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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인권을 지키는 방법(레위기 17:10-16)장일선, 『구약성서와 설교』 3
에큐메니안 | 승인 2018.08.21 21:33

지난 시간에 이어 장일선 교수의 구약 율법서에 대한 설교 예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장일선 교수는 구약성서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의 백성을 이미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 은총에 대한 보답으로 올바로 사는 길을 모색하게 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구약의 법은 곧 하나님의 백성의 행동 강령을 제시한 것으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제의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직접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법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는 길이라고 지적했다(안식일, 할례, 음식 규정 등). 이런 면에서 유형적으로 볼 때 제의법은 그리스도인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일선 교수는 레위기 17장 10-16절 본문으로 설교 본문을 작성했다. 생명이 피에 있다는 중심 사상으로 그리스도인이 이 본문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교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레위기 17장은 짐승을 잡을 때 그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피가 곧 생명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 생명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17:14).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생명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기에 사람의 양식을 위해 짐승을 잡더라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 제사의 형태로 짐승을 죽였고, 짐승의 피는 제단에 바름으로써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께 다시 바친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은 고기를 함부로 먹지 않는다. 백정이 아무렇게나 죽인 짐승은 피가 고기에 묻기 때문에 불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위기 법전에 제시한 대로 랍비가 특별히 도살하여 피를 뽑아내고 인가를 한 “코세”(Kosher) 고기만을 먹는 것이다. 미국과 같이 이미 인종이 섞여 사는 다원화 사회 속에서도 그들은 유대인들이 직접 경영하는 슈퍼에서만 고시를 사 먹는다. 레위기 17장의 규정이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에게 어떤 종류의 고기를 어떻게 먹으라는 규례를 가르치는 것이 그 목적은 아닐 것이다. 피를 먹지 말라는 규정에서 우리는 인간의 목숨이 파리 목숨이었던 고대 근동 사회에서 이스라엘 소수민들이 생명의 존귀성을 강조하여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취하지 않는 고귀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생명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그들의 신념 때문이다.

ⓒGetty Image

인권이 강조되고 개인의 권리가 존중되는 우리의 사회에서 우리는 레위기의 법전을 다시 상고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이름, 즉 국가의 이익이나 사회의 정의 등 화려한 구실을 붙여 너무나 쉽게 인권을 유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같은 날 신문에 한편에서는 5공화국 시절 남의 인권을 무시하고 자신의 권익만을 추구한 전경환 씨의 재판 기사가 보도 되었고, 또 한편에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흑인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다 투옥되어 4반세기 동안 옥살이를 하는 만델라의 7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온 세계 사람들이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 왔다는 소식이 대조적으로 보도 되었다.

구약성서의 제사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단에 바쳐진 짐승의 피가 죄인의 죄를 속죄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계속되어, 신약성서에 이르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하나님께 바쳐진 제사로 이해된 것이다. 구약에서는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드리고 피를 흘려야 하지만, 예수께서는 단 한번의 희생으로 우리들의 죄를 완전히 대속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어지는 새로운 삶은 구약성서가 강조하는 생명이 하나님께 속했다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생명이 하나님께 속했다 함은 무죄한 피를 흘려서는 아니됨을 말하는 것이다.

신명기 27장에서는 이웃을 암살하는 자에게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24절). 그리고 출애굽기 21장 12절에서는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다”고 하였다. 피를 먹지 말라는 규정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치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그 피에 있다고 보았기에 “무릇 사람이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6)고 말하고 있다.

신학자 바르트(Barth)는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살인, 처형, 전쟁의 살상, 낙태, 심지어 안락사까지 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한 사람의 폭력으로 인해 공동체의 생명에 위협을 끼칠 때에는 공동체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피 흘린 사람의 복수를 해줄 수 있다고 보았다. 민수기의 규정은 “만일 철연장으로 사람을 쳐 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민 35:16)고 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증인을 두게 했다. “무릇 사람을 죽인 자 곧 고살자를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살인죄를 범한 고살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라”(민 35:30-31). 그러나 뜻하지 않게 사람을 죽이게 된 경우에는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해 주었다(민 35:25).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니은 생명체의 주인이심으로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러나 피를 흘린 사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의 문제는, 공동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행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어느 경우에만 공동체가 다른 사람의 목숨을 대신 빼앗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은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정하신 공동체 안에서 인간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애쓴 것이다. 그러나 폭력의 종식을 위해 또 새로운 폭력을 불러들이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피의 복수는 또 복수의 피를 흘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피를 먹지 말라는 규정은 인간 생명의 신비성을 강조하여,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삶을 위해서도 이웃의 목숨을 끊는 것을 삼가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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