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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최고의 구약성서 해석자악한데 미련하라(로마서 16:19-20)
이성훈 | 승인 2018.09.02 20:21

오늘은 사도 바울의 편지인 로마서를 통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북미권에서 1990년대 언저리에 예수 세미나라는 모임이 생겼고, 이는 신약학자들의 연구 모임이었습니다. 이들의 주된 연구는 복음서의 말씀 속에서 실제 살아계셨던 예수님의 행적과 진정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밝히는 일이었습니다.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복음서에 기록된 대부분의 내용은 초대 교회가 삽입, 수정한 내용이었고, 예수님의 본래적인 말씀은 반-로마적이고 혁명적인 내용들이었다고 합니다. 일전에 예수 세미나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나왔던 내용으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뺨을 돌려대라는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 드렸던 것이 그것입니다. 그때 드렸던 설명이 예수 세미나에서 나왔던 해석이었고, 예수님의 방식은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혁명적인 방식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연구로 인해서 우리는 2000년 전 실제로 이스라엘 땅에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이들의 연구로 인해서 어떻게 보자면 피해를 본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역사적인 예수님이 혁명적 인물이었다면,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은 인물입니다. 이들의 연구를 보다보면 지금의 기독교와 예수님의 실제 말씀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물론 이들의 연구가 어느 정도 맞다는 전제하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은 어디에서부터 변하여 지금의 교회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그 변질점을 사도 바울에게서 찾게 됩니다.

지금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사도 바울의 이해를 따르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도 그렇고 예수님께서 대속제물이 되셨다는 말씀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복종하며 다가올 천국을 기다린다는 말씀도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따온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서 자체로 해석하지 않고 사도 바울의 이해를 거쳐서 복음서를 해석해왔다는 말씀입니다.

▲ 북미 “예수 세미나”를 이끌고 있는 가콜릭 신학자 존 도미닉 크로싼. ⓒJeff Walton / IRD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변질시킨, 예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기독교라는 신흥 종교를 만들어낸 인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생각들로 인해서 사도 바울은 지금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 뭇매를 맞는 존재가 되었고, 어떤 이들은 성경에서 바울 서신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바울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역사

저는 요즘에 저희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구약성경을 읽어나가면서, 저 스스로도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읽어내지 못했던 부분들을 읽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 사도 바울은 정말 훌륭한 성경(구약성경) 해석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로마서는 바울이 해석한 구약성경의 핵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선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계실 구약성경의 말씀을 쭉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어떻게 역사하셨는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정리를 한 후에 로마서를 쭉 읽어보시면 바울이 참 정리와 해석을 잘했다는 생각을 하시게 될 겁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으로부터 발생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지 말라고 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입니다. 물론 이때까지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죄는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은 점에서 악이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동산에서 추방당한 사람은 창조 세계에 살아가면서 더욱 악한 일을 행하기 시작합니다. 가인의 동생 살인 사건입니다. 사람은 악을 행하다 못해 가족을 살해하는 일까지 행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가인이라는 한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고, 수없이 퍼져나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수없이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만드신 창조세계를 무너뜨리십니다. 홍수 사건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노아의 가족을 남기십니다.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세계를 다시 창조하는 일은 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다시금 자유로운 삶을 허락하십니다. 그 결과는 또다시 악이 성행하는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창조세계가 악으로 채워지는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법이라는 체계를 사람에게 주십니다. 악이 아니라 선을 행하도록 하는 법체계입니다. 하나님의 이 법은 선을 행한 사람에게는 복과 은혜가 내려지고 악을 행한 사람에게는 심판과 벌이 내려지는 체계입니다. 이 법체계를 수용한 사람이 아브라함이었고, 법을 수용한 이들은 하나님의 법체계를 세상에 드러낼 의무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이 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으로 가득차서 더 이상 악으로 물들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법을 맡은 아브라함의 후예들, 이스라엘 민족은 법을 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먼저 법을 어기는 행동을 벌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로 하나님의 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합니다.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킨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법이 아닌 사람의 법,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들을 만들고 이를 통해 약한 사람을 핍박하는 악을 행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심판을 내리셨지만,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70년의 포로기간이라는 큰 심판을 내리십니다. 나라의 붕괴라는 심판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 포로기간은 어쩔 수 없는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쌓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벌이라고 말합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지만, 법이 있다는 이야기는 하나님께서도 법을 지키셔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아무리 사랑하셔도, 사람을 아무리 사랑하셔도,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벌하셔야만 합니다. 그 벌이 70년의 포로기였고, 우리는 이를 예레미야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70년이 끝나면 이스라엘은 다시금 돌아와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는, 선을 행하는 백성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돌아온 백성들은 또다시 악을 행하였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라본 예수님

