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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쿠터, 직접적인 생명으로 귀환하라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와 헤르만 쿠터 2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 승인 2018.08.30 22:34

베른에 있는 한 경건주의적 가정에서 태어난 헤르만 쿠터 (Hermann Kutter)는 오이그스터, 라가츠, 블룸하르트처럼 ‘복음의 강제력’에 의해 자신의 삶의 과제를 바꾸었던 사람은 아니다.(미주 143) 어려서부터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쿠터는 쥔텔(Friedrich Zündel)을 통해서 “결정적 전환”을 하게 되었다.(미주 144) 쿠터의 신학적 사상은 ‘직접적인 것’(Das Unmittelbare, 1902)과 ‘당신은 해야 합니다’(Sie Mussen, 1903)라는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직접적인 생명, 기독교의 목적

쿠터의 ‘직접적인 것’이란 책은 1902년 출판되었는데, 이 책은 블룸하르트의 “하느님의 직접성”이란 개념을 철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미주 145) 라가츠는 이 책이 출판되던 1902년 바젤 대성당의 목사였는데 이 책이 서점에 나오자마자 곧 독파했으며, 자신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매우 귀중한 책”으로 평가했다.(미주 146) 또한 이 책은 라가츠가 1903년 벽돌공 파업에 대한 설교에서 자신의 입장을 천명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 ‘직접적인 것’의 근본 명제는 “인류의 역사는 직접적인 생명으로의 귀환이다”라는 것이다.(미주 147)

여기서 쿠터가 말하는 “직접적인 생명”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을 의미한다.(미주 148) 따라서 쿠터는 세계사와 기독교의 목적을 바로 이 “직접적인 것”으로 돌아가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쿠터는 이 직접성으로의 귀환을 방해하는 요소를 주지주의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모든 사상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들은 직접적인 생명의 적일 뿐만 아니라, 바로 이 직접적인 것으로부터의 “타락”이 된다.(미주 149)

이와 같은 쿠터의 사상은 ‘신 인식’에 새로운 길을 열어 놓았다. 쿠터 당시의 신학은 인간 삶의 제반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하나님의 인식에 도달하는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에게로의 길이었다. 그런데 쿠터는 하나님의 직접적 체험으로부터 출발 하여 인간의 삶에 이르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로의 길을 제시했다.(미주 150) 따라서 쿠터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모든 신학을 철저히 비판했다.

“신학의 인식 노력이 신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하지 그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시간만 잡아 먹을 뿐 허사로 끝나게 된다.”(미주 151)

쿠터는 이 책에서 사회주의 무신론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주의 속에서 이 ‘직접성’을 인식하고 사회주의를 인정했다. 이 사상은 “예언자적 비전”으로 쓰여진 그의 두 번째 책인 ‘당신을 해야 합니다’ 에서 분명하고 혁명적인 표현으로 다시 나타난다. 라가츠는 이 책을 “… 이제 다시금 낡은 것을 뒤집어 엎을 심판의 때, 단절의 때가 온 것이 분명하다. 바람이 마른 장작 위로 불고 있다”라고 평했다.(미주 152) 라가츠는 이 책을 통해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안목을 넓혔고, 간접적으로 블룸하르트를 알게 되었다.(미주 153) 또한 이 책은 라가츠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개념을 알게 했다.(미주 154)

사회주의, 하나님의 도구이자 진리의 담지자이며 통보자

쿠터는 이 책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구요 신적 진리의 담지자요 통보자는 교회가 아니라 사회주의라고 말했다.(미주 155) 왜냐하면 교회는 역사 속에서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상실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독선적 경건과 제반 예식과 제도로 바꾸어 그것을 능욕했을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자신의 위안물로 삼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가 해야 할 과제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대신하고 있다.(미주 156)

즉 “하나님의 약속은 사회민주주의자들 안에서 실현된다”는 것이다.(미주 157) 이제 교회  대신에 반-그리스도교라고 낙인 찍혔던 사회민주주의가 “직접적인 것”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쿠터는 “무의식의 그리스도교”(Unbewusstes Christentum)라고 하였다.

▲ 헤르만 쿠터(1863-1932) ⓒGetty Image

쿠터는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교회의 비판에 대하여 일일이 그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무의식적 그리스도교”인 사회민주주의의 정당성과 함께 오히려 반 그리스도교적인 교회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미주 158)

첫째로 사회민주당은 하나님의 실재를 부정한다는 비난에 대해서 쿠터는, 교회 가죽은 하나님을 믿고 기존 세계와 타협하는 동안,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마치 성서의 예언자들처럼 맘몬에 대항하여 싸우는 하나님의 싸움을 인도했다고 옹호했다. 따라서 쿠터는 하나님의 실재를 부인하는 것은 사회민주당이 아니라 교회라고 비판했다.

