용왕의 딸과 혼인하여 되돌아온 ‘거타지 설화’를 예로 들 수 있다. 일본 설화 ‘소야희 설화’도 재물로 바쳐진 처녀가 살아 돌아와 어머니 눈을 뜨게 한다는 내용으로 대동소이하다. 멀리 인도에도 효행이 지극한 아이가 부처의 은혜를 입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다는 ‘전동자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근원 설화의 분포 지역을 살펴보면 심청 설화가 불교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전남 곡성에 있는 [관음사 사적기(寺跡記)]에 기록된 효녀 ‘원홍장’ 이야기는 심청전과 이야기 구조가 너무 흡사하여 심청전의 근원설화로 평가되고 있는데 ‘원홍장’ 설화는 중국 절강성 지방에서 한반도 남쪽 지방으로 불교가 전파된 것으로 추정케 하는 유적들의 연기설화(緣起說話)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관음사는 300년경에 창건되었고 사적기로 ‘원홍장’ 설화를 기록하고 있으니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되면서 심청 설화도 함께 들어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설화의 내용은 장님 아버지를 둔 ‘원홍장‘이라는 여인이 중국 상인을 따라 중국 절강성으로 가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불상을 하나 고향 마을 관음사로 보내고 맹인 아버지가 관음사에 와서 기쁨에 겨워 눈을 뜨게 된다는 스토리이다. 중국 절강성 녕파(寧波) 부근에는 심청전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지명이 여럿 보인다. ’도화도(桃花導)‘, ’심가문(沈家門‘), ’심청원‘ 등이 그 예이다. 곡성의 관음사는 서기 300년경에 축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관음사 사적기]에 언급된 중국 절강성 영파시의 고찰 ’천동사‘도 곡성의 관음사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고 이 ’천동사‘에서 백제로 불교가 전파되었다고 한다.

▲ 중국 절강성 주산군도 보타도의 ‘심원’

절강성 앞바다에 주산열도가 있는데 그 섬들 중의 하나인 ‘보타도’에 가면 ‘신라초’라고 이름이 붙은 바위가 있다고 한다. 먼 바다 건너에 어떻게 우리 민족의 자취가 남아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시대 초기 백제가 해양대제국을 이뤘고 중국 동해안 일대가 백제국의 강역이었다는 고대사 학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의 사서에 ‘보타도’를 중심으로 한 주산열도에 심씨 가문에 대한 기록이 있어 [관음사 사적기] 기록과 일치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원홍장’이라는 백제 여인이 이곳으로 와 심가문의 수장에 의해 진(晉)나라 혜제의 황후로 추대되었다고 한다. 심청 설화는 황해문명권 성립 초기인 고조선시대와 삼국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한반도 문화가 가장 선진적인 문화였음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 당나라 초기의 역사가 이연수의 저서 [진서(晉書)]에 중국 동해안 일대가 백제의 강역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촉오 삼국시대 이후 잠시 통일 왕조 진(晉) 나라가 성립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오호십육국시대, 남북조시대 분열기를 맞이한다. 분열기 직전의 진(晉) 나라와 직후의 북위 시대에 백제가 중국 대륙의 동부 지역을 지배했다는 기록이 중국 역사서에 많이 남아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선사시대 때부터 한반도 서해안 지역과 중국 동해안 지역은 하나의 문화권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두 지역이 한반도 서해안과 중국 동해안을 순환하는 해류에 의해 뱃길로 연결되었기 때문이었다. 동국대 사학과 ‘윤명철’ 교수는 직접 무동력 뗏목을 만들어 타고 고대 뱃길을 탐사해 고대 황해의 해양 교통로를 증명해냈다.

▲ 북태평양 쿠로시오 해류 황해 지류

윤명철 교수가 직접 뗏목을 타고 항해하여 입증했듯이 중국 남쪽 주산열도에서 한반도 남쪽 나주로 이어지는 남단항로, 발해만 깊숙이 들어가는 연안항로와 함께 백령도에서 중국 산둥반도 끝으로 이어지는 서해 직단항로는 고대시대 때부터 활발하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항로들은 북태평양 쿠로시오 해류의 흐름을 따라 형성되어 선사시대 때부터 중국 대륙과 한반도를 이어주는 해상 교통로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대륙 남쪽 한족(漢族)이 전란을 피해 한반도 남해안 지역으로 이주하였다는 사서 기록이 이를 입증한다. 서해 남단 항로가 중국 대륙 남단 해양문화가 한반도로 유입된 경로였다면 백령도 인당수를 건너는 직단항로는 산둥반도 주변의 대륙백제와 한반도 백제를 하나로 이어주는 해상 교통로였을 것이다.

