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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예언자 그 누구도 동성애가 죄였다고 말하지 않았다소돔과 고모라의 죄(창 18:20-21)
이성훈 | 승인 2018.09.16 20:31

최근에 우리나라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퀴어축제 반대 집회에 개신교가 앞장서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얼마 전 예장 통합 총회에서는 저희 교단인 기장 교단 임보라 목사님에 대해서 이단의 가능성이 있다고 결의하였습니다.

이미 예장 백석대신 측은 임보라 목사님을 이단으로 결의하였고, 예장 합동 측은 임보라 목사님의 이단성을 문제 삼았고, 이제 예장 통합 측은 이단의 가능성이 있다고 결의한 것입니다. 이들에게 임보라 목사님이 이단이라고 결의된 이유는 성소수자를 위한 목회를 하고 있다는 점과 퀴어 신학 주석을 번역한 일로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지금의 보수 개신교는 성소수자를 옹호하면 이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들은 왜 성소수자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기피 증상을 보이는가? 이른바 동성애에 대해서 개신교는 왜 이렇게 반대하며 죄악시 하는가의 문제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상하게 저희 교회에서는 1년에 한 번은 동성애 문제로 설교를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때마다 에이즈와 관련된 이야기나 동성애가 사회적 현상인지 병인지 하는 문제를 다뤘습니다만, 오늘은 성경이 동성애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특히 수많은 개신교인들이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로 인해서 멸망했다고 말하는데, 성경은 정말 그렇게 이야기 하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는 창세기 18장과 19장에 나옵니다. 사실 앞선 13장에서 롯이 소돔 땅을 선택했을 때, 13장 13절에서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들의 죄악이 심히 무겁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정말로 그들의 죄가 큰지 확인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후에 벌어지는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논쟁은 하나님께서 한 국가, 지역을 심판하실 때 그곳에 의인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는가에 대한 신학적인 의미가 있는 본문이고, 하나님과 사람이 논쟁을 벌였다는 점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오늘 말씀에서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정말 심한지, 그들이 정말 악한지 확인하기 위해 소돔에 갑니다. 그리고 그들이 겪게 되는 상황은 소돔의 모든 남성들, 어린 남자아이부터 늙은 남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롯의 집을 둘러싸고 하나님의 천사를 내놓으라고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의 존재를 깨달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아무튼 천사들과 성적인 관계를 해야겠다고 말합니다.

▲ 소돔과 고모라를 찾아간 천사들 ⓒGetty Image

이 이야기에서 성관계는 분명 남성들 간의 성관계를 의미합니다. 창세기 18장 2절에 따르면 소돔을 살펴보러 간 천사들 세 명은 모두 남성(이쉬 אִישׁ)이었습니다. 소돔에서 천사들을 내놓으라고 롯의 집을 둘러싼 사람들도 모두 남성(이쉬 אִישׁ)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돔의 남성들은 원어대로 말하자면, 롯의 집에 온 사람들을 ‘알아야겠다(야다 יָדַע)’고 말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안다’는 말은 ‘성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남성들 간의 성관계가 맞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는 동성애다.”라고 말한다면, 18장 20절에서 하나님께 상달되었던 큰 부르짖음은 소돔과 고모라 남성들이 모두 게이여서 못살겠다는 부르짖음이었고,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무겁다고 말씀하신 것도 그들이 게이인 것이 무거운 죄라고 말씀하신 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약간의 의야함을 가지게 됩니다. ‘성경은, 특히 구약성경은 동성애를 이렇게까지 큰 범죄라고 말했던가?’ 하는 점입니다. 동성애로 인해서 국가 혹은 지역이 소멸될 정도의 심판을 받게 되는가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스스로가 증언하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살펴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소돔과 고모라의 죄에 대해서는 구약성경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가 대예언자라고 말하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은 적어도 한 번씩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소돔과 고모라의 죄

먼저 소돔과 고모라를 언급하고 있는 성경은 신명기입니다. 신명기 29장에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해서 살다보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변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렇기에 만약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해 살면서 하나님을 배신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배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모든 것이 멸망해도 나는 평안하리라’는 마음을 품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리라고 말합니다(신 29:19-21). 그때에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려진 심판과 동일할 것이라고 말합니다(신 29:23).

