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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들에 답함한신대 만우관 옥상 고공단식 농성 셋째날
김건수 | 승인 2018.09.05 22:15

시를 많이 아는 건 아니면서,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건 더더욱이지만 시를 좋아합니다. 복잡한 세상의 비밀을 단 몇 줄로 밝혀내는 시인의 예리한 시선이 좋습니다. 읽기 전에는 몰랐던 설움과 가슴 아픔을 세상 밖으로 내놓게 하는 수면 위로 띄우는 강렬함이 좋습니다. 특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인 송경동 시인의 시를 읽으며 자주 그럽니다. 

“나름 고공농성이라고 부분 단식을 해왔는데/이십여일 만에 처음으로/숙변을 보라고 기별이 온 날 … 찢어진 채 닫히지 않고/아, 이런 전투는 처음이야”
- 송경동, “학문이 열리던 날”

“아, 이런 전투는 처음이야” 이 한마디에 저는 화장실에서 끙끙 앓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용변을 이곳에서 봅니다. 화장실도 따로 없고, 가림막은 더욱 없어 사실 제일 힘든 것이라면 바로 용변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모르겠지만, 시를 읽으며 제 부끄러움을 시인과 함께 나눕니다.

저는 이곳에서 비단 밥만 굶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당장 물도 먹지 못하는 이곳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며 화장실 없는 상태에서 용변을 해결합니다. 이런 저를 잘 봐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한신의 민낯을 이렇게 폭로하고 싶기도 한 것입니다. 더럽고, 냄새나고, 불편하며 초췌한 제 모습에서 한신의 지금을 떠올려주시길 바랍니다. 총장을 비롯한 저들의 추악한 속마음이 분명 이곳보다 더욱 더럽고 냄새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김진숙 씨가 수백일째 고공농성으로 기네스 기록을 갱신하고 있을 때, 아이디어 많은 박점규가 ‘고공클럽’을 제안했다. 그간 평지에서 살지 못하고 고공으로 올라간 사람 백명만 엄선해 모아보자는 계획이었다”
- 송경동, “허공클럽”

절 찾아오신 한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억울하지 않느냐, 우리가 왜 굶어야 하는지, 우리가 왜 고생해야 하는지”. 억울합니다. 자본의 착취에 못 이겨 고공으로 올라가는 노동자도, 4년간 질질 끌어온 민주한신의 꿈을 이루고자 옥상에서 잠을 자는 저도 불쌍하고 억울합니다.

그러나 당당합니다. 비리와 거짓말로 점철된 인생이 아닌, 민주와 정의, 진실의 삶을 사는 것이 당당합니다. 탐욕과 잇속으로 뭉친 이들 곁이 아닌, 평등과 사랑으로 뭉친 동료들 옆에 있어 당당합니다.

마지막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하며 끝내겠습니다.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닷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는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중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시를 읽으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김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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