▲ 산둥반도 적산 법화원 전경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바친 인당수는 서해 직단항로를 건너는 한반도 출발지점, 백령도 앞바다로 봐야 한다. 백령도에는 심청전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 여럿 있다. 심청이 자란 ‘중화동’은 백령도 ‘연화리’에 소재하고 그 이웃 동네 ‘장촌’은 심청전에서 뺑덕어미가 살았던 마을 이름과 같다. 심청이 용궁에서 돌아올 때 연꽃 속에 실려 왔는데 백령도의 ‘연화리’에는 심청이를 실어온 연꽃이 뭍으로 올라온 곳이라는 설화가 전해진다.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백령도가 ‘진성여왕과 거타지’ 설화의 배경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시대 말기에는 장보고가 환황해(環黃海) 일대 해상권을 장악했으며 산둥반도에는 그의 유적이 거대하게 남아있다. 여러 설화와 역사 유적을 종합해 보면 중국대륙 동해안과 한반도 서해안은 황해 해류를 따라 조성된 하나의 문화권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청전은 그 역사를 반영한 고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심청전은 이본이 많아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야기의 줄기는 대동소이하다.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봉사 심학규는 아내 곽씨의 삯바느질로 근근이 살아간다. 살림살이는 어렵기 그지없지만 양주의 품행이 점잖기로는 이웃 사람들 칭송이 자자하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슬하에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천녀가 나타나 품에 안기는 꿈을 꾸고 그토록 바라던 자식을 얻게 되었지만 아내 곽씨는 해산 뒤에 죽고 만다. 심봉사는 젖동냥하여 청이를 키운다. 봉사 아비의 지극정성에 청이는 잘 자라 십여 세 되어서는 어른 못지않을 만큼 철이 들어서 마을 사람들 칭찬이 자자하다. 십오 세가 될 무렵에는 재색(才色)을 겸비하여 인근에 명망이 드높아져 옆 마을 장승상댁이 청이를 불러 양딸 삼으려고 하나 청이는 봉사 아버지 곁을 떠날 수 없다며 한사코 마다한다. 심봉사는 딸을 기다리다가 초조한 마음에 마중을 나갔다가 도중에 개천에 빠지고 만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지나가는 스님의 도움으로 구명된다. 스님이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다고 하자 심봉사는 혹하는 마음에 약속을 해버린 후 자신의 경박한 처사를 후회한다.

▲ 신상옥 감독 영화 [효녀 심청]

심청이 돌아와 보니 아버지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여 어쩐 일이냐고 여쭈니 심봉사는 삼백 석 시주 약속을 털어 놓고 눈물을 흘린다. 심청이 그날부터 천지신명께 치성을 드리며 소원을 빈다. 하루는 뱃사람들이 인당수에 바칠 처녀를 구한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 부친께는 쌀 삼백 석에 장승상 댁 수양딸로 가게 되었노라 고하니 심봉사 영문도 모르고 기뻐한다. 심청이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하직할 때 사후 부친의 일이 걱정되어 애를 끓이다가 혼절하고 만다. 심봉사가 딸을 끌어안고 흔들어 깨우는데 정신을 차린 심청이 자신은 인당수에 제물로 바쳐질 것이라 실토를 한다. 심봉사가 통곡을 하며 청이를 붙잡고 놓지 않자 청이는 동네 사람들께 부탁하여 아버지를 떼어 앉히고 눈물을 쏟으며 이별을 고한다. 인당수에 다달아 뱃머리에 서서 아버지를 굽어 살필 것을 하나님께 빌고 치마폭을 뒤집어쓰면서 바다로 뛰어든다. 용왕님의 구제로 환생한 심청이는 중국의 황후로 등극하고 황후의 사연을 들은 황제가 맹인 잔치를 열어 부녀는 상봉하게 된다.

심청전 이야기는 크게 효행, 인신공희(人身供犧), 환생 등의 아이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삼국시대에 황해 문화권에서 유교, 불교, 도교의 문화가 융합되어 나가는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심청이가 중국 황후가 되는 스토리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 국가 체제가 성립될 무렵의 지정학적 판세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판소리로 전승되던 심청가가 소설 [심청전]으로 정착되고 여러 설화가 반영되어 다양한 이야기로 재생산된 과정은 곧 동북아시아 정치 문화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심청 이야기는 현대에 들어와서도 동북아시아 시대사를 반영하여 거듭 새롭게 탄생했다. 채만식 [심(沈) 봉사], 황석영 [심청, 연꽃의 길], 최인훈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황석영은 소설 [심청, 연꽃의 길]으로 판소리계 소설 심청전을 19세기 산업화를 거치면서 소외되는 동아시아 여성의 비극으로 재창조해냈다. 계모 뺑덕어미가 중국 상인에게 팔아 버려서 심청은 중국 남경의 어느 부자 노인의 첩으로 들어간다. 아편전쟁이 일어났을 때 인신매매꾼들에게 끌려가 사창가에 팔려 기녀 생활을 하다가 양인(洋人) ‘제임스’의 눈에 들어 싱가포르로 갔다가 ‘제임스’와 헤어지고 난 뒤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류큐에서 요정집을 낸다. 나이가 들어서 고국으로 돌아와 인천 문학산 골짜기에서 ‘연화암’을 지어 살다가 운명한다. 심청은 이렇게 현대 동아시아 시대사를 반영하면서 거듭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 안숙선 ‘심청가’ 경회루 선상공연

심청은 남북 평화 교류의 매개 텍스트로도 환생하고 있다. 신상옥 감독은 남한에서 1972년에 [효녀 심청] 영화를 만들었는데 1985년에도 북한에서 [심청전] 영화를 제작했다. 2005년 남북 교류가 활발하던 시기에는 남북 합작으로 [왕후 심청]이라는 만화 영화도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동안 중단되었던 남북 교류가 최근 다시 재개되는 분위기 속에서 분단의 상처라 할 수 있는 비무장지대가 동북아시아 교역의 중심지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서해5도 해역은 중국 대륙의 산둥반도와 지척에 있고 발해만과 연결되어 앞으로 세계 경제의 판세를 좌우할 황해경제구역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백령도와 산둥반도를 잇는 고속 여객 항로 개설이 논의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는데 더 나아가 항해도 장산곶과 백령도 사이 인당수에서 남북 합작으로 심청가 선상(船上) 공연도 구상해볼 만하다.

이한수(인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hansu8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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