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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루 나무 같은 사람묵묵히 한줄기 비를 기다리는 사막의 나무처럼
박철 | 승인 2018.09.14 22:11

언뜻 보아서는 건강하고 강인하게 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하지만 그 나무는 겉모습만 괜찮게 보였지 그리 강하지도 않고 점점 쇠약해져 가는 나무였다. 겨울이 다가와 바람이 강해지자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른 나무들이 그런 자신을 얕보는 것같이 느낀 나무는 새로운 나뭇가지를 자라나게 하여 훨씬 더 강하고 멋있게 보이도록 만들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태풍이 몰아쳤고, 그 나무는 뿌리 채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었을 때 옆의 나무가 자신의 몸에 기댈 수 있도록 도와준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태풍이 그치고 바람도 잠잠해지자 그제야 그 나무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무는 자신을 도와 준 옆의 나무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맙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이런 세찬 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을 수가 있나? 모진 태풍 속에서도 나를 도와 줄 힘까지 지닌 비결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 수 없겠나?”

도와 준 나무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아주 간단한 일이야. 자네가 새로운 가지를 만들기에 온 정신을 집중시키고 있는 동안 나는 뿌리를 땅 속으로 깊숙이 내렸다네.”

끊임없이 물을 주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게 나무이며, 그것은 사랑이기도 하다. 척박한 사막의 땅에서도 나무는 물이 있어야 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한그루의 나무는 오랜 고통과 질식을 견디어 내며 물을 기다린다. 자신의 내면에 자신이 포용할 수 있는 한계에까지 물을 담아 조금씩 조금씩 아끼고 아끼며 하늘이 가져다 줄 물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사랑은 기다림이기도 하다. 묵묵히 한줄기 비를 기다리는 사막의 나무처럼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사랑이다.

ⓒ박철 목사 제공

늦은 저녁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지만 작은 소반에 한 두 가지 반찬을 준비하고, 행여나 밥이 식을 까 보아 아랫목 이불속에 밥주발을 덮어 놓은 아낙의 촛불 넘어 흔들거림에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가. 한마디의 말도 필요 없는 다소곳한 기다림에서 진하고 격렬한 사랑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흐르며 조금씩 스며드는 나무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사랑은 나무와 같다. 끊임없이 물을 주어야 살 수 있는 나무와 같이 부족하지 않은 물을 주어야만 한다.

관심과 흥미라 불리 우는 사랑의 물은 하루라고 쉬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루의 목마름은 하나의 시든 잎을 만드는 것과 같이 하루의 무관심은 하나의 실망을 가져다주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나무와 같다. 너무 많은 물을 주게 되면 나무의 뿌리가 썩는 것처럼, 너무 많은 관심은 간섭이 되어 의부증이나 의처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무가 움직여 자리를 옮기면 쉽게 시들고 힘이 없어 비틀거리는 것처럼 사랑의 자리를 옮기면 쉽게 시들고 쉽게 비틀거리게 되기 마련이다. 옮겨진 나무에는 더욱 많은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하듯 옮겨진 사랑에는 작은 상처 하나에도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만 한다. 때때로 오랜 가뭄을 묵묵히 견디어 내는 나무와 같이 심한 갈증이 온다 하더라도 묵묵히 견디어 내야 할 때도 있다. 때때로 심한 바람에 온몸이 흔들린다 하더라도 깊게 뿌리내린 나무와 같이 묵묵히 견디어 내야 할 때도 있다.

오래도록 참을 수 있는 기다림과 끊임없는 관심의 두 가지를 모두 가져야만 하는 나무. 그리하여 사랑은, 바로 나무 같지 아니한가.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움을 잃어 가지만 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워진다. 세월의 연륜 만큼 줄기는 늠름해지고 가지는 세상을 다 품어줄 듯 넓게 퍼진다. 나무는 또 자기가 살아가는 땅을 닮아간다. 사람들의 손을 피해 산속에 홀로 사는 나무는 고고한 표정을 지니고 있고 마을 어귀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눈길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나무는 어머니의 품 속 같은 따스한 얼굴이다.

넓은 논밭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는 신령 같은 기품을 지닌 표정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나무 같은 사람이다. 늘 새롭게 태어나고 한 자리를 지키고 웬만한 고통엔 아프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우직함을 지닌 나무 같은 사람이다.

ⓒ박철 목사 제공

오늘 아침 류시화 시인의 시 <나무>를 묵상하며 새벽길을 걷는다. 어둠 속에 서 있는 나무를 대하면 마음이 숙연해 지고 차분해 진다. 불현듯 6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기도 한다. 내게 있어서 어머니는 나무와 같은 사람이었다. 어깨와 팔이 많이 아픈데 일을 다니는 아내의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아내도 내게 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이렇듯 이 세상에는 나무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주었다

(中略)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
- 류시화 詩, 나무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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