둘째로 사회민주당은 기독교의 진리를 파괴하고 없앤다는 비난에 대해서 쿠터는, 사회민주당이 예수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오신 것처럼 새로운 삶과 새로운 세계를 위해 투쟁하는 동안, 교회는 예수의 메시지를 순수한 내면성으로 왜곡시킴으로써 오히려 기독교의 진리를 파괴했다고 반박했다.

셋째로 사회민주당은 혁명적인 정당이라는 비난에 대해서 쿠터는, 신약성서는 각 장마다 세계의 위대한 혁명을 선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혁명적이므로 사회민주당이 혁명적인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문제는 혁명적 하나님을 떠난 교회의 보수성에 있다고 비난했다.

넷째로 사회민주당은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대해서 쿠터는, 하나님은  죄를 극복하고 정복하시는 살아계시는 분인데도 불구하고 교회는 죄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면서, 오히려 악에 대해서 전력을 다해 투쟁하는 사람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라고 옹호한다. 쿠터는 죄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와 싸워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섯째로 사회민주당은 오직 물질만을 믿는다는 비난에 대해서 쿠터는, 실제로 겉으로는 물질을 경멸하는 척하면서도 그만큼 더욱 세상에 의존했고 물질주의에 빠진 것은 교회라고 비난했다.

여섯째로 사회민주당은 법과 도덕의 절대적 가치를 부정한다는 비난에 대해서 쿠터는, 사회민주당은 의롭지 못한 전통적인 법을 반대하고 참되고 영원한 법을 제안한다고 주장했다. 즉 부르조아적 도덕법에 대한 반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전통적인 법을 옹호함으로써 가진 자들에게는 유리하게, 없는 자들에게는 불리하게 만들었다고 오히려 교회를 비난했다.

일곱째로 사회민주당은 자신의 조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대해서 쿠터는, 사회민주당의 국제적 관점은 기독교적 희망과 국제평화를 증언하는 것이라고 옹호했다.

이와 같은 쿠터의 주장은 교회에 대한 무자비한 비판이었으며 정치적인 모든 “전선”(Front)을 바꾸어 놓았다. 참된 기독교는 교회가 아니라 “무의식적 기독교”인 사회민주당이다. 참으로 무신론자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닌 소위 경건하다는 교인들이다. 이제 교회는 사회주의적 혁명의지를 비기독교적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참으로 회개해야 할 사람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아니라 경건한 교인들이다.

이제 모든 “전선”이 바뀌었다. 무신론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전위대와 전투대(Kampftruppe)가 되었다.(미주 159)

블룸하르트와 쿠터, 그리고 라가츠의 차이

쿠터의 ‘당신은 해야 합니다’는 일 년 만에 4판이나 출판되었듯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와 함께 쿠터에 대한 찬사와 비판이 동시에 일어났다.(미주 160) 그러나 이 책은 그리스도교 사회운동이나 사회주의적 운동의 강령서(Programmschrift)는 아니었다.(미주 161) ‘당신은 해야 합니다’ 이후 출판된 그의 책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관심사는 사회주의나 정치적 문제보다는 교회비판에 있었다.(미주 162)

사실 이때부터 쿠터와 라가츠 사이에 신학적 방법론과 사회문제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차이가 나타난다. 쿠터의 ‘당신은 해야 합니다’의 서술 방법이 예언자적 방법을 통한 양심의 호소에 있다면, 라가츠가 같은 해에 강연한 ‘복음과 오늘날의 사회투쟁’이란 강 은 사회분석적 방법을 통한 실천의 강조에 있었다.(미주 163) 또한 라가츠는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을 구별하여 사회민주주의를 하나님의 채찍으로 보고 사회운동에 협력한 반면에, 쿠터는 사회민주주의를 신적 진리의 직접적 담지자로 보고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교회 내적인 설교에 국한했다.(미주 164)