구약성경은 여기에서 끝나지만, 이후 이스라엘은 또 다시 로마라는 강대국의 속국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상황에서 태어났고, 그는 구약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당시의 상황을 이스라엘의 죄의 대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생각은 예레미야와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죄가 있다면 그것을 씻어내야 다시금 하나님의 법 안에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인식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예레미야의 생각과 다른 점도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포로기가 지나면 이스라엘이 변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고 또 다시 로마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의 죄는 이정도의 심판으로는 씻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심판을 받는다 해도 인간의 죄는 사라지지 않고 다시금 악을 행하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때 그가 만난 것이 예수님이었습니다. 물론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예수님을 만난 후에야 이런 생각을 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인간의 죄를 씻기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법을 어기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람의 죄를 씻을 방법을 고안하셨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바울이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사람들 사이에 보내셔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법을 지킬 수 있도록 가르치시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품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예수님이시며, 이런 생각이 예수님에 대한 바울의 인식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일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이는 은혜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무조건 징벌을 받고 깨끗해져야만 하는 우리가 징벌을 받지 않고 다시금 법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 Paul the Apostle in prison, writing his epistle to the Ephesians.©Photos.com/Jupiterimages

물론 제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법 안에서 산다.’는 말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하고 있는 말과 반대로 보입니다. 바울은 이제 우리는 법 안에 있지 않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법 아래에 있지 않다는 말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우선 법은 우리가 범하고 있는 죄를 알려주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우리에게 법의 이러한 기능은 의미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제 전혀 죄에 눈을 돌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법을 너무나 잘 지켜서 오히려 법이 불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정말로 법이 의미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한 이야기는 결코 법을 폐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로마서 3장 31절에서 분명히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바울의 당부

그러나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바울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사람이 받을 징벌을 피하게 만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시 죄를 범하게 되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70년의 포로기를 거쳤던 이스라엘이 또다시 죄의 길에 섰던 것처럼 사람은 또다시 죄를 지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마지막 방법, 고육지책으로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당부합니다.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16년 미국 대선 당시에 지금의 대통령인 트럼프를 향해 쏟아지던 탈세 혐의들에 대해서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들보다 똑똑해서 법적으로 세금을 적게 내는 방법을 쓴거다.’ 미국 사람들은 이것을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했는지 트럼프를 뽑았습니다만, 우리는 트럼프가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는 트럼프와 같은 행동을 취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나에게 이득이 있다면 어떤 방식을 취하던 그 방식에 따라 이득을 얻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이 말하는 똑똑함이고 지혜로움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정말 이익을 얻기 위해 선한 방식만을 사용했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기고 그 법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금 죄의 길에 들어서면 안 됩니다. 그것은 또다시 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징벌을 피할 수 있는 길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발 악한 일에 머리 쓰지 마시고 선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기 바랍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이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우리는 세상에서 미련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법 안에서 복을 받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야기와는 다르지만 선한 데에 지혜로우신 여러분 되시길 바라며, 악을 행하는데 지혜를 사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복과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천국이 허락될 줄 믿습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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