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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격(格)목사 스스로 자기를 향해 물어보아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박철 | 승인 2018.08.31 21:35

십 수년 전 강화에서 서울 가는 직행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바로 내 앞자리에 앉은 두 여자가 차가 출발하기 전부터 떠들기 시작하는데 쉬지 않고 속닥이는 것이었습니다. ‘좀 조용히 하세요!’ 한 마디 할까 하다 참고 있었는데,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귀에 익은 얘기였습니다. 두 여자의 얘기는 교회 이야기와 목사 이야기였습니다.

두 여자는 바로 자기들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목사라는 사실도 모르고, 또 다른 사람들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떠드는데, 주로 목사의 흉허물에 대한 노골적인 얘기를 여과 없이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좀 조용히 하라’고 한 마디 하려다 내 입은 자동으로 닫혀졌고, 본의 아니게 두 여자의 얘기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얘기를 들으며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두 여자의 얘기는 꼭 나를 두고 하는 얘기 같았습니다.

내가 경기도 남양에 살 때 얘기입니다. 이은자 성도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나이는 50대 중반이었습니다. 이 분은 오래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둘, 딸 둘을 성년으로 다 키울 때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살아오셨습니다. 몸은 수명이 다한 기계처럼 망가져 안 아픈 데가 없을 정도로, 늘 육체의 고난을 천형으로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고통이 심장병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고, 자녀들이 어머니를 어떻게 하든 살려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수술비를 마련하게 되어 심장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고난주간이었습니다. 나는 목사로서 그 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고난을 함께 나누는 심정으로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이은자 성도의 심장을 수술한 병원은 그 방면으로 꽤 이름이 알려진 수원의 아주대병원이었습니다. 수술은 다행히 잘 되었고, 회복할 때까지 중환자실에서 당분간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 박철 목사

월요일 아침, 아내와 나는 병원심방을 갔습니다. 중환자실 면회는 낮 12시와 저녁 6시 두 번 밖에 없었는데,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면회시간이 조금 지나 낮 12시 40분에 도착했습니다. 차가 많이 밀려서 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면회시간을 놓쳤던 것입니다. 아내와 나는 허탈해 하면서 집에 갔다가 저녁에 다시 오든지, 아니면 내일 다시 오든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돌아서는데, 중환자실 담당안내원 아저씨가 면회시간을 놓친 분들을 위해 오후 2시에 딱 10분 동안만 면회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면회시간을 놓친 사람이 우리 말고 몇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대여섯 명의 여인들이 가방을 들고 내렸습니다. 또 그 틈바구니에 정장차림의 남자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여자가 중환자실 안내원에게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 없이 다가오더니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목사님께 꼭 안수기도 받아야 할 사람이 있으니, 우리 목사님만 특별히 들여보내주세요!”
“안됩니다. 2시에 오세요.”

안내원 아저씨는 단호하게 병원 규칙에 따라 그 어떤 사람도 중환자실에 들여보낼 수 없다며 병원 쪽의 입장을 설명하였습니다. 의자가 넉넉하지 않아서 서 있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무거운 공기와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번에는 정장차림의 멀쑥한 신사가 담당안내원에게 다가서더니 입을 손으로 가리고 타이르듯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나 목사인데, 우리 교인 중에 나한테 꼭 안수기도를 받고 싶어 하는 위독한 환자가 있어요. 나 좀 들여보내주세요. 좀 부탁합니다.”
“안됩니다. 2시에 오세요.”
“아니, 지금 내가 바빠서 그러는데, 그러지 말고 좀 들여보내주세요.”
“그럼 딱 5분이라도 들여보내주세요.”
“안됩니다.”

그러자 목사는 발끈 화를 냈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교인이 죽어간다는데 그만한 사정도 안 들어줘!”

그러자 이번에는 같이 왔던 여자 교인들이 손짓을 해가며 덩달아 따발총 공격을 해대는 것이었습니다. 중환자실 대기실이 갑자기 요란한 시장바닥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안내원 아저씨와 말이 안 통하자 목사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승강기 버튼을 눌러도 금방 올라오지 않자 그것도 못 참겠다는 듯이 비상계단으로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여자 교인들도 목사를 따라 우르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중환자실 안내원 아저씨는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고, 면회시간을 놓치고 내 옆자리에 앉아 오후 2시가 되기를 기다리던 한 사람이 혀를 차면서 말했습니다.

“요즘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 문제가 많아요. 지하실에 가면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이 있는데요, 목사라는 사람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아무 때고 떼를 지어 들어와 큰 소리로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제 멋대로 해요.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가 간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한마디 거듭니다.
“목사면 다야. 목사가 무슨 암행어사라도 되나?”
 

잠자코 있던 안내원 아저씨가 얼굴이 조금 펴지더니 말합니다.
“면회시간이 지나고 와서 아무 때고 면회시켜 달라고 떼쓰는 사람 중 90%는 예수 믿는 교인들이에요.”

아내와 나는 그 자리에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자리를 피한 다음 다시 오자고 생각하고 1층 로비로 내려왔습니다. 심한 모멸감이 몰려왔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일이 나에게는 큰 충격이 되어 한 달 내내 나를 괴롭혔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직업에 따라 특이한 스타일을 지닙니다. 경찰이나 군인 같이 일정한 제복을 착용하지 않는다 해도, 그 직업의식이 풍겨주는 특이한 체취 때문에 관리, 교육자, 장사꾼, 거간 등의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게다가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 같은 직업이면서도 그 취향이나 역점의 종류 정도에 따라 스타일도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목사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항간에 들리는 얘기로는 목사의 시세가 땅에 떨어졌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옛날에는 목사 하면 가장 깨끗한 사람,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람으로 통했습니다. 그래서 유년 시절, 마음이 착하고 반듯한 애들을 보고 “너 이담에 커서 목사 되라”고 했습니다. 한 마을에서 목사는 지역의 유지로서 모든 공식행사에 초대받았고 가장 합리적인 사람으로 통했습니다. 이해타산에 치우치지 않고 공(公)과 사(私)가 분명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존경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목사를 비방하는 글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범람하고 있습니다. 목사를 '먹사'라고 한다지요. 목사의 권위가 심각할 정도로 훼손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自業自得)입니다.

목회자의 삶이란 한마디로 섬김의 삶이지요. 두 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예수의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점수를 매긴다면 나는 낙제목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벌써 낙제를 시켜야 마땅할 테인데 자꾸 당신의 길을 가라고 하십니다. 내가 결함과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하느님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서 나는 다시 그리스도의 길을 갑니다.

나는 가끔 목사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지금 나는 내 얼굴에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살아왔는가? 목사로서 고매한 품위를 지키고 있는가? 자신의 격(格)을 스스로 떨어뜨리지는 않았는가? 분명한 삶의 정체성과 사명의식이 있는가?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하여 책임질 수 있는가? 시나브로 여름 끝, 처서(處暑) 지나 가을로 가는 길목에 들어섰습니다. 목사는 스스로 자기를 향하여 물어보아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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