여기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죄는 ‘하나님을 떠났음’, 혹은 ‘우상숭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을 받지 않으리라고 여기는 교만과 오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언서에서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한 나라의 대명사로 등장합니다. 그렇기에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하리라’라는 말은 마치 속담이나 숙어처럼 종종 사용됩니다(사1:9; 3:9; 렘49:18; 50:40; 습2:9).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조금이나마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자세하게 죄를 써놓은 부분들도 있습니다.

이사야 1장 10절에서 17절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범하고 있는 죄를 적어놓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관원들을 ‘소돔의 관원들’이라고 부르고, 백성들을 ‘고모라의 백성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수많은 제사를 지내지만, 정작 그들의 손에는 피가 가득 찼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해야 할 바를 이야기하는데, ‘~을 행해라’라고 명령하고 있다면, 반대로 이스라엘이 그것을 행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고, 결국 그것은 죄입니다.

그 내용이 이사야 1장 17절에 나옵니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반대로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행을 했고, 정의를 버렸으며, 사람들을 학대하거나 혹은 학대 받는 자를 외면했고, 고아와 과부를 외면”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죄였고, 이사야는 이러한 모습을 보고 소돔과 고모라 같다고 말했습니다.

예레미야 23장 14절에서도 친절한 설명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

여기에서 간음은 히브리어 나아프(נאף)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간음입니다. 십계명 중 ‘간음하지 말라’가 ‘나아프 하지 말라’입니다.

예레미야의 이야기를 통해 보면 이스라엘은 “음란한 행위를 하였고, 거짓말을 하였고, 악인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이를 소돔과 고모라와 다름없다고 말합니다.

다음으로 에스겔 16장 49-50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아모스까지만 보겠습니다. 아모스 4장 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소돔과 고모라처럼 무너뜨리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들의 죄에 대해서는 4장 4-5절에 나타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수많은 제사를 드리면서 이를 기뻐하는 일’이 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치 않으심에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일을 죄라고 말합니다.

이상의 이야기들을 요약해보자면, 하나님으로부터 풍요로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법을 떠나 살며, 하나님께는 제사만 드리면 된다고 여기면서 자신은 제사를 지냈으니까 심판받지 않는다고 여기는 교만함과 사회의 약자들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약자들에게 악을 행하는 모습들을 소돔과 고모라의 죄라고 말합니다. 이 죄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예언자 그 누구도 동성애가 죄였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동성애는 언급도 되지 않습니다.

성경의 동성애 금지

물론 성경에도 남성간의 성관계에 대해서 경계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레위기 18장 22절과 20장 13절에 보면 남성간의 성행위 금지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18장, 20장의 다른 내용들까지 보면, 어머니, 여자 형제, 친척, 장모, 짐승까지 나옵니다. 즉 부부관계 이외의 모든 성행위 금지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습니다. 특정하게 동성애 반대 규정이 아닙니다. 만약 이 법이 개신교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법이라면, 동성애 반대 집회를 할 게 아니라 서초동 가정법원 앞에 가서 간음 금지 집회를 여는 게 맞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가끔 보게 되는 ‘남색하는 자’가 있는데, 구약에서는 ‘카데쉬’로 성전에서 일하는 ‘남창’을 의미합니다. 학자들은 이들이 남성을 상대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남창이 분명 존재했고 그들의 역할은 불분명하지만, 여성이 남창을 찾아가는 일은 당시 사회에서 불가능했다고 여기기 때문에 남성을 상대하는 남성 성전 창부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3장 17절이나 열왕기상(왕상15:12; 22:46)에 보면 이들을 쫓아내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들에 대한 규정은 동성애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전 창부들(여성 남성 모두)을 모두 쫓아내라는 내용이기 때문이고, 이들의 행위 자체가 우상숭배와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동성애 문제라고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성경에서 명확하게 동성애를 일컫는 이야기는 신약성경인 고린도전서 6장 9절과 디모데전서 1장 10절에 나옵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이 말씀들은 우리 성경에는 ‘남색하는 자’로 번역되어 있는데, ‘아르세노코이테스(ἀρσενοκοίτης)’, 남성 동성애자입니다.

간혹 이 단어가 남성에 의한 폭력적 성행위라고 말하시는 분도 계신데, 저는 전혀 그런 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없습니다. 참고로 이 단어는 남성을 뜻하는 ‘아르센(ἄρσην)’과 잠자리, 성행위를 뜻하는 ‘코이테(κοίτη)’의 합성명사입니다. 그냥 남성 동성애자 맞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편지에서 남성 동성애자가 불의하다고 말합니다.

신약성경 시대에는 그리스를 통해 동성애 문화가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고, 로마 황제도 동성애를 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동성애 문화가 있었습니다.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최고의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고 소크라테스와 몸을 섞으면 그의 지성을 얻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소크라테스를 향한 이런 사랑이 플라토닉 러브이고, 결국 동성애로 봐도 무관한 사랑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소크라테스의 잠자리에 몰래 들어가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또한 서양회화를 공부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18세기 신고전주의 화가들이 가장 부러워했던 것이 고대 그리스의 김나지움(gymnasium)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 근육질 남성의 신체였는데, 김나지움에는 헐벗은 근육질의 남성들이 매일같이 있었기 때문에 따로 모델을 찾을 필요도 없이 김나지움에만 앉아있으면 최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실제 고대 그리스 화가들은 김나지움에서 근육질 남성들의 헐벗은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여기며 수많은 작품의 초안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장 루이 다비드’와 같은 신고전주의 화가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들이 만약 이 시대에 환생한다면, 헬스장에 쳐박혀서 밖으로 안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하곤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풍조가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그는 애시당초 성행위 자체를 안 할 수 있으면 하지 말라고 말한 사람입니다. 결혼도 성욕을 참을 수 있으면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고전7:8). 그가 생각한 성욕은 인간에게 있어서 불필요한 감정이었고, 하나님께서 이 불필요한 감정을 해소할 수 있도록 결혼이라는 제도를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동성애를 용인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권력에 의한 폭력

약간 딴 길로 빠졌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죄에 대해서 성경이 증언하는 바는, 동성애 문제가 아니라, 힘을 가진 이들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입니다. 약한 자를 향해 무분별하게 가해지는 폭력이 소돔과 고모라의 죄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소돔과 고모라에 가서 확인한 것은 그들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가 아닙니다. 그들의 폭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나그네는 분명 약자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나그네였습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남자들은 나그네를 돕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그네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려 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죄입니다.

지금도 여성을 향한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들은 권력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남성들이 여성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권위를 높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직장 상사가 여성일 경우에 그 밑에 있는 남성이 상사를 향해서 성희롱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하지 못합니다. 권력 관계가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교회들이 왜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동성애의 문제로만 규정하고 권력에 의한 폭력에서 눈을 돌리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왜 교회는 폭력의 문제에서 눈을 돌려 동성애만을 죄악이라고 말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어쩌면 교회들이 그 권력에 의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그 권력을 손에 넣으라고 강단에서 설교하고 있기 때문이며, 성도님들은 세상에서 그러한 권력을 갖고자 노력하며 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우리가 이 점을 분명히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세상에서 ‘을’이 되고자 하지 않습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면 ‘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갑’이 되겠다는 생각은 결국 권력을 갖고 그 권력으로 폭력을 휘두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갑도 없고 을도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지만, 지금의 교회는 이미 교회 안에도 갑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는 섬기는 사람이 아닌, 교회에서 권위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성도님들께는 세상에서 갑이 되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개신교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인 권력의 문제는 점차 외면하게 되고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 “남성이 남성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부분에만 집중해서 동성애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멸망할 죄라고 말합니다.

지금의 교회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권력에 심취해 있는지, 세상에서 권력을 추구하고 있는지 돌이켜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만 읽으면서 누군가를 정죄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폭력성을 돌이켜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먼저 그 폭력을 벗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옛적 예언자들이 지금 시대에 나타난다면, 우리를 향해서 “이 소돔과 고모라야!”하고 외칠지 모르겠습니다.

남보다 높아져서 남을 정죄하는 일을 행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의 권력을 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권력 구조를 만들어내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오직 모든 폭력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사랑만을 남기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줄 믿고, 여러분을 통해서 권력에 의한 모든 폭력이 이 땅에서 조금씩 사라지게 될 줄 믿습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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