‘당신은 해야 합니다’ 출판 이후 쿠터의 ‘전선’도 변화되었다. 그는 점점 플라톤과 칸트에 전념하면서 그 자신이 경멸하였던 주지주의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변, 즉 “직접성”으로부터 ‘타락’하고 말았다. 이것은 “직접성”을 직접 체험한 블룸하르트와 직접성을 간접적으로 증언해야 했던 쿠터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쿠터가 블룸하르트의 사상과 운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그 신학적 사상을 논술했다는 점과 ‘당신은 해야 합니다’ 이후 스위스에서는 더 이상 사회주의와 기독교 상에 고착된 선을 그을 수 없게 되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미주 165) 라가츠는 자신과 쿠터와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무사라는 점에서는 결코 쿠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쿠터 등이 경건화 및 종말론적 사상을 블룸하르트 부자의 심각하고 열렬한 사상에 의하여 심화시켜, 예언자적 입장에 그친 데 반하여 우리들은 거기서 종교개혁 정신 에 대한 이론적 정리를 가지고, 더욱이 이 신성한 하나님의 활동력을 과감하게 실 천하는 일을 단순히 종교적인 데서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길에 있어서 전개한다는 점에서 다르다.(미주 166)

미주

(미주 143) E. 부에스 / M. 마트뮐러, 손규태 옮김, 『예언자적 사회주의』(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87), ss. 63.
(미주 144) 위의 책, ss. 64.
 
(미주 145) Markus Mattmüller, Leonhard Ragaz und Der Religiöse Sozialismus, Eine Biographie Bd. 1: Die Entwicklung der Persönlichkeit und des Werkes bis ins Jahr 1913(Zollik-zurich, 1957), 101. (이하 M.Mattmuller, Bd. I. 라고 쓴다.)

(미주 146) 위의 책, s. 101. 라가츠의 일기(이하 TB로 쓴다.) 1903년 5월 28일도 참조하라.
(미주 147) A. Lindt, s. 235.
(미주 148) 위의 책, 같은 곳.
(미주 149) 위의 책, s. 234.
(미주 150) 쿠터의 하나님 개념과 신 인식론은 칼 바르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쿠터로부터 나는(바르트)하나님이란 위대한 단어를 진지하고 책임성 있게, 그리고 그 말의 중요성을 느끼면서 말하는 법을 배웠노라”(제임스 벤틀리, 김쾌상 옮김,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서울: 일월서각, 1988], ss.111-112.)
(미주 151) E. 부에스 / M. 마트뮐러, 앞의 책, s. 66 재인용.
(미주 152) 위의 책, s. 85. 라가츠는 쿠터의 ‘당신은 해야 합니다’를 비판적으로 비평한 N. Haur와 Hans Faber를 비판했다. (A. Lindt, 앞의 책, s. 67.)
(미주 153) A. Lindt, s. 68 또는 M. Mattmüller, Bd.1., s. 103도 참조하라.
(미주 154) M. Mattmüller, Bd. 1., s. 107.
(미주 155) A. Lindt, s. 235.
(미주 156) E. 부에스 /M. 마트뮐러, 앞의 책, s. 71.
(미주 157) M. Mattmüller, Bd. 1., s. 104.
(미주 158) A. Lindt, s. 236.
(미주 159) 위의 책, s. 237.
(미주 160) 쿠터의 ‘당신은 해야 합니다’에 대한 비평은 다음과 같다. ▲ Rdolf Liechtenhan은 가장 강력한 회개의 설교라고 비평함. ▲ 교회 우파 측에서는 매우 신랄하게 쿠터를 비평함. 특히 C. Von Orellis는 비평하기를, 쿠터는 죄의 현실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 나라를 탈취하려 한다고 했다. ▲ 교회 좌파에서는 쿠터는 교회 우파에서 왔으나 이 책은 그를 교회 우파로부터 멀어지게 했다고 비평함. ▲ 라가츠는 개혁 신학의 자랑이요, 교회의 가장 중요한 노동계급의 신뢰를 가져오게 했다고 비평함. 그러나 블룸하르트와 오이그스터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미주 161) A. Linbt, s. 66.
(미주 162) 이와 같은 비정치적인 쿠터의 태도는 블룸하르트의 사회민주당에 입당을 비판하게 했고 그와의 관계를 멀어지게 했다. 쿠터와 블룸하르트의 비교는 A. Linbt, ss. 237-238을 참조하라.
(미주 163) A. Linbt, s. 75.
(미주 164) Arnold Feiffer, (ed.) Religiöse Sozialisten(Olten: Walter-verlag, 1976), s. 89.
(미주 165) E. 부에스 / M. 마트뮐러, 앞의 책, s. 74.
(미주 166) 이남섭, “F. W. 마르크바르트의 초기 바르트 해석: 종교사회주의와의 관련을 중심으로”(미간행 석사학위논문: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1982), 18. 재인용.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jena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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