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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도는 넘쳐흐르는구나!” - 大道氾兮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34
이병일 목사(광주무등교회) | 승인 2018.08.27 20:15
“큰 도는 넘쳐흐르는구나! 좌우 어디나 갈 수 있다. 만물이 그것을 얻어서(의지해서) 생겨나지만 말하지 않는다. 공을 이루고 일을 마쳐도 이름을 내지 않는다. 만물을 입히고 길러도 주인행세를 하지 않는다. 늘 욕심이 없어서 작다고 불릴 수 있고, 만물이 돌아와 따르지만 주인행세를 하지 않으니 크다고 불릴 수 있다. (이로써 성인은 큰 것(위대함)을 이룰 수 있다.) 이러므로 마침내 스스로를 크다고 하지 않으므로 큰 것을 이룰 수 있다.”
- 노자, 『도덕경』, 34장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得(恃)之而生而不辭, 功成(成功遂事而)不名有, 衣養萬物(萬物歸焉)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萬物歸焉而不爲主, 可名爲大. (是以聖人之能成大也)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큰 도는 어디로나 통한다는 말입니다. 도덕경 8장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뜻입니다. 물이 좌나 우나 어디든지 넘치고 스며들 듯이 도의 길은 막힘이 없고 또 넓습니다. 물은 길을 따라 흐르지만, 넘쳐흐르는 물은 길이 없습니다. 형식이 없고, 좌와 우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도는 범람하는 물과 같습니다. 도는 이렇게 되어라 저렇게 되어라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서 지켜보기만 하고,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었어도 나서지 않고 뒤에서 지켜볼 뿐입니다. 욕심에 없기에, 드러내지 않기에 작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행세를 하지 않으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Getty Image

노자는 성인도 자연의 도와 같이 스스로 주인이 되지 않음으로써 위대함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도는 주인 노릇을 하지 않아서 작고 욕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공을 이루고 일을 성취하기 때문에 크고 욕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도는 좌와 우를 모두 용납합니다. 인위적인 정치를 그치고 자연의 도를 따를 때 천하가 태평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도에 이른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 구부러진 길을 가면 //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 구불구불 간다. //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 이준관의 시 “구부러진 길”

큰바람인 솔릭이 한반도를 관통하여 지나갔습니다. 여기저기 바람과 비로 인한 피해를 남기고 갔습니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보다도 적은 피해가 있어서 다행이기도 합니다. 자연재해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사람들이 잘 대비하면 그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차이를 차별로 혼동하여 사람들을 대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도(大道氾兮)와 물(上善若水)을 속성을 늘 생각하면서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천 명을 먹일 때와 같이 빵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위탁하여 나누게 하고, 또한 물고기도 마찬가지로 제자들에게 위탁하여 나누어주게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빵과 물고기를 위탁하여 나누게 하셨듯이, 우리가 무엇이든지 깨달은 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기 위한 깨달음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함께 함을 통해서 나누는 깨달음이어야 합니다. 먼저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대단한 특권이나 권위의 근거로 삼지 말고 아낌없이 조건 없이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땅에서나 이방인의 땅에서 똑같이 활동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둘은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일군이요, 예수님의 공동체에서 하나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야이로의 딸과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딸이 모두 고침을 받은 사건을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차별도 해체합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한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선포를 위한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틀림의 기준으로 다가선다면 그 어떤 누구도 ‘개인’이라는 존엄성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이지 틀리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주 이것을 혼동합니다. 단지 다른 것인지 아니면 틀린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이러한 혼동은 뿌리 깊은 역사적 경험에서 생성된 집단적인 관습과 전통에 의한 것도 있고, 의견과 생각의 차이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들이대서 평가함으로써 생겨나는 개인적인 인식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혼동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차별 없는 먹이심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맡겨진 빵과 물고기,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몸은 함께 나눔으로써 온전한 공동체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 따라서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깨달음의 정도도 서로 다르고, 그 내용도 다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는 조건이라면 한 번의 실수나 몰이해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님의 뜻을 따르고 행하려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있는 공동체입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한 사람의 실수를 다른 사람이 보완할 수 있고, 한 사람의 빈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울 수 있습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보완하고 채울 때에 온전한 공동체는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우리가 위탁받은 것” 中에서

이병일 목사(광주무등교